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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석 거문고 독주회
 ㆍ 아티스트: 정대석
 ㆍ 음반사 : 예술기획 탑
 ㆍ 음반번호: TOPCD-063
 ㆍ 발매일: Manufactured by JIGU. 2003.5. Seoul, Korea
 ㆍ 녹음: 1999.10.13 국립국악원 우면당
 ㆍ 디렉터: 양정환 (음제1442호)/ ⓟ&ⓒ: Yang Jeong-hwan, www.gugakc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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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CD-063
 
정대석 거문고 독주회
JEONG DAE SEOG Geomun'go RECITAL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전바탕
The Whole Cycle of Han Gap-deuk ryu Geomun'go Sanjo by Jeong Dae-seok
1 다스름 Daseureum 00:29
2 진양조 210장단 Jinyangjo 210 jangdan 33:20
3 중모리 90장단 Jungmori 90 jangdan 13:02
4 엇모리 37장단 Eotmori 37 jangdan 01:47
5 중중모리 42장단 Jungjungmori 42 jangdan 02:47
6 자진모리 479장단 Jajinmori 479 jangdan 17:25
Total 68:54
■ 장고 / 김정수 janggo : Kim Jeong-su
■ 거문고 산조
거문고 산조는 거문고로 연주하는 산조로 개화기인 1896년(고종33년)에 당시 20세였던 백낙준(1876∼1930)에 의해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그러니까 김창조(1866∼1918)에 의해서 초연된 가야금 산조보다 11년 정도 뒤늦게 독주곡으로서의 틀이 잡힌 것이다. 그의 선친 백선달의 구음을 모방하여 산조를 타기 시작하여 삼남 일대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 백낙준의 거문고 산조의 장단 구성을 남아있는 음반을 통하여 살펴보면 진양조 15장단 12박, 중모리 67장단, 중중모리 8장단, 엇모리 36장단, 자진모리 119장단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 20분 미만의 연주시간이 소요된다.
거문고는 '모든 악기의 으뜸(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하여 정악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악기이며 선비들에게는 거문고를 익히는 것이 필수덕목이었기 때문에 거문고로 민중의 음악인 산조를 연주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거문고 산조를 연주하는 선비는 선비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전근대적인 신분질서가 와해되고 또한 산조라는 음악의 높은 예술성이 인정받으면서 거문고 산조도 정착을 하게 되었다.
거문고 산조는 그 기본적인 틀에 있어서 가야금 산조와 내용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산조는 기악독주곡으로 악기마다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멋을 보여주고 있다. 거문고는 가야금과는 달리 왼손으로 괘 위의 줄을 눌러 소리내는 악기이다. 그리고 일정한 괘 위에서 소리를 흔들 때에는 줄을 위에서 아래로 미는 독특한 주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오른손으로는 술대라는 대막대기로 줄을 치거나 뜯어서 소리를 낸다. 물론 차이는 연주기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음색, 음량, 연주자세에 있어서도 거문고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장단 면에선 진양조 부분이 가야금 산조 보다 조금 빠르다는 느낌을 준다. 가야금 산조의 진양에서는 한 음을 길게 끌면서 왼손으로 다양하고 미세한 음들을 만들어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거문고 산조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거문고는 잔가락을 많이 써서 장단을 메꾸어 나가는데 진양에서 시가(時價)가 긴 음을 쓰지 않는 것은 악기의 여음이 그것을 허용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가야금 산조에는 없는 엇모리장단이 끼어 있는 대신 휘모리가 없다. 그래서 자진모리로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이 자진모리의 가락도 가야금 산조의 것과는 다르다. 가야금 산조의 자진모리는 빠른 템포로 같은 음을 반복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여유 있게 가락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부분이 많은데 거문고 산조에는 그런 부분이 별로 없다. 이는 술대로 동일 음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치는 주법에 한계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장단과 함께 쓰이는 조(調)들에 대해서 앞에서 설명한 바가 있는데 지금 연주되고 있는 거문고산조는 여러 조(調) 중에 평조, 우조, 계면조, 중고조, 변조 계면조, 오관청 등이 쓰인다. 그 뒤 1980년대에 나온 정대석류 산조에는 자진모리에 드렁조가 쓰였다.
