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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안희봉의 해금정악/*비매품    [다음] 金廣福 피리 · 태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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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박익자 시조집
 ㆍ 아티스트: 운봉 박익자
 ㆍ 음반사 : 탑예술기획
 ㆍ 음반번호: TOPCD-141
 ㆍ 발매일: Manufactured by HWAEUM. 2011.2. Seoul, Kore
 ㆍ 녹음: 2010.6.6 유니버샬 스튜디오
 ㆍ 디렉터: 양정환 TOP ARTS (음제1442호) / P&C Yang Jeong-hwan, www.gugakc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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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CD-141
운봉(雲峯) 박익자(朴益子) 시조집
THE PARK IK-JA (UNBONG) SIJOJIP
- THE SIJO REPERTORY PERFORMED BY PARK IK-JA, ‘GAGAEG(Female Classical Song Performer)’
01  평시조 - 청산은 어찌하여  04:33
02  평시조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04:19
03  사설시조 - 팔만대장  04:59
04  사설시조 - 명년삼월에   05:16
05  여창지름시조 - 달 밝고  04:44
06  남창지름시조 - 푸른산중  04:51
07  온지름시조 - 기러기 떼떼  04:36
08  사설시조 - 태백산 하  05:07
09  우조지름시조 - 석인이 이승  04:51
10  중허리시조 - 산촌에 밤이 드니  04:12
11  각시조 - 행궁견월  06:05
12  남창지름시조 - 바람아 부지마라  04:17
13  우조시조 - 나비야 청산가자  04:38
14  엮음지름시조 - 학 타고 저 불고  04:17
15  엮음지름시조 - 푸른 산중하에  05:46
• 장고 박문규  janggo/ Park Mun-gyu
• 피리 박영기  piri/ Park Yeong-gi
• 대금 김상준  daegeum/ Kim Sang-jun
• 해금 윤문숙  haegeum/ Yun Mun-suk
=============================
축 사
원주는 예로부터 치악에서 들리는 시조창 소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운곡 원천석 선생의 고려왕조 회고시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며, 숙종대 박권 선생의 <서정별곡>에는 효종대왕 <청석령 지나거다>의 영향이 끼쳐 있기도 합니다. 근년까지 흥왕을 이루었던 원주 시조계가 도시화의 여파로 위축되어 있는 가운데 원주 지역 유일한 시조인이신 운봉 박익자 선생의 음반이 출간된 것은 원주 시조계의 부흥을 알리는 조짐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운봉 박익자 선생님께서는 일찍이 홀로 되신 가운데 시조를 위하여 생활을 희생하는 가운데 독자적인 예술 경지를 지켜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치악의 준령이 점지한 굳센 원주인의 기상이 박선생의 시조창을 통하여 울려 퍼질 것을 기대합니다. 원주 지역의 문화계를 대신하여 축하하는 박수를 보내오며, 이를 계기로 원주 지역의 시조, 나아가서는 문화의 재흥을 바라는 마음을 부칩니다.
  이 음반이 이루어지기 까지 여러분들의 노고가 끼쳐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먼저, 국악계의 김일호 선생님은 이 일을 처음 주선하여 주셨고, 탑예술기획의 양정환 감독님은 자상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획을 세워 주셨습니다. 아울러 반주에 가담하신 명인 여러분께도 치하 드리오며, 따님이신 유기성씨의 효심 어린 조력을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이 음반이 울리는 동안 원주 지역의 문화계는 적막하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감사를 드리며 원주 명창의 성예가 널리 퍼지기를 축원합니다.
                                                       2011년 1월  일
                                                       원주시장  원 창 묵
어머니께 바치는 시
- 음반제작을 축하드리며 -
                              유 기 성
당신의
고귀한 자태는
삶의 선물이며,
당신의
젊음은
오늘을 사는 제 자신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큰 스승이시며, 
첫사랑이시며, 
삶의 벗이기에 
더욱 더 
사무치는 분입니다.
삶의 선택은
고해였습니다.
그 길 위에서
묵묵히 걸으며
인내와 지혜의 길을
가르쳐주신
은혜는
길이 빛 날 것입니다.
당신은
고요한 승리자이심을
감사드립니다.
만고의 길을 지나
오늘을 사시는
당당하신
어머니!
자랑스럽습니다!
음반을 내면서
한 낮의 태양은 대지를 열기로 가득하게 하는 삼복의 여름을 지나 열매의 향연을 만끽하는 계절의 길목에서 제 시조창을 음반에 담습니다.
생이 길다고 느껴지던 날 모든 시간은 흘러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힘겨운 삶의 길을 여행하던 제가 인생의 중반을 넘어 시조창을 만나고, 흠뻑 매료되어 시조인으로 살아 온지 30여년을 지납니다.
시조창은 제게 건강과 기쁨을 주는 선물이었으나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가르쳐 주던 장이었으며, 또한 제 삶의 애환과 인내를 종합하여 역어놓은 곱디고운 비단입니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제 시조 인생을 돌이켜 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굽이진 길과 깊은 심연을 건너 지금을 살고 있음은 은총이며, 선물임을 깨닫기에 더욱 더 소중한 순간입니다.
제 시조창이 여러분께 여유로움과 즐거움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사랑하는 딸에게도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시조창과 더불어 만난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시조창 해설을 해주신 연세대학교 윤덕진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음반 제작에 큰 도움을 주신 김일호 선생님과 양정환 감독님을 비롯한 제작진 여러분과 제 시조창을 위해 훌륭한 반주를 해주신 반주자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모든 분께 아름다운 삶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2011년  치악산의 숨결 원주에서
                                        雲峰  朴 益 子
운봉(雲峯) 박익자(朴益子) 선생 약력
1. 시조 경창 대회 수상 경력
 
   1985년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 을부 금상
   1985년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 특부 금상
   1986년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대전) 명창부 금상
   1988년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대구) 명인부 금상
   1996년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대구) 국창부 금상
2. 시조 관련 활동 사항
   1985년       :  인간문화재 김월하 회장으로부터 전국 시우단체총연합회 중앙본부 위원 촉탁
   1985년~현재 :  전국시우단체 총연합회 운영위원 및 시조사범
   1990~2008년:  고시조문학 동호회 상록시조회 회원
   1995년~현재 :  전국시조경창대회 시조창 심사위원
   1995년~현재 :  사단법인 전국시우단체 총연합회 원주지부 시조회관 운영
   1997년~현재 :  한국예술총연합회 원주지부 고문 및 회원
   2003년 10월 :  운봉 박익자 선생 시조창 발표회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2006년~현재 :  전국 시우단체총연합회 원주 지부장
운봉 박익자 선생의 시조와 삶
윤 덕 진 (연세대학교 교수)
한국을 선향으로 두었지만 박익자 선생이 태어나신 곳은 일본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는 동안 활동적인 오빠의 영향으로 동무들 사이에서 늘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 생활과 일본어 교습 등의 활동을 하면서 혼인도 하게 되고 평범한 주부로서 지냈지만, 박선생의 예술적 기예와 소양은 잠자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교육자였던 남편을 사별한 후에 생계를 위하여 꾸린 한복집은 원주 제일의 솜씨로 성황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원주 시조인들과의 교유는 박선생의 삶을 시조에 맺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종회 선생을 사사하면서부터 박선생의 일과는 새벽 현충탑 공원 목풀기서부터 주간 학운정 수련까지 시조로 시작되고 시조로 저물기 마련이었습니다. 전국 대회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는 생업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생활을 희생하면서 얻은 소득은 전국 시조인들과의 교류였습니다. 김월하 박기옥 이용복 선생 등등 중앙 시조회 인사들을 사사하면서 김정식(대금) 김성수(단소) 유흥복(장고) 선생 등등 음악인들의 지음을 가지게도 되었습니다.  
