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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두레풍물 TOPCD-175 비매품
 ㆍ 아티스트: 논산연합두레풍물단
 ㆍ 음반사 : 탑예술기획
 ㆍ 음반번호: TOPCD-175
 ㆍ 발매일: Manufactured by Seoul Media. 2018.8. Seoul, Korea
 ㆍ 녹음: 2017.3.11., Recording Studio: 국악방송 991스튜디오
 ㆍ 디렉터: •Director : 양정환 TOP ARTS (음제1442호) / P&C Yang Jeong-hwan www.gugakcd.com
 ㆍ 비고: •원고해설 : 김헌선
 ㆍ 판매가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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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CD-175

 

논산두레풍장

 

논산연합두레풍물단

 

1 제자리풍장21:09  

김요덕(), 이충하(장고), 김홍배(장고), 김영수(), 송동의(), 남상빈(

가는풍장 - 자진세마치 - 느진세마치 - 자진느진세마치 - 자진마치 - 걸겅가락

       

2 제자리풍장14:17

김요덕(), 이충하(장고), 송동의(), 남상빈()

걸겅가락 - 가는풍장 - 자진세마치 - 느진세마치 - 자진느진세마치 - 자진마치 - 걸겅가락

 

3 제자리풍장10:08  

김요덕(), 이충하(장고), 김홍배(장고), 김영수(), 송동의(), 남상빈(

걸겅가락 - 가는풍장 - 자진세마치 - 느진세마치 - 자진느진세마치 - 자진마치 - 걸겅가락

       

4 이충하 장구풍장 4:37 

이충하(장고), 송동의(), 김요덕(

자진세마치

 

STAFF

 

Recording Date: 2017.3.11., Recording Studio: 국악방송 991스튜디오

 

음향감독: 장형덕, 진행: 김은혜, 녹음: 김재준

 

이 음반의 음원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원고해설 : 김헌선 그림출처: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이한철 경직도 부분

 

Director : 양정환 TOP ARTS (음제1442) / P&C Yang Jeong-hwan www.gugakcd.com

 

Jacket Design : MUSONG TOPCD-175 Manufactured by Seoul Media. 2018.8. Seoul, Korea

 

이 음반에 수록된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무단 복사 · 복제 사용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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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두레풍장  

 

김헌선

 

논산두레풍장은 흔히 제자리풍장, 말뚝풍장 등으로 알려진 풍장이다. 두레풍장에서 판제나 일정한 진풀이가 없이 움직이는 것을 말뚝풍장이라고 이른다. 아마도 국내에서 가장 차원이 높은 두레풍장으로 음악적 짜임새가 긴밀하고, 미학적 신명이 높은 특징을 지닌다. 제 자리에서 서서 논바닥을 출렁이고 사람의 신명을 충동적으로 달구었던 본령이 아마도 이러한 음악이었으리라 추정된다. 가락은 불과 몇 가지 안되지만 한껏 조여서 음악적 즉흥성과 순간발생의 창조력을 드높이는 것이 바로 논산두레풍장이다.

 

즉흥성에 의한 음악적 개방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녹음을 구성원을 달리하면서 동시에 풍장의 판을 다르게 하면서 연주를 하게 하고 이를 녹음하였다. 제자리풍장 은 처음에 녹음한 것인데, 앞에 내는 가락을 치지 않았다. 가락의 짜임새가 원형에 가깝게 녹음되었다. 장단 분할이 문제인데, 이를 덩어리별로 하였다. 제자리풍장 는 짜임새를 높이고 쇳가락에 의해서 고조시키는 것에 의해서 그만큼의 장구와 북이 어울리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가락을 유도하기 위해서 단수 편성을 하여 녹음하였다. 제자리풍장 은 길이를 조절하고 가능한 풍장가락을 소박하게 연주하게 해서 녹음하였다. 이충하의 장구가락은 워낙 변화무쌍한 가락이어서 이를 순간적으로 쇠와 도입하게 하여 장구와 북의 가락을 적출하여 녹음한 것이다. 의미 있는 녹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명 그 자체를 창출하는 기제를 엿볼 수 있는 녹음이었다고 판단된다.

 

 

1 제자리풍장21:11  

연주자: 김요덕(), 이충하(장고), 김홍배(장고), 김영수(), 송동의(), 남상빈()

 

가는풍장   

   

자진세마치

 

느진세마치

 

자진느진세마치

 

자진마치

 

걸겅가락

 

2 제자리풍장14:19

 

연주자: 김요덕(), 이충하(장고), 송동의(), 남상빈()

 

걸겅가락

 

가는풍장

 

자진세마치

 

느진세마치

 

자진느진세마치

 

자진마치

 

걸겅가락

       

 

3 제자리풍장10:15

 

연주자: 김요덕(), 이충하(장고), 김홍배(장고), 김영수(), 송동의(), 남상빈()

 

걸겅가락

 

가는풍장

 