거문고의 술대는 거문고 산조의 또 다른 특징을 가미해 주는데 강하게 술대를 내려칠 때에는 술대가 줄에 부딪치는 소리, 이 타악기적인 부딪힘이 소리의 활기를 더 해 주며, 저음역의 개방현 역시 이런 효과에 한 몫을 한다. 높은 음역에서는 술대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여리고 섬세하게 타다가는 돌연 술대로 힘을 다해 내려침으로서 가락에 악센트를 주고, 개방현의 긴 울림은 풍부한 여음을 더해준다.
거문고 산조의 창시자 백낙준은 박석기, 신쾌동, 김종기에게, 박석기는 한갑득에게 전승함으로 새로운 산조의 유파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현재 주된 유파로는 한갑득류, 신쾌동류, 김윤덕류가 있다. 이 세 유파의 거문고산조는 서로 유사한 가락들이 있으나. 연주기법과 미세한 시김새나 농현의 표현, 미분음, 가락의 첨가 여부, 술대법 등의 차이로 서로 다른 유파임을 느낄 수 있다.
■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한갑득 거문고 명인은 1919년 12월 12일(원생일은 1919년 12월 2일이라 한다.) 전라도 광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987년 고대 부속 우석 병원에서 타계하셨다. 본명은 한갑득(韓甲得), 호는 일청(一靑)으로 판소리계에 일세를 풍미했던 한성태의 차남이다.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鐘路區) 돈의동(敦義洞), 출생지는 광주직할시 금남로(錦南路)라고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그의 집안은 음악의 명문 집안이었는데, 그의 할아버지 한덕만은 대금과 가야금의 명인이었고 그의 형 한영호는 가야금, 동생 한승호는 판소리, 그의 부인 박보아는 판소리와 창극, 여성국극에서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당시 보통학교를 마친 집안 어른들의 경향으로 음악수업에 전념하여 거문고 산조에 일가를 이루었다.
8세 때 광주에서 안기옥에게 3∼4년 간 가야금산조 전판을 배웠으며, 14세쯤에는 일본으로 초청공연을 가서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가 거문고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백낙준이 광주에서 연주를 하였을 때 그 거문고 성음에 반하여 백낙준에게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한 후 백낙준에게서 거문고 산조를 배운 당시 단양군 창평면 유곡리에 살고 있던 박석기에게 13세 때부터 7∼8년 간 거문고 산조 및 풍류와 가곡을 배움으로 시작되었다. 이 때 줄풍류, 가곡, 산조 순으로 거문고를 배웠다고 하니 그 기반이 탄탄함을 볼 수 있는 면모이기도 하다. 그 후 선생님의 인도로 서울로 올라와 조선성악연구소에서 송만갑·이동백·정정렬 등 당시의 명창들과 함께 연주활동을 하는 한편 김연수·김준섭이 창하는 심청전을 거문고로 반주하여 유성기로 녹음하였으며, 오수암·김연수·임방울·이화중선 등과 함께 O.K 레코드사에서 흥보가를 녹음하였는데, 이때 봉장취(시나위의 합주악기로 판소리의 가락을 모방하여 연주한 악곡)를 쳤다고 한다. 1969년부터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의 거문고 강사로 학생들에게 산조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78년에는 활발한 창작활동 및 공연활동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의 기능보유자로 지정이 되었으며, 1983년의 공연을 끝으로 무대에는 거의 서지 않고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다.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는 백낙준에서 이어지는 박석기류의 것이 토대가 된다. 스승에게서 배운 산조에 많은 창작을 더함으로 스승 박석기의 가락과 자신의 창작을 절반씩 보태어 이른바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현재 전하는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는 약 70분 정도이다. 박석기 선생에게서 배운 거문고 산조 가락이 25분 정도라고 하니 음악적인 창작성 또한 가히 엿볼 수 있다. 보통 거문고 산조는 진양조·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로 짜여지는 것이 많으나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는 중모리와 중중모리 사이에 엇모리가 들어가는 것이 다르다.
이 CD 는 1999년 10월 13일(수)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독주한 실황녹음이다. 정대석 명인은 이 독주회에서 한갑득류 전바탕(진양조 210장단·중모리 90장단·엇모리 37장단·중중모리 42장단·자진모리 479장단)을 연주하였다.