  원주문화원(황주익 원장 시)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운영되며 몇 차례의 전국대회까지 유치하였던 원주 지역의 시조계는 원주 시조인들의 중앙 진출이나 병고 등등을 계기로 급격히 위축되어 90년대에 이르러서는 원주 지역 단 한명의 시조인으로 박선생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백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신의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원주 시조계는 적막함을 면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국 지역대회 참가와 원주 지역 주요 행사 참여, 그리고 후진 교습을 멈추지 않은 박선생의 노고는 가히 헌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선생은 태생의 불굴하는 기개 때문에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맹렬한 정신으로 시조계에 종사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원주 시조계가 축소되었다는 폄평도 있을 수 있지만 열악한 조건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는 자세로서는 다른 방도가 있을 수 없었다고 봅니다. 팔순의 나이에도 퇴색하지 않은 박선생의 목청은 그 견결한 절도의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박선생의 고결한 정신은 시조를 통하여 영원히 지켜지리라고 믿습니다.
 
시조 가사
평시조(平時調) - 퇴계(退溪) 선생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후오곡(後五曲)>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 (하리라).
* 만고상청(萬古常靑):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고 푸르름. 곧 영원한 절대의 도(道)를 따르는 굽히지 않는 정신. 
  
평시조(平時調) -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
한산(閑山)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일성호가(一聲胡笳): 순라꾼이 경계를 위해 치는 딱딱이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트림.
사설시조(辭說時調)
팔만대장(八萬大藏)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임을 다시 보게 하오소서.
여래보살(如來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오백나한(五百羅漢) 팔만가람(八萬伽藍)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
후세(後世)에 환토상봉(還土相逢)하여 방연(芳緣)을 잇게 되면, 보살님 은혜를 사신보시(捨身報施) (하오리다).
* 여래보살(如來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석가모니불과 그 협시불(脇侍佛)들임.
* 오백나한(五百羅漢) 팔만가람(八萬伽藍) : 부처의 많은 제자와 그 전법 도량인 세계 도처의 절들.
*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서방정토를 주재(主宰)하는 아미타불의 협시불이 관세음보살임.
사설시조(辭說時調)
명년(明年) 삼월(三月)에 오시마드니 명년(明年)이 한(限)이 없고 삼월(三月)도 무궁(無窮)하다
양류청(楊柳靑) 양류황(楊柳黃)은 청황변색(靑黃變色)이 몇 번이며, 옥창앵도(玉窓櫻桃) 붉었으니 화개화락(花開花落)이 얼마인고. 한단침(邯鄲枕) 빌어다가 장주호접(莊周蝴蝶)이 잠간 되어 몽중상봉(夢中相逢) 하잤더니, 장장춘일(長長春日) 단단야(短短夜)에 전전반측(輾轉反側) 잠 못 이뤄 몽불성(夢不成)을 어이 허리.
가지어, 양안원성제부진(兩岸猿聲啼不盡)하고 야월공산두견성(夜月空山杜鵑聲)에 겨우 든 잠 다 깨는가 (하노라).
* 한단침(邯鄲枕): 당나라의 노생(盧生)이 한단(邯鄲)의 여사(旅舍)에서 도사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어 잠을 잤더니 메조[황량(黃粱)] 밥을 짓는 사이에 80년 간의 영화스러운 일생 꿈을 꾸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 장주호접(莊周蝴蝶): 장자(莊子)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깨어보니 장자가 나비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꿈을 꾼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말에서 나옴.
* 양안원성제부진(兩岸猿聲啼不盡): 이백(李白)의 <조발백제성(朝發白帝城)>의 한 구(句). 바깥 짝은 “輕舟已過萬重山”. “무산(巫山)과 협산(峽山)에서 나는 잔나비 소리가 채 그치지 않아 빠른 배가 이미 만겹 산을 지나갔다” 는 말로,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몸이 이미 멀리 떠나온 아쉬운 마음을 노래한 것임. 
여창(女唱)지름
달 밝고 서리 친 밤 울고 가는 저 기러기아
소상동정(瀟湘洞庭) 어데 두고 여관한등(旅館寒燈) 잠든 나를 깨우느니
밤중만 네 울음 한 소리에 잠 못 이뤄 (하노라).
* 소상동정(瀟湘洞庭):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는 양자강의 지류로서 두 물이 동정호에 합수(合水) 함. 
 
남창(男唱)지름
푸른 산중(山中) 백발옹(白髮翁)이 고요 독좌(獨坐) 향남봉(向南峰)이라
바람 부니 송생슬(松生瑟)이요 안개 걷어 학성홍(壑成虹)이라 주곡제금(奏穀啼禽)은 천고한(千古恨)이오 적다 정조(鼎鳥)는 일년풍(一年豊)이로다.
누구서 山을 적막(寂寞)타던고 나는 낙무궁(樂無窮) 인가 (하노라).
* 송생슬(松生瑟): 솔바람 소리를 비파 소리에 비유함.
* 학성홍(壑成虹): 골짜기에 무지개가 서림. 안개 걷힌 뒤에 환하게 드러난 계곡의 풍치를 무지개가 서린 듯 현란하다고 함.
* 주곡제금(奏穀啼禽): 뻐꾸기를 포곡조(布穀鳥)라 함. 봄에 파종(播種)을 알리는 울음을 운다는 말.
* 적다 정조(鼎鳥): 소쩍새의 별명. “솥이 적다” 는 말은 풍년이 듦을 예고하는 뜻임. 
온지름
기러기 떼떼 많이 앉은 곳에 포수야 총 함부로 놓지를 마라.
새북강남(塞北江南) 오고 가는 길에 그리든 님의 소식을 뉘 전하리.
우리도 강성(江城) 오월(五月)에 낙매곡(落梅曲) 듣던 사람임에로 아니 놓고 (삼가오).
* 새북강남(塞北江南): 북쪽 변방으로부터 따뜻한 강남까지. 기러기의 행로.             
* 낙매곡(落梅曲): 횡취곡(橫吹曲) 이름. <낙매화(落梅花)>. 이백(李白)의 <與史郞中欽聽黃鶴樓上吹笛詩>에 “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 의 구절이 있음.   
사설(辭說)지름
태백산하(太白山下) 에굽은 길로 중 서넛 가는 중(中)에 그 중의 말째 중아, 게 잠간 말 물어 보자.
인간이별만사중(人間離別萬事中)에 독수공방(獨宿空房)을 마련하시던 부처님, 어느 절 법당(法堂) 탑전탁자(榻前卓子) 위에 감중련(坎中連) 하옵시고 둥두럿이 앉았던가.
소승(小僧)도 수종청송(手種靑松)이 금시위(今十圍)로되 모르옵고 상좌 노스님 알으신가 (하노라).
* 탑전탁자(榻前卓子): 부처상을 모시는 탑상(榻床)의 탁자. 
* 감중련(坎中連): 감괘(坎卦)의 상형(象形). 무지(拇指)에 장지(長指)를 붙인 부처의 항마인(降魔印). 
우조(羽調)지름 - 당(唐) 최호(崔顥) <황학루(黃鶴樓)>시(詩)
석인(昔人)이 이승황학거 (已乘黃鶴去)허니, 차지(此地)에 공여황학루(空餘黃鶴樓)ㅣ로다.
황학(黃鶴)이 일거불부반(一去不復返)허니, 백운천재공유유(白雲千載空悠悠)ㅣ로다.
청천(晴川)엔 역력한양수(歷歷漢陽樹)이어늘 방초처처앵무주(芳草萋萋鸚鵡洲)ㅣ로다.
일모향관(日暮鄕關)이 하처시(何處是)오. 연파강상(煙波江上)이 사인수(使人愁)를 (하소라).
* 황학루(黃鶴樓): 무창부(武昌府) 서남에 있는 누대. 옛날 비문위(費文褘)라는 이가 등선(登仙)하여 황학을 타고 이 다락에서 쉬어간 데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함. 또, 강하군(江夏郡)의 신씨(辛氏)가 술을 팔았는데, 키가 큰 남루한 차림의 선생이 술을 청하므로 돈을 받지 아니하고 반년을 대접하였더니 술빚 대신에 작은 등롱과 귤껍질로 황학을 벽에 그려주었다. 그 앞에 앉아서 손뼉 치며 노래하면 황학이 너울너울 춤을 추어 이로 인해 신씨는 십년 여에 거부가 되었다. 뒤에 선생이 표연히 나타났을 때 신씨가 사례하려 하니 사양하고 문득 피리를 부니 흰 구름이 공중에서 나려오고 그림 학이 선생 앞에 날아와 타고 가 버렸다. 이에 신씨는 그곳에 누대를 세웠다 한다.  
 
중허리시조 - 천금(千錦)
산촌(山村)에 밤이 드니 먼듸 개 즞어 온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空山)에 잠든 달을 즞어 무삼 (하리오).
각시조(刻時調)
행궁견월상심색(行宮見月傷心色)에 달 보아도 임의 생각
야우문령장단성(夜雨聞鈴腸斷聲)은 빗소리 들어도 임의 생각이로고나
원앙와냉상화중(鴛鴦瓦冷霜華重) 헌데 비취금한수여공(翡翠衾寒誰與共)고
경경성한욕서천(耿耿星漢欲曙天)에 고등(孤燈)이 도진(挑盡)토록 미성면(未成眠)이로고나
아마도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이로되 차한(此恨)은 면면무절기(綿綿無絶期)를.
*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당명황(唐明皇)과 양귀비(楊貴妃)의 염사(艶事)를 소재로 한 장편 악부시] 60구 중에 4구를 뽑아 지었다. 특히, 양귀비의 죽음 뒤에 이궁(離宮)에서 홀로 그녀를 그리는 명황(明皇)의 심사를 그린 대목에서 적구(摘句)함으로써 이한(離恨) 주제를 강화하였다. 종장은 <장한가(長恨歌)>의 결구를 따왔다. 
  
남창(男唱)지름
바람아 부지 마라 휘어진 정자(亭子)나무 잎이 다 떨어진다
세월아 가지 마라 녹빈홍안(綠鬢紅顔)이 공로(空老)ㅣ로다
인생이 부득항소년(不得恒少年) 이니 그를 설워하노라.
* 녹빈홍안(綠鬢紅顔): 푸른 윤기가 도는 검은 머리와 붉은 광채가 나는 얼굴. 곧, 젊음의 제유(提喩)이다. 
            
우조(羽調)시조
나비야 청산(靑山)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어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 허거든 입에서나 (자고 가자).
엮음지름
학(鶴) 타고 저(笛) 불고
호로병(葫蘆甁) 차고 불로초(不老草) 메고 쌍상투 짜고 색등거리 입고 가는 아희야 게 잠간 섰거라 말 물어보자 요지연(瑤池宴) 좌객(座客)들이 누구누구 와 계신고
내 뒤에 선옹(仙翁)이 오시니 거기 물어(보시소).
* 색등거리: 색동마고자. 색동으로 소매를 대어 만든 어린 아이의 마고자.
* 요지연(瑤池宴): 주(周)의 목왕(穆王)이 요지(瑤池)에서 서왕모(西王母)와 주연(酒宴)을 베풀었다는 고사.        
엮음지름
푸른 산중하(山中下)에 조총대 들어 메고 설렁설렁 나려오는 저 포수야,
네 조총대로 날버러지 길짐생 길버러지 날짐생 너새 증경이 황새 촉새 장끼 가토리 노루 사슴 토끼 이리 승냥이 범 함부로 탕탕 네 조총대로 다 놓아 잡을센정 새벽달 서리 치고 지새는 밤에 동(東)녁 동(東) 다히로 홀로 짝을 잃고 계울음으로 울음 울고 가는 외기러길랑 행여나 네 놓을세라.
우리도 아무리 무지(無知)하여 사냥 포술일망정 아니 놓삽네.
시조창 해설
윤 덕 진 (연세대학교 교수)
1. 시조창(時調唱)의 유래와 창법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석북집(石北集)』「관서악부(關西樂府)」108수 가운데 제15수는 평양감사가 기생들을 점고하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양귀비의 고사를 인용한 노래를 부르는 앞 구절 다음에  “모든 시조에 장단을 맞추는 이는 한양으로부터 온 이세춘이라 (一般時調排長短 來自長安李世春)” 이라는 뒷구절이 이어지는데 이 구절을 시조 창법 내지 장단법의 창안에 대한 것으로 읽으면서 이세춘을 시조 창법의 창시자로 보는 견해가 나왔다. 한편,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유예지(游藝志)」에 실린 「양금보(洋琴譜)」의 시조 악보가 현행 평시조와 같은 악조로 확인되므로 18세기에 새로운 악조인 시조가 불리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정조 때 이학규(李學逵: 1770~?)의 『낙하생고(洛下生稿)』「고불고시집(觚不觚詩集)」에서 시조를 ‘시절가(時節歌)’로 부른 것처럼 시조는 신조(新調), 곧 이전까지 성악의 주류를 이루던 대엽조 중심의 가곡과는 다른 새로이 애호받기 시작한 가창 곡조에 대한 명칭이었다. 가곡(歌曲)의 우조(羽調)·계면(界面) 노래말을 그대로 쓰지만 박절이 빨라지고 선율에 있어서도 반음을 수반한 굴곡을 지녀서 애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배반순서(配伴順序)와 예석절차(禮席節次)를 갖추어야 부르던 가곡의 존엄(尊嚴)한 노래자리보다도 양반과 평민(平民)을 막론하고 혼자이면 심심풀이, 둘이 앉으면 화답和答하기, 셋만 모여도 벽(壁)돌림, 봄이면 꽃노래, 밤이면 달읊기, 술 마시면 흥타령(興打鈴), 그리우면 임시조, 각각 취미대로 부르게 되었다. 억양절주(抑楊節奏)에 있어 곡절(曲節)이 많은 가곡보다도 순조롭게 수시(隨時)로 한다하여 “시조(時調)” 곧 시절가조(時節歌調)란 명칭을 얻었다고도 한다.
  가곡창(歌曲唱)에서 가사창(歌詞唱)이 생기고 가사창(歌詞唱)에서 시조창(時調唱)이 생겼다고 하니, 가사(歌詞)투리를 닮은 시조창(時調唱)이라야 될 것이다. 자음(子音) 다붙임[예: “만학(萬壑)”에서 만자(萬字) 종성(終聲) ‘ㄴ’ 을 학(壑)의 앞에 경음(硬音)으로 붙여지는 것- “마학”. “없다”를 “어읎다” 따위]은 가곡(歌曲)에서 들을 수 있는 자(字)붙임이며 만일 이 자(字)붙임이 완전하지 못하면 소릿제=창극조(唱劇調) 같이 들리는 제(制)가 된다. 넘기는 마디[억양절주(抑揚節奏)]는 가사(歌詞)에 닮아서 평시조(平時調)나 사설(辭說)시조 등은 <상사별곡(相思別曲)>·<황계사(黃鷄詞)>·<백구사(白鷗詞)>·<어부사(漁夫詞)>에서,질름청(淸)은 <춘면곡(春眠曲)>·<처사가(處士歌)>·<양양가(襄陽歌)>·<죽지사(竹枝詞)>·<상사별곡(相思別曲)>에서 공통되는 목머리를 많이 들을 수 있다. 또한, 노래를 숭상하던 옛날부터 전해온 말이 평시조는 ‘영판(嶺板) 좋다’ 하며, 사설(辭說)은 완조(完調), 지름은 경제(京制)라 하여 지방적 특색을 쳐주었다. 
  영언(永言)이란 말은 노래를 이름이니 어감이 틀리고는 말이 될 수 없다. 어떤 숙어든지 두 자로 되었으면 앞에 있는 자(字)의 발음이 길면 늦게, 짧으면 잦게 붙여야 된다. 실례를 들면 자음(字音)에 따라, 성인(聖人)과 성인(成人), 금성(金聲)과 금성(琴聲), 섬(島)과 섬(石), 밤(夜)과 밤(栗), 만년(晩年)과 만년(萬年) 따위들의 말을 구별하게 된다. 한시(漢詩)의 자(字) 고저(高低)와 같이 높은 자(字), 얕은 자(字)라 칭하기보다 긴 발음, 짧은 발음이라 하여 국문에도 통용되는 말을 써야 된다. 토씨에 있어 “은, 을, 는, 를” 들을 “언, 얼, 넌, 럴” 들로 폐구개(閉口蓋)의 불편을 느껴 그 홀소리를 잘못 붙이기 쉬우니 변음(變音)이 없도록 주의하며 고어(古語)는 가사(歌詞) 소성연대(所成年代)에 쓰던 말, 작가의 원문(原文) 그대로 보자(保字)하여야 된다.