■ 참고문헌 및 자료
김해숙·백대웅·최태현 공저, 전통음악개론, 도서출판 어울림, 1995.
유 신, 판소리 예술론, 삼호출판사, 1990.
장사훈, 국악대사전, 세광음악출판사, 1984.
장사훈, 최신 국악총론, 세광음악출판사, 1990.
정병욱, 한국의 판소리, 집문당, 1987.
정화순 편저, 거문고산조 한갑득 가락, 현대음악출판사, 1989.
하주화 채보, 현금산조구음보 한갑득 유음집(遺音集), 도서출판 수서원(修書院), 1997.

■ 연주자 소개
- 정대석 / 거문고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 양성소 졸업
·단국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졸업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원 졸업
·제 15회 동아음악 콩쿠르 국악작곡부 1위 입상
·제2회 대한민국 작곡상 수상
·거문고 독주회 7회 및 40여회 독주, 협연
·미국, 일본, 구주(독일,영국,프랑스,노르웨이)등 음악제 초청연주 다수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 역임
·서울대, 서울예술전문대, 이화여자대, 추계예술대, 경북대, 중앙대 강사 역임
·KBS국악관현악단 수석 역임(1985∼1999)
현재
·KBS국악관현악단 단원
·서울악회(SEOUL ENSEMBLE) 회원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목원대, 용인대, 부산대 대학원 강사
작품
거문고 독주곡 ‘열락’, ‘일출’, ‘수리재’, ‘달무리’, ‘무영탑’, 거문고 중주곡 ‘여섯줄을 위한 대화’, 여섯줄을 위한 두 번째 대화 ‘고구려의 여운’, 거문고 합주곡 ‘미리내’, 관현악 ‘무언가’ 등 40여 곡 작곡
저서
·거문고 산조 세바탕, 1990, 은하출판사
·거문고 독주곡집 「수리재」(열락·일출·수리재·달무리·무영탑), 1994, 이대출판사
음반
정대석 독주곡집 「수리재」 및 서울악회 1집∼11집 등 20여 개 작곡 및 연주음반
홈페이지 http://www.gomungo.com- 김정수 / 장고
·중요무형문화재 제59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
·용인대학교 예술대학원 원장

■ The Geomun'go Sanjo
Geomun'go Sanjo is a Sanjo music played on the geomun'go 거문고 (6-stringed plucking zither with a suldae) and is firstly introduced to play by Paik Nak-jun (1876-1930) in 1896 when Gojong (33 year of his reign) the King ruled the Yi Dynasty towards a process of modernising Korea. Geomun'go Sanjo came into existing in an individual Sanjo for the instrument 11 years later when Gayageum Sanjo had appeared. Paik Nak-jun learned the music by imitating orally from his father's, Paik Seon-dal, lilting and became famous for his playing around the areas of Samnam. There is evidence that in his recording of his own Sanjo the jangdan structure has contained 15 jangdan of each 12-beat, 67 jangdan for jungmori. 8 jangdan for jungjungmori, 36 jangdan for eotmori and 119 jangdan for jajinmori. The overall duration of his performance lasted less than 20 minutes.
The instrument, geomun'go,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Korean instruments, especially in Jeong'ak it is called 'the best of all the instruments that denotes Baikakjijang 백악지장百樂之丈‘. The geomun'go was associated with a literati culture that seonbi 선비 required to learn it as a discipline subject. So they were not allowed to play folk music on the geomun'go due to its symbol of social status at the time. When a seonbi played Geomun'go Sanjo on the instrument, he would be the subject for being alienated from his class. As the conventional social stratification became break down in the gradual process of modernisation, the music of Sanjo became drawing attention to its highly artistic form so as to settle down an essential repertory for geomun'go masters.