2. 시조(時調)의 종류와 명칭
① 평시조 [평거시조(平擧時調)· 평조(平調)]: 시조의 원조로 평시조에서 이치를 다 찾아야 좋은 시조가 나올 수 있다. 황종(黃鐘)과 중려(仲呂) 양음을 기본음으로 한다. 보통 글자수가 44~45자 내외가 표준이다.
② 사설(辭說)시조 [사설·말시조·주심=습조(拾調)]: 평시조와 동일한 장단과 박자 속에 각장의 자수가 파격적으로 많은 가사를 가지고 부르기 때문에 평시조처럼 성음을 길게 빼지 못하고 말을 자주 붙이게 된다는 뜻에서 말시조라고 하며 말을 주섬주섬 줍는다고 해서 주심 또는 습조(拾調)라고도 한다.
③ 여창(女唱)지름[두거시조(頭擧時調)·질음여창(叱音女唱)·평(平)지름]: 초장을 고성으로 질러 부르는 것을 지름이라고 하는데,  여창(女唱)은 평청(平淸)으로 내다가 속청으로 질러낸다. 
⑤ 남창(男唱)지름[삼삭시조(三數時調)·상성(上聲)]: 초장을 고성으로 질러내되, 겉청으로 들어내다가 속청으로 질러낸다. 
⑥ 사설(辭說)지름[사슬지름·말질림]: 남창과 같이 질러 내되 사설시조의 구격으로 자수가 배정된다.  
⑦ 온지름: 남창 지름 초장에 중허리 중장을 이어 부른다. 
⑧ 중허리시조(時調) [중거시조(中擧時調)]: 초장중(初章中) 오점(五点) 머리만을 들어내는 법인데 각지역의 특수한 창법(唱法)을 가미하고 중장(中章)을 지름으로 함.
⑨ 각시조(刻時調): 중장(中章)에 각(刻)이 들면 “선각시조(先刻時調)” 종장(終章)에 들면 “후각시조(後刻時調)”라 하여 본점(本点) 이상에 첨가한 삼점각(三点刻)이나 오점각(五点刻)이 창법(唱法)은 각각 일정하고 중장(中章)은 많이 지름으로 함.
⑩ 엮음지름: 초삼점(初三点) 혹은 초오점(初五点)까지 남창(男唱)지름으로 시작하고 다음은 세마치 장단(長短)에 맞추어 초장(初章)까지 혹은 중장(中章)까지 계속하되 중(中)·종장(終章)은 다시 지름과 같이 함.
⑪ 우시조(羽時調): 초장(初章) 재팔박(再八拍)을 우조창(羽調唱)으로 함. 초장 재팔박은 가곡 우조의 분위기를 지니는 곳으로, 우대시조, 곧 양반 사대부들이 거처하던 우대-북촌 지역에서 불리던 시조라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 평시조 악보(樂譜)의 실제 분석> (청산은 어찌하여)
(1) 이 표는 초장의 첫 어절로 첫 가사를 보면 ‘청’과 ‘사’의 음계(音階)의 차이가 있다. 반음(半音) 높이 잡아가지고 반음(半音) 낮게 눌러야 한다. 윗줄은 중려(仲呂)줄이므로 ‘청’은 중려(仲呂)보다 반음(半音) 높은 유빈(蕤賓)에서 시작해서 ‘사’는 중려(仲呂)로 내려온다. 한 대박(大拍) 안에 들박, 쉴박, 날박의 소박(小拍) 셋이 있다. 샵 옆에 4가 있는 것을 유빈중려(蕤賓仲呂)라고 하는데 이것이 소박(小拍) 하나, 즉 들박을 차지하는 것이다. 밑에 줄이 그어져 있고 그 바른 편에 작은 점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선일후삼 (先一後三)’ 을 의미한다. 왼편에 찍히면 ‘선삼후일(先三後一)’이다. 소박(小拍)은 또다시 각각 4박으로 나뉘고 따라서 대박(大拍)은 12분박으로 나뉘게 되는데 점 하나는 1/12을 가리킨다. 따라서 ‘청’ 소리는 소박에서는 1/4로, 대박 안에서는 1/12에 해야 한다. ‘청’자가 언제 나왔는지 모르게 ‘사’자가 붙어야 한다. ‘사’는 소박에서 나머지 3/4를 쓰고 대박에서 나머지 11/12을 모두 끌어준다.
  이 부분의 곡태는 “한운출수(閑雲出峀)”- 즉 한가로운 구름이 골짜기에서 나오듯, 헌건스럽게 씩씩하고 여유있게 꿋꿋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부분이란 뜻이다. 호수에다 돌을 던지면 물결이 쳐서 살랑살랑 거리듯 흔드는 소리가 나와야 한다. 그렇게 대박 3을 나가다가 ‘산’의 마지막 자음인 ‘ㄴ’을 발음해주고 네 번 째 대박부터는 낙착법(내림법)으로 ‘으’에서 아래 ‘ㆆ[경음(硬音)]’으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이다. ‘ㆆ’소리는 경음(硬音)으로 위의 ‘ㅡ’는 딱가리를 아래 ‘ㅇ’는 후두 즉 목구멍을 표시한 것으로 목구멍을 안으로 딱 막았다가 여는 소리로 센소리가 난다. 힘을 꽉 줬다가 빨리 풀어준다. 경음(硬音)이 윗줄에 있을 때는 파열음으로 소리를 터트려 주어야 한다. 이 부분은 고저가 분명하게 내 주어야 한다.
(2) 초장의 두 번째 어절로 “연비려천(鳶飛戾天)”의 곡태로, 솔개가 날아올라 하늘을 비끼듯이, 살짝 들쳐 내어 ‘하아~’에서 내려 떼기로 살짝 내려갔다가 창공(蒼空)에 배회(徘偭)하듯 죽 이어준다. ‘하아~’를 낼 때 흔들어 주다가 살짝 아래로 내려 떼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올라간 데는 눌러놓고 내려간 데는 올려놓는 이치를 이해해야 한다. 보통 걸음을 걷더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발바닥 앞 쪽부터 눌리는 것처럼 앞에서 내려가야 할 때는 들여 때고 올라가야 할 때는 숙여 때는 것이다. 호흡이 짧은 사람은 이 부분에서와 같이 박자가 넘어갈 때 눈치 못 채게 도둑숨을 쉴 수 있다.
(3) 초장의 세 번째 어절로 ‘만고에’는 ‘한상효월(寒霜曉月)’의 시상을 표현해야 한다. 찬 서리에 밝은 달이 비추듯,  ‘만고’에서 살짝 흔들었다가 ‘ㆆ 경음(硬音)’이 나오면 윗줄의 경음(硬音)은 파열음으로 소리를 터트려 내준다. ‘에~’는 줄 위로 올라와서 떨어주다가 끝에 휴지부(休止符)가 나오는 부분에서 올려떼기를 해준다. 마지막 대박은 배전성(背轉聲)으로 그냥 떠는 소리와는 다르다. 아래에서 소리가 올라오면서 떨어 주어야 한다.
(4) 초장의 마지막 어절로 (5 ․ 8 ․ 8 ․ 5 ․ 8)의 뒤의 (5 ․ 8)부분이다. 총 9개의 대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제로는 총 13개의 대박으로 계산해야 한다. 나머지 4박은 소리가 나지는 않지만 반주가 있을 때는 모두 지켜져야 하며 소리가 나지 않는 상태로 4박을 표현한다.
(5) 중장의 첫 어절로 “유수는~”에서 중려줄 위로 간 소리가 있다. 이것은 중려성보다 반음 높은 소리로 유빈성으로 내야 한다. 여기 나오는 ‘ㆆ경음(硬音)’은 소리를 아주 굳혀서 내는 것이다. 이 부분의 시상(詩想)을 내자면 묘입운중(杳入雲中)하듯, 구름 속으로 아득히 들어가 사라지는 듯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ㆆ’음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리가 중려성으로 내려오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것으로 전달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느’ 소리는 조금 밀다가 끝으로 갈수록 소리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잦아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목을 풀어주는 소리로 ‘해성(解聲)’이라고 한다. ‘유수느~으’의 끝에 거꾸로 된 세모에 ‘ㄴ’은 장식음으로 유빈(蕤賓), 중려(仲呂), 유빈(蕤賓)으로 떨어준다.
(6) 중장의 둘째 어절로 이 부분은 ‘속소리’[세성(細聲)]으로 ‘찌이’는 유빈성하고 남려성이다. ‘찌이’ 다음에 ‘이’로 한 번 더 눌러 준 것은 유빈성 다음에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눌러준 것이다. 세성(細聲)은 가늘고 높은 소리로 힘을 빼고 올려야 하며 보통은 여창에서만 쓰인다. 속소리로 가다가 나오는 윗삼각은 상삼각이라고도 하는데 장식음으로 2/12로 약간 느리게 끌어주는 효과를 낸다. 반음 높은 소리, 반음 낮은 소리, 반음 높은 소리가 합쳐진다.
  ‘장강유수(長江流水)’의 시상으로 처음에는 오르내림이 없고 출렁거리기로 쭉 이어가다가 그치지 않고 흘러가듯 곤곤(滾滾)하게 표현해준다.
(7) 앞에 ‘유수는’ 부분의 끝에서는 조금 밀다가 아래로 좀 내려가듯이 표현했는데 여기서는 아랫소리를 단박질해 내려야 한다. 이를 서정형이라고 하는데 준전성으로 내다가 바로 경음(硬音)으로 떨어뜨려 낸 뒤 ‘에’를 잡고 뻗어나가다가 흔들어준다. 이 부분은 ‘고산방석(高山放石)’으로 시상을 내주어야 하는데 한참 내려가기로 흔들다가 툭 떨어져 궁글듯이 이어준다. 끝에 보이는 하삼각은 상삼각이 2/12로 약간 느려졌던 것과는 달리 1/12로 빠르게 삼음(三音)을 내준다.
(8) 이 부분은 중장의 끝부분으로 총 대박이 13개가 있어야 하지만 11개만 있다. 마지막 부분은 8박이 아닌 6박만 있지만 박을 계산할 때는 존재하지 않는 2박도 계산한다. 이는 실제로 노래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반주를 동반할 때 쉼박으로 표현된다.
  중장의 끝부분은 ‘평사낙안(平沙落鴈)’의 시상으로 불러야 하는데 이는 기러기가 사뿐 내려앉는 형상을 내라는 것이다. 저기 먼데 앉을 곳을 바라보며 그냥 살짝 날라다가 사뿐 내려 앉는 분위기로 아주 조용하게 살짝 끊어서 표현한다. 끝 부분에 휴지부(休止符)가 안 나오고 0으로 끝나면 쉬어줘야 한다.
(9) 이 부분은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시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돛단배가 개선장군처럼 포구로 들어오는 형상처럼 해야 한다. 여기선 중장처럼 세성을 안 넣었다.
(10) ‘찌’ 앞에다 경음(硬音)을 넣었다. 경음(硬音)은 파열음, 모 깨치는 소리라고도 한다. 그 뒤에도 내릴목에서 위에도 있고 또 그 다음 대박에서는 위 아래 두개의 파열음이 나오는 데 이런 부분을 과장형이라고 한다. 이 부분은 살짝 올려서 톡 치는 듯한 느낌으로 불러야 한다. ‘마라’ 부분은 “허공”이라고 하는데 그림에서처럼 좃아 올라가는 듯이 표현해야 한다. 끝부분은 배전성으로 아래서 소리가 올라가듯 나는 것이다.
(11) 이 부분은 시의 종장 끝부분으로 ‘완여반석(完如盤石)’의 시상으로 아주 단단하게 굳은 소리가 나와야 한다. 원래 (5 ․ 8 ․ 5 ․ 8)의 마지막 (5 ․ 8)이 있어야 하는 부분으로 끝부분은 대박 하나만 남고 없다. 시조의 특징상 종장의 끝 어절을 노래하지 않고 끝맺기 때문에 종결의 의미로 굳게 맺어 끝내는 것이다.
4. 작품 해설
1) 평시조 <청산은 어찌하여>
  퇴계 선생의 <도산십이곡> 후오곡(後五曲)으로서 영원한 자연에 대한 그치지 않는 외경심을 “어찌하여” 라는 의문 부사로 이끌어지는 의문으로 표출하였다. 이 의문사는 초장에 이어 중장에도 되풀이되면서 고음[세성(細聲)]으로 강세를 두었다. 종장 결구의 “만고상청(萬古常靑)”에 이르는 노래길에는 깊은 의문을 해소하려는 진지함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이처럼 경건한 의문 제기로 출발하여 겸손한 학구의 자세로 귀결하는 경로에서 고단하게 수행하는 자에게 던져지는 위안의 곡조로 규정되어 있다. 운봉 선생의 노래에서는 미성의 고음이 제시하는 간절한 희구의 분위기를 느끼게 되는데, 이 느낌은 시조를 위해 일생을 투신한 구도자적 면모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2) 평시조 <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작자로 선정된 이순신장군이 내포 지역 출신인 때문인지 이 작품은 내포제 시조의 평시조 주요 곡목으로 유지되어 왔다. 내포제 평시조는 중장의 세성 고음부를 두지 않음으로써 담담한 정서의 유로에 의지하고 있음을 표명하고 있다. 다만, 종장 첫마디에서 꺾이는 소리가 들림으로써 이 시조도 다른 작품이나 마찬가지로 시조의 본령인 애상을 주조로 함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꿋꿋한 기상을 유출하고 있어서 일시적인 애상이 침윤하지 못할 기운을 지님을 확인하게 된다. 운봉 선생이 내포제에 관심을 가지고 소동규 선생 유흥복 선생들과 교류하면서 특별히 이 작품을 택하여 연찬하였을 때, 세파에 타협하지 않고 예술세계를 지켜나온 굽히지 않는 기상을 확인하고 애착을 가지게 되었으리라. 하여, 운봉 선생의 한산섬은 그이가 평생 그리던 이상적인 예술세계의 모형이 되었던 것이리라.  
3) 사설시조 < 팔만대장>
  어느 고적한 절터, 듣는 이 없이 부르는 노래는 내생에 보지 못할 나를 기리고, 전생에 만나지 못할 나의 분신을 그리는 주제이어야 하리라. 부처님, 보살님, 오백 나한님, 팔만 가람에 찾지 못할 나의 님은 어디 계시온 것이오니까? 나의 마음에는 어느 절이고 법당 탁자 위에 앉아계신 그 분이나 아니올까 하니 만일, 만일에 나의 님을 찾아 주신다면 후생에 보살님 전에 봉촉등향을 마지 않을 것이오니 찾기만 찾게 하옵소서. 운봉 선생이 어느날  한가한 가람에서 이 노래를 불렀을 때에 많은 인연을 지닌 이들이 흔들리는 마음으로 눈물짓던 일을 내생인들 어이 잊으리오? 이 시조는 완제의 주요 곡목으로서 운봉 선생은 평소 완제의 연면한 정서를 사랑하는 가운데 특히 이 곡을 애창하였다.      