Geomun'go Sanjo parallels with Gayageum Sanjo in its basic frame, but Geomun'go Sanjo displays its own unique characters and taste from a number of factors. Firstly it has a unique playing technique: its sound produces by pressing the strings that are putting on the gwe 괘 (bridges) with the left-hand. When a player pushes a finger towards beneath the string from its above, it vibrates a sound of a certain pitch on a certain gwe. The right-hand strikes or plucks the strings with a suldae 술대 (similar size of a pencil) to obtain rhythm. Secondly the role of the suldae gives a unique characters to the Sanjo performance and as a result to the sound it is produced: when the suldae hits the string with a strong impact, its vibrating and percussive sound provides a vitality of the tone and this special effect is enormous when is especially applied to the open string of a lower register. Thirdly it also has a individual quality in terms of volume and body posture.
With regard to the jangdan, it is sensed that the section of jinyangjo would be slightly faster than that of Gayageum Sanjo. In playing jinyangjo of the latter, diverse subtle notes are rendered with the left-hand by dragging a note longer, whereas the geomun'go adds to the jangdan by using sub melodies for an echoing effect of a tone. As playing technique of the geomun'go, that is different from the gayageum, depends on striking or plucking strings with the suldae, this is not allowed a note to be vibrated longer. Geomun'go Sanjo includes eotmori jangdan and does not include hwimori which is opposed to jangdan in Gayageum Sanjo. Jajinmori is the last section that differs from that of Gayageum Sanjo: jajinmori in Gayageum Sanjo repeats the same phrase with a very fast tempo and leads to flow the overall melodic sections in reserve which has a limit on the Geomun'go Sanjo.
I have previously mentioned about jo and jangdan used in the Sanjo music. Since the 1980s onwards Jeong Dae Seok ryu Geomun'go Sanjo has contained deureongjo in the jajinmori section. In a high register, it would be impossible to perceive the role of the suldae that gives a subtle and delicate sound effect, and then a sudden and strong striking downwards to the string provides an stress of certain melodies and this adds a rich echoing effect to a prolonged vibration executing on the open string.
Paik Nak-jun transmitted his version to Park Seok-gi, Shin Kwe-dong and Kim Jong-gi, and then Park Seok-gi passed it on to Han Gap-deuk, so the Geomun'go Sanjo continued to have its own new versions. The main ryupa at the present are Han Gap-deuk ryu, Shin Kwe-dong ryu and Kim Yun-deuk ryu. These three ryupa appear to be a number of similar melodies, but there are some differences in terms of playing technique, subtle use of ornamentations, or a degree of nonghyeon 농현弄絃 (various vibrations), the use of microtones, a variety of melodic addition, the method of using the suldae technique, and so on. Geomun'go Sanjo was designated as Jungyomuhyeongmunhwajae No. 16 중요무형문화재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in 16 June 1967 by the government.
■ Han Gap-deuk ryu Geomun'go Sanjo
Han Gap-deuk (a pen name = Ilcheong 일청一靑), a geomun'go master, was born in the second child of Han Seong-tae in Gwangju in Jeollanamdo on 12 December 1919 and died in Seoul in 1987. He was reared in a family of a strong musical background: his grand father, Han Deok-man was both a master daegeum and gayageum player; his father was a fine Pansori singer at the early 20th century; his two brothers - Yeong-ho and Seung-ho - were the accomplished gayageum player and Pansori singer respectively. Particularly, a wife, Park Bo-a, of Seung-ho had a musical career in Pansori and Changgeuk 창극 (theatre music) and was actively involved in Yeoseong Geukdan 여성극단女性劇團 (the Female Theatre Company). His family made a strong genealogy for Geomun'go Sanjo: they were encouraged and devoted their entire effort to music-making influenced by their parents who received a western education at that time.