4) 사설시조 <명년삼월에 오시마더니>
  사설이 늘어나면서 슬픔도 이어지는 것이니 말로써 풀 일이 아닐진대 노래로나 읊조려 보아야지. 오신다는 날이 하냥 그날이듯이 명년 약속도 한정이 없군요, 버들가지 청청하다 버들가지 누르르며, 앵도꽃 선연한 빛, 잊히기 전에 가을이로세. 잠이나 들어 꿈 꾸이면 뵈올 것인가? 장주 호접인들 깨인 눈에 뜨일 것인가?  가지어, 슬픈 잔나비 울음 그치지 않고 밤 이슥히 뻐꾸기 울어 다 든 잠을 깨우는데. 애잖구나! 삶이어. 면면한 설움이 넘쳐넘쳐 여기 한 여성女聲을 노래토록 하나니. 사설시조 가운데 이 작품만큼 곡조의 굴곡이 정서에 부합하는 경우가 없는 듯하다. 오르내리는 완만한 굴곡에 담긴 기다림 설레임 열망 낙담 실의 감상感傷 등등이 그때그때의 곡조에 부응하여 배설되어 있다. 사랑이란 끝나지 않는 문제이니 이리도 서리서리 베품만 한 무어 다른 일이 사랑에 빠진 넋을 어루만질 수 있단 말인가?
5) 여창지름 <달 밝고 서리친 밤>
  지름시조의 고음은 청황종까지 이르러야 하거늘 처음 시작하는 중려성 날을 잘 벼르어야만이 고운 비단 째는 듯한 소리를 얻을 수 있는 법. 때에 따라서는 너무 낮게 시작하여 고성의 감동이 전하여지지 않거나 너무 높게 시작하여 오름의 초입에서 주저 앉기도 하느니, 사나운 매가 짓치듯이 소리를 끌고 가는 힘은 오랜 연마에 의하여서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운봉 선생은 젊은 시절 인적 끊긴 산 속에서 모골이 송연한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소리의 언덕을 올라갔노라고 한다. 추녀를 뚫고 하늘에 닿는 소리란 시공을 넘어서 계심과 비우심의 구분까지 지워지는 거기 들려지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소리가 높다함은 그 닿는 곳의 위치를 말함이오. 질러 거세다 함은 그곳에 닿으려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의미가 된다.     
6) 남창지름  <푸른산중 백발옹이>
  한거독락하는 노옹의 여유를 그렸으되 질러 시작함은 정일하기만한 산의 적막을 깨어 뜻을 온산에 전하려는 것이리라. 바람 불면 솔나무 비파 되고 안개 걷힌 골짜기는 붉은 무지개를이루었구나! 뻐꾹새 천년 한을 노래하고 소쩍새 배고픈 설음을 달래주나니 이런 풍치 이런 악률 가운데 즐거움이 무궁하구나! 그러므로 산은 결코 고요히 가라 앉아 있기만 함이 아닌 것을! 이 노래는 모든 강호지락의 예고라도 되는 듯, 들으면서 같은 주제의 노래들을 떠올리게 한다. 평시조 <추산이 석양을 띠고> 사설시조 <세상공명 부운이라> 등등. 말하자면 이 지름시조는 강호한정을 가장 강하게 표출한 예가 되는 것이니 전반부의 소리 오름이 울린 메아리가 소리가 가라앉는 후반에 가면서도 잔잔히 이어진다. 운봉 선생은 여성으로서 산옹의 의관을 차릴 수는 없지만 그이가 즐겨 그리는 한국화의 정경 속에 고요히 잠기고 싶은 마음을 이 노래를 통하여 표출한 듯하다.  
7)온지름  <기러기 떼떼>
  온지름은 왼통 지르는 소리로 가득 채우는 노래이니 “님에게 소식 전하는 저 기러기만은  제발 잡지를 말려므나!” 하는 바램이 전체를 뒤덮고 있다. 초장에서 토로한 이 바램은 중장과 종장에서 나와 포수의 대화로 부연되는데- “나와 님 사이에는 다른 아무 간섭도 필요 없는 것인데 어찌하다 이리도 만날 길 없는 처지가 되었든고? 기러기야, 네 발에 묶어 전신하는 이 마음을 포순들 어찌 알 수 있겠느냐? 포수는 새를 잡아 생계를 이어야 하니 총을 아니 놓지 못하고 나는 님을 그리어 만나는 외에는 다른 바람이 없으니 다른 샐랑 잡더라도 소식 전할 기러기만은 꼭 남겨 두려므나.” 포수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는터, “우리도 총질을 하긴 하오만 사랑은 아는 사람이라오. 우리가 쏘는 것은 고기 줄 살진 짐승이지 편지 전하는 전신조가 아니라오.” 나의 바램이 더 간절한 때문인지 중장에는 지름의 고성도 많고 꺽임목, 휨목까지 동원하여 설득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거기 비하면 종장의 포수 대답은 심드렁하기만 하니 사랑에 휩싸인 격정의 당사자와 곁에서 보는 방관자의 차이이리라. 이 작품에 이르러 시조가 꽉찬 사랑노래임을 알게되니, 거의 전 작품이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사랑 노래에서 시조의 본령인 애상이 깊이 발현됨을 볼 수 있다.
8)사설시조 <태백산 하>
  태백산 아래 에이 굽은 길로 제 절에 돌아가는 길인 듯 중 서넛이 나란히 가고 있습니다. 나 많은 스님은 어렵고 그 중 어린 사미승짜리라면 내 말을 들어줄 듯도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이별도 지으신 것이라면 내님이 어디 계신지도 아실터인데, 그 님은 법당에 앉으신 부처님처럼 원만구족한 상호를 지니셨으니, 보셨더라면 아실터인데, 어디 계신 줄 제발 부탁 알아 좀 주실 수 없을까?” 사미승은 휘적휘적 걸으면서 건성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절밥을 몇 핸지 잘 모를만큼 먹었지만 사랑 잃은 사람이 한둘이랍디까? 일일이 간섭하다간 내가 환속하게 되리다. 저 앞에 가는 노스님은 돌아갈 세상도 잊었으니 게가 물어나 보소” 물음은 공소해지고 남은 것은 법당 탁자 위에 잘 모셔 놓은 부처님 닮은 우리 님의 모습뿐이었습니다. ( 자기 님이 부처님 같다고 여기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을 터인데 여기 화자는 특히 모습을 자세히 그리고 둥두렷이 떠오르는 환상에 빠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노래도 이 대목에서 수식이 많고 굴곡이 심해 화자의 정서에 부합하고 있다.)
9) 우조지름  <석인이 이승>
  당나라 최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 시를 가사로 삼았다. 애송되던 명시를 가사로 한 것은 시조를 즐기던 이들이 한시도 함께 했다는 말인데 한시를 읊조리고 읊조리다 보니 노래로 불러 흥을 배가시키고 오래도록 많은 사람의 입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람에서 이 일이 비롯했으리라. 우조란 우대시조, 곧 북촌 양반들이 즐기던 곡조란 말인데 한시의 품격에 맞추느라 우조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거기서 또 지름으로 꾸밈은 담긴 정서를 최대한 증폭시켜 보려는 의도일 터인데, 실제로 이 노래를 듣노라면 학 타고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토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작하는 초장 머리부터 띄운 분위기는 다소 설명적인 어투의 중장에서도 끝머리에서 되살아나, 종장으로 이어져 돌림목, 꺽임목에 마지막 “사인수를” 의 능청거리는 전성으로까지 드러내고 있다. “시중유화(詩中有畵)” 라더니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어딘가 익숙한 냇가의 수양버들, 그 너머의 높다란 정자의 풍경이 그려진다. 한양수나 앵무주를 보지 못하였더라도 절로 그려지는 그림은 우리네 주변의 친숙한 풍광 때문이겠지만 그만큼 노래의 힘이 크다는 것이니 “가중유화(歌中有畵)”라야 더 잘 맞는 말이 되겠다.
10) 중허리시조  <산촌에 밤이 드니>
  중허리란 중간 허리를 든다는 것이니 시작은 조용한 산촌의 적막으로 그리되, 먼 데 개 짖는 소리로 깨지는 순간부터 들어 올려지는 소리길을 말함이다. 누구일까, 사립문을 여는 동작이 느리게 재현됨은 화자가 고독한 처지에 있음을 가리킨다. 내다보니 역시 찾는 이 없고 기다림이란 차거운 하늘처럼 허망하며 중천의 달만이 심회를 돋움을 중장 후반부의 격렬한 소리 굴곡으로 표시하였다. 종장은 심상히 개나 나무랄 따름이니 이 노래의 요체는 중장의 요동침에 있는 터, 이 또한 중허리의 이름에 들어 맞는다. 운봉 선생 말씀에 중허리가 수월치 않은 노래라 함은 이 가운데가 올라간 정서의 배치를 가리켰음이리라. 잠잠하다 수선하고, 잠잠하다 수선하기를 되풀이 하는 일이 하냥 떠드는 일보다 어찌 수월할 수 있으랴. 소리길의 산전신고를 겪은 이만이 맞출 수 있다는 말씀을 새삼 깨닫게 된다.  
11)각시조 <행궁견월>
  각이란 같은 악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사를 늘리어 나가는 것이니 <용비어천가> 같은 장편 시가에서 선조를 칭송하는 경건한 마음을 가득 담은 서사나 결사를 제외한 중간 부분에 선조의 사적을 여러 장으로 나누어 열거하는 데나, <장진주사>에서 “한잔 먹새근여, 또 한잔 먹새근여” 로 권주한 뒤에 아니 먹지 못할 연유를 늘어놓는 중장 부분에 가사를 확대한 수법이 각에 해당한다. 각시조로는 이백의 <봉황대> 시와 같은 명편을 노래하는데, 전부 8구로 된 데에서 3~6구 까지 대를 이루는 부분을 각으로 처리한다. 이 부분은 의상이나 율조로나 짝을 이루어 중간부의 견실한 구조를 보이면서 교차하는 정서의 변환을 내비추이는데 실제 악조상으로도 규칙적인 오르내림의 반복이 정서의 점층적인 강화를 야기하고 있다. 여기 백낙천의 <장한가>를 적구한 각시조 <행군견월>은 “원앙새 수 놓은 막새에 서리꽃 두텁고, 비취빛 비단 이불이 서늘하니 눌로 더불어 함께 할고? 반짝이는 은하숫가 날 새려는 즈음에 외로운 등불이 다 타도록 잠 못 이루는구나” 라는 중간부에서 각으로 노래하고 있다. 종장에서 토로하듯이 “ 하늘이 길고 땅이 오래되 다할 날이 있으려니와 이 내 정한은 면면하여 그칠 날이 없으려니” 라는 주정(主情)을 시작서부터 이어 나온 것이니 각으로 반복하는 내용이란 원래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가기로 하였던 미해소의 이한(離恨)이었다. 운봉 선생이 완제를 애호한 것이 애상적인 정한이었는데, 각시조 가운데에서도 <봉황대>와 같은 유장한 회고의 정보다는 면면한 정한이 이어지는 <행궁견월>을 택한 것이 비슷한 맥락에서 일 것이다.      
12) 남창지름  <바람아 부지마라>
  운봉 선생이 이 노래를 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비록 여성이지만 굽히지 않는 기개의 소유자로서 자연의 철칙에 대한 인간 의지의 확인을 표명하는 이 작품의 자세에 동감한 것이오, 다른 하나는 앞의 주제에 따른 곡조의 거센 굴곡이 던지는 모험에 대하여 관심을 놓지 않은 것이다. 이 주제와 곡조가 공조하는 드센 흐름은 여느 지름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특히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마라”의 금지사에 두어진 강한 음조에서는 운명에 대한 부정을 전제한 굳센 인물 형상을 그리게끔 한다. 인간의 의지는 천리를 거부할 수도 있을 만큼 강열한 태세를 지닐 수도 있지만, 성숙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질서 앞에 겸허해 질 수도 있어야 하는 법. 나이 들어 늙어가는 이치를 담담히 수용하는 목소리가 설운 정서로 귀결할 때에 그 꿋꿋하던 기개는 비굴하게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선 장송처럼 쓸쓸한 아름다움을 남기는 것이다.
13) 우조시조 < 나비야 청산가자 >
  운봉선생이 항용 말씀하시기를 시조의 최고 경지는 우조시조라 하였다. 우조의 “우”에 관한 해석에서 위. 곧 상(上)을 말함이니 고관대작들이 사던 우대-북촌을 가리킨다 함을 가장 근리한 것으로 본다. 운봉 선생 자신의 삶이 체면 자존 염치와 같은 덕목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니 양반 선비들의 고결한 삶의 자세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자하 신위선생이 <소악부>에 올렸으니,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면서 정치적인 처신도 절도가 있었던 자하로서 어지러운 세파에 타협하느니 먼 청산이나 동경하면서 언젠가 당도할 날을 기둘리는 자세를 이 작품에서 읽었음직하다. 이 노래는 잔잔히 흔들리는 출발이 전성 배전성으로 뒤집어지면서 속청 고성으로 오르는 서두부처럼 전반적인 정서가 정중동의 기세를 품고 있다. 노래말 자체가 체념 속에 숨긴 질타로 이루어져서 그러한가, 권유와 포기, 열망과 실의, 용서와 분노가 교차하면서 느린 가운데 거센 흐름을 담고 있다. 운봉 선생은 이 변환의 곡절을 기교로 풀이하셨지만, 일부러 부린 재주가 아니라 그러지 않고는 그만 둘 수 없음에서 나온 재주이니 교묘하다기 보다는 애절하다함이 옳은 말일 듯 싶다. 마치, 바다를 나르는 나비의 가냘핀 나래짓 같다고 할까?      
14) 엮음지름 < 학 타고 저 불고>
  학을 타고 피리를 불면서 장생불노주를 마시는 신선의 경지에 드는 일은 예술적 망아경에 대비할 수 있다. 그 일들이 현실적 성취 불능 내지 영원한 유보의 미달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화자는 신선 세계를 자유로이 왕래하는 선동(仙童)을 못내 부러워하면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네가 본 신선이 정말 있기는 있는 것이니?” 라고. 선동의 행색을 그린 대목이 세마치로 경쾌하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 화자는 그 선동을 본 사실조차도 늘상 있을 수 없는 경이로운 일로 여기는 듯하다. 그 가락만 좇으면 선계에라도 이를 듯하던 세마치 가락이 단절되면서 일상의 질서로 되돌아온 화자의 의식은 이후 다시 성취와 도달의 기대에 미치지를 못한다. 선동의 기만하는 대답으로 오히려 영영 선계를 잃어버리는 상태로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잠간의 황홀경은 오랜 지체와 답습을 보상하고 남을만치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름과 엮음의 교차란 이런 반대 성향 의식의 착종을 표시하는 듯하다. 현실이 가혹할수록 더 빛나는 예술적 이상이나 난세일수록 더 그리운 강호죽림처럼. 운봉 선생의 그리움과 고초와 꿈과 생활과 화사한 예쁨과 굳센 미쁨을 이 노래에 겹쳐 들어본다.
15) 엮음지름 < 푸른 산중하에 >
  이 작품은 시조집의 맨 끝에 가 있기 마련이다. “푸른 산중하에” 로 시작하는 5박자, 8박자만 들으면 남창지름 <푸른 산중 백발옹이>를 다시 부르는가 하는데 13박째 가서 느닷 없이 세마치 장단이 나오면서 분위기를 급변시킨다. “조총대 두러 메고 설렁설렁 내려오는” 포수는 지난 번  온지름  <기러기 떼떼>에서 소식 전하는 기러기를 쏘지 말아 달라 부탁하던 그 포수인 듯하다. 이번에는 기러기뿐만 아니라 “날버러지 길짐승 길버러지 날짐승”의 왼갖 생령들이다. 이들을 각기 다른 곡태로 하나 하나 지목하는 마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애긍심이리라. 살아 있는 것이 온전히 목숨을 마치기란 얼마나 고단한 일이던가? 새벽 달 서리 칠 제 제가 울고 그 울음에 스스로 화답하며 동녘으로 날아가는 “외기러기”를 보라. 삶은 저리도 외롭고 쓸쓸하기만 한 것이 아니더냐? 포수의 동정심을 일으키는 언변이 세마치로 구성지게 이어지다가 “외기러기” 대목에서 원 박자로 선회하는 서슬에 기러기의 뉘엿뉘엿한 나래짓이 느껴진다. 이 고해에 생령으로 존재함의 지난함을 알리는 신호이리라. 포수의 능청스러운 대답으로 마무리하면서 낳고 살고 싸우다 죽는 일이 다시 되풀이되는 세상으로 노래는 내려온다. 한바탕 시조를 마치고 났을 때의 정적은 노래를 모를 때보다도 더 크게 다가온다. 왜 노래를 하느냐고 물으면 시름이 많아서라고 대답하지만 이처럼 큰 적막에 겨워서 부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 될 것이다. 하여 엮음지름의 급박한 세마치 장단은 더 흥겨운 노래를 추구하는 시조 양식의 발전 위에 마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노래가 끝난 뒤의 정적을 안타까와 하는 마음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Releasing a record, 
Having passed dog days (Sambok) when the sun around noon makes the earth full with heat, I put my Sijo-Chang onto the record around the corner of a season when we enjoy a feast of fruits.