Han Gap-deuk learned the complete version of Gayageum Sanjo for 3-4 years from An Gi-ok 안기옥 at the age of 8 in Gwangju. Then he was invited to play it in Japan at the age of 14. The study of the geomun'go started at the age of 13 when he began his first lesson for the geomun'go with Park Seok-gi, who lived in Yugokni, Changpyeongmyeon, Danyanggun, and who learned Geomun'go Sanjo from Paik Nak-jun, for 7-8 years, after being rejected by Paik Nak-jun to be his geomun'go teacher when Han was intrigued with the sound of the geomun'go when he heard Paik Nak-jun performing his own Sanjo in Gwangju. He learnt repertories of the instrument in the order of Julpungnyu 줄풍류, Gagog 가곡 and Sanjo which was regarded as a standard approach to learn its music, and this meant he had a solid background of its musical knowledge. Afterward from his teacher's persuasion he came up to Seoul and played with some master Pansori singers like Song Man-gap, Yi Dong-baik, Jeong Jeong-ryeol of that time at Joseon Seong'ak Yeonguso 조선성악연구소 (Academy of Joseon Vocal Music). He also made phonograph recordings of two well-known Pansori repertories - Shimcheongjeon 심청전 (song of Shimcheong) sung by Kim Yeon-su and Kim Jun-seop accompanying them and Heungboga 흥보가 (song of Heungbo) with O Su-am, Kim Yeon-su, Im Bang-wul, Yihwa Jung-seon with O.K. Recording Company and this time he played Bongjangchwi 봉장취 (a musical genre of the imitation of Pansori melodies performed by ensemble instruments of Si'nawi). He was appointed for the holder with musical skill on the genre of Geomun'go Sanjo as Jungyomuhyeong munhwajae 중요무형문화재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No. 16 in 1978 for acknowledgement of his contribution to public performance and his own music. He retired from all the public performances in 1983 and devoted himself to teaching the geomun'go and its music.
Han Gap-deuk ryu Geomun'go Sanjo can be described as a combination of his own version and Park Seok-gi ryu which was based upon Paik Nak-jun ryu, so there is an authentic lineage of three generations of Geomun'go Sanjo. His version requires about 70 minutes, whereas Park's version lasts about 25 minutes, so the 45 minutes of the extra time is added by Han's creative melodies. In general, Geomun'go Sanjo is framed in the order of jinyangjo, jungmori, eotmori and jajinmori, but in the Han Gap-deuk ryu Geomun'go Sanjo eotmori is added in between jungmori and jungjungmori.
This CD is based on the live performance of Jeong Dae Seog took place on Wednesday, 13 October 1999 at Wumyeondang, GungnipGugakwon. Jeong Dae Seog, a master geomun'go player, played the complete version of Han Gap-deuk ryu that includes 210 jangdan for jinyangjo, 90 jangdan for jungmori, 37 jangdan for eotmori, 42 jangdan for jungjungmori, 479 jangdan for jajinmori.

■ Profile of the performer
- Jeong Dae Seog studied the geomun'go in GugaksaYangseongso 국악사양성소 (National music academy for training Korean traditional musicians) attached to GunglipGugakwon 국립국악원 (The National Centre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He specialised in Korean Language at Danguk University and then studied arts further at Yong'in University. He won many competitions: two major awards of them were the first prize for the Korean Music Competition at the 15th Dong'a Music Contest and award for the 2nd Korean Composers.
His musical career as a performer and researcher is extraordinary. He made more than 40 times for recitals and joining in the orchestras with the geomun'go. He also made a number of overseas concert tour in the USA, Japan and European countries as well as participating in some international music festivals as guest musician. He was a former member of Seoul Sirip Gugak Orchestra and the leader of the KBS Gugak Orchestra. He taught music such colleges as Ehwa Women's and Chugye Yesul.
He is currently a member of the KBS Gugak Orchestra and Seoul Akhoi 악회 (the Music Society). He is also teaching music at Seoul National and Hanyang Universities. He has composed more than 30 pieces of music such well-known titles as Ilchul 일출, Yeollak 열락, Surijae 수리재, Dalmuri 달무리 and Muyeongtap 무영탑 and published an collection of his own work called Surijae 수리재. He wrote two books on The Geomun'go Sanjo Sebatang 거문도산조 세바탕 issued by Eunha Publication in 1990 and then The Jeong Dae Seog Geomun'go Solo Work which is a collection of his own composition illustrated above by Ehwa Women's University Press in 1994. He released his album called The Jeong Dae Seog Geomun'go Solo Performance - Surijae and Seoul Akhoi 1-11jips and more than 20 compositions and their performing recording.
He has a home page: http://www.gomungo.com.
- Kim Jeong-su became a holder of Pansori gobeop (menas "the method of playing a barrel drum" for accompanying Pansori) that was designated by Jungyomuhyeongmunhwajae No. 59 and Director at Arts Department of Yong'i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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