All the time which I felt so long has elapsed and it arrives now.
I travelled a hard trip of my life, met Sijo-Chang around mid of my life and was much fascinated in it. And it passed for more than 30 years since I have lived my life as a Sijo singer. 
Sijo-Chang was a present which gave me health and pleasure but it also taught me different aspect of life. It is a very pretty silk tying together joys, sorrows and endurance of my life. Preaparing my record, I appreciate that I could recall my Siji life. 
Having crossed over curved roads and deep abyss, and knowing that living now is a blessing and a present, and therefore, it is much more valuable moment. 
I wish my Sijo-Chang will give you relax and pleasure.
I also render my gratitude to my lovely daughter.
I feel grateful to all the people I met due to Sijo-Chang, and to professor YOON DUCK JIN of Yonsei University who made Sijo-Chang explanation,
I also appreciate Mr. KIM IL HO and producer YANG JEONG HWAN who gave me a great help in making a record, and also deeply appreciate all the accompanists who performed excellent accompaniments for my Sijo-Chang.
I wish all of you beautiful peace in life.
at Wonju near Mt. Chiak in 2011
 Unbong Park Ik-Ja
Profile of Unbong Park Ik-Ja
1. Prizes of Sijo Contests
  1985; Gold prize of Sijo Contests for men and women, Part B
  1985; Gold prize of Sijo Contests for men and women, Part S
  1986; Gold prize of Sijo Contests for men and women (Daejeon), Part Myeongchang
  1988; Gold prize of Sijo Contests for men and women (Daegu), Part Myeongin 
  1996; Gold prize of Sijo Contests for men and women (Daegu), Part Gukchang
2. Activities related to Sijo
  1985; Nominated as a central committee member of the National Sijo Singers Federation by the chairman Kim Wall-ha, human cultural asset A steering committee member and instructor of the National Sijo Singers Federation
  from 1990 to 2008; A member of Old Sijo Culture Club, SangrokSijo Club
  from 1995 to present;  Sijochang Judge of National Sijo Contests 
  from 1995 to present; In charge of Wonju Branch, the National Sijo Singers Federation
  from 1997 to present;  An advisor and member of Wonju Branch, the Korea Arts Federation
  October 2003; Sijo recital by Unbong Park Ik-Ja (Wonju campus, Yonsei University)
  from 2006 to present; Manager of Wonju Branch, the National Sijo ingers Federation 
  She has made efforts to disseminate to Sijo in Wonju and so, she has taught Sijochang to students at primary, middle and high school as well as college in Wonju. She showed her unique clear and graceful singing style when she was invited to various events such as  night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old Sijo contest at Chiak Cultural Festival and other regional cultural festivals. At the moment she vigorously devotes herself to foster young generation and to develop Sijochang, and she who also has something about Korean painting makes every endeavor to do activities in Korean painting and to raise young generation.    

Sijo and Life of Unbong Park Ik-Ja
  It is said that she was born in Japan even though her hometown was in Korea. While she went to a junior high school in Japan, she used to play a leading role among her friends due to her active brother's influence. When coming back to Korea, she worked at a company and taught Japanese language, and then got married to be an ordinary housewife. However, her artistic talent and knowledge for art was not sleeping. After she lost her husband who used to be an educator, she ran a Korean traditional clothes shop for living and this became a great success in Wonju.     
  Social intercourse with Sijo singers in Wonju gave her a good chance to tie her life with Sijo. Having studied under AN JONG HOE, her daily life began with Sijo and closed with Sijo; from dawn for relaxing her voice at the memorial park to daytime training at Hakunjeong.
  Since she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contests, it was unavoidable for her to neglect her livelihood. Income obtained through sacrificing her livelihood was exchanges with nationwide Sijo singers. Having studied under Sijo singers like KIM WAII HA, PARK GI OK and LEE YONG BOK, she got acquainted with sound of several musicians including KIM JOUNG SIK(Daegeum) KIM SOUNG SU(Danso) and YU HEUNG BOK(Janggo).
  Sijo society in Wonju was actively operated with Wonju Culture Center (at the time of HWANG JU IK president) as the center and invited national contests several times. But it rapidly shrank because Wonju Sijo singers advanced to Seoul or they became sick, and thus, alone she was left in Wonju region in 1990's as a Sijo singer.
Since then, it has been unavoidable for Sijo society in Wonju to be in a desolate situation possibly because of single woman's diverse efforts. Such being the case, you can say that her efforts are really devotional who has not stopped participating in regional contests and in major events in Wonju and has conducted incessant education of young generation.
 
 Thanks to her iron will from her birth, she has engaged in Sijo society with straightforward spirit without compromise. Due to this, it can be said that the Sijo society was shrunk, however, there was no other way to maintain purity of art under the poor situations. Her unfaded voice at the age of 80 is a symbol of her pure discipline. It is believed that her noble spirit not compromising with injustice still at the moment will be eternally protected through Sijo.
Congratulatory Message
  It is said that Wonju still preserves sound of Sijochang which has been heard from Chiak Mt. since long. Goryeo Dynasty Remembrance Poem of Ungok Woncheonseok is still well-known and affection of of the King Hyojong is felt in of Park Kwon at Sukjong Age.
  Sijo society in Wonju which was prosperous in recent time being withered due to urbanization aftermath, I believe that record publication of Unbong Park Ik-Ja, who is a sign of the only Sijo singer in Wonju, is a sign of the revival of Sijo in Wonju 
  As far as I know, she lost her husband early in her marital life but she has maintained her independent artistic life for Sijo through sacrificing her livelihood. I expect that spirit of Wonju people blessed by Chiak peak will resound through her Sijo singing. I give claps on behalf of Wonju culture society and hope revival of Sijo and culture in Wonju.
  I acknowledge many people's efforts until this record is made. First of all, Mr. KIM IL HO in Korean music society first arranged this matter, YANG JEONG HWAN producer of Universal Record prepared planning with kind understanding. Also I reward all the Myeongin who performed instrumental accompaniment for their labor and I will bear the filial assistance of her daughter YU GI SEONG deep in my mind. 
  I expect Wonju culture society will not be desolate while this record is being played, and I wish the sound of Wonju Myeongchang will widely spread.
November, 2010
WON CHANG MUG, the Mayor of Wonju
THE PARK IK-JA (UNBONG) SIJOJIP
- THE SIJO REPERTORY PERFORMED BY PARK IK-JA,
'GAGAEG(Female Classical Song Performer)'
PROGRAMME
01 Pyeong-sijo 02 Pyeong-sijo
03 Saseoljireum-sijo
04 Saseoljireum-sijo  
05 Yeochangjireum-sijo
06 Namchangjireum-sijo
07 Onjireum-sijo
08 Saseol-sijo
09 Wujojireum-sijo
10 Jungheori-sijo
11 Gag-sijo
12 Namchangjireum-sijo
13 Wu-sijo
14 Yeoggeumjireum-sijo
15 Yeoggeumjireum-sijo
Date of recording: 6 June 2010
Venue of recording: Universal Studio
Performers appeared in the CD:
chang/ Park Ik-ja
janggo/ Park Mun-gyu
piri/ Park Yeong-gi
daegeum: Kim Sang-jun
haegeum/ Yun Mun-s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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