자진세마치

 

느진세마치

 

자진느진세마치

 

자진마치

 

걸겅가락

      

 

4 이충하 장구풍장 4:39

 

연주자: 이충하(장고), 송동의(), 김요덕()

 

자진세마치

 

 

 

논산두레풍장의 노름마치  

논산지역에 여러 두레풍장패들이 있다. 논산두레풍물이라고도 하는데 이와 같은 패들이 많은 것이 일단의 역동적인 증거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레풍장의 진정한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 단체가 많다고 하는 점이다. 단체가 많기 때문에 성이 가시는 일은 되지 않는다. 그것이 새로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잘만 다스리게 된다면 엄청난 에너지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 점에 있어서 이들의 내력을 보여주는 요점적인 증거를 우리는 도외시할 수가 없을 것이다. 논산 지역의 두레풍장 단체를 정리하여 일목요연하게 보이면 다음과 같다.

    

논산시전통두레풍물보존회  

201635일에 개소식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본래 이 단체는 광석두레풍물단을 근간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다. 주시준이 이 단체를 이끌고 있으며, 주요한 연희자 가운데 한 사람이 윤종만과 같은 인물이 있다. 전국적인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여 개가를 올리고 있다. 정기적인 발표를 가을철에 하면서 한껏 기량을 닦고 있다.

    

논산연합두레풍물보존회

 원래 이 단체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생성되었다. 이 단체는 여러 두레풍장패들을 규합하고 일관되게 회원을 늘리려는 방식으로 시작하였다. 한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행사를 하고 있으며, 임시적인 구성원을 통하여 필요한 행사에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탁월한 쇠꾼과 치배들이 있어서 이들의 노력이 이 단체의 음악을 빛나게 하고 있다.

 

노성두레풍장전승보존회

  이 단체는 노성면의 두레풍장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는 단체이다. 논매기와 같은 것을 재현하고 행사를 하면서 놀이를 벌이는 것이 기본적 특징이다. 이들의 역량과 기량은 대단하다. 전국대회에 나간 바 있으며, 노성면의 두레풍장을 근간으로 하여 새로운 작업을 했던 전례가 있다.

 

논산교육풍물 두드림

 논산 지역의 교육자들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여러 단체들이 함께 놀이를 하면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점이 확인된다. 특히 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놀이와 교육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두레풍장의 전통을 확대하려고 하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단체 가운데 하나라고 보인다.

    

논산두레풍장

  인터넷을 검색하여 보면, 논산두레풍장이라고 하는 단체를 결성하고 회원명부를 확인할 수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특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놀이를 하고 회원을 늘려가면서 활동하는 단체로 짐작된다. 두레풍장의 회원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어떠한 일을 하던 집단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논산지역 주민 풍물패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단체를 결성하고 풍물을 하는 단체이다. 그런데 두레풍장만은 아니고 여러 가기 농악을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단체는 논산시읍면동 풍물경연대회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현재 제7회 대회가 있었으며, 취암동(국악전수관), 양촌면(양촌풍물단), 연합팀(황산풍장놀이), 은진면(은진득안 풍물패), 연산면(연산풍물단), 부창동(황산벌 노인풍물단), 노성면(노성 주민자치 농악교실), 상월면(상월 주민자치센터 풍물단), 광석면(광석 두레풍물 교실), 성동면(성동면 농악회  

이로써 본다면 논산지역의 두레풍장패는 다소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단체에서 논산두레풍장의 전통을 활용하여 단체를 이룩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가락과 내용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체를 배격하고 어느 하나를 독자적으로 옹호하게 되면 결국 편파성을 띄게 되기 때문에 두루하지 못하게 된다. 단체를 인정하고 각각의 특장을 살리면서 여러 가지 재주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한다. 어느 글에 이른 바가 있다. 군자는 고루하면서 한 가지가 아니고, 소인은 한 가지인 것처럼 굴지만 결국 고루하지 못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군자는 두루하면서 견주지 않지만, 소인은 견주기만 하고 두루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 것과 맥락을 가지고 있다.  

논산의 두레풍장은 전통적인 것이고 사회적 공공재임을 명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공공재이므로 누구나 참여하면서 즐길 수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참여하면서 이를 활용하고 함께 신명을 누릴 천부인권의 신명을 가지고 났음을 분명하게 하여야 한다. 누구나 즐기면서 이를 공공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제1의 층위라고 할 수가 있겠다.  

사회적 공공재를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 차원의 논산 두레풍장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남다른 능력으로 신명을 끌어올릴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도 존재한다고 하는 점이다. 신명이 남다르고 여느 사람에 견주어서 과하며, 그 신명을 기반으로 사회적 공공재를 문화유산적 관점에서 색다르게 바꿀 수 있는 이들도 있다. 단체를 결성하고 이를 이익단체화하는 것도 한 가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제2의 층위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예거한 단체가 이와 같은 구체적인 예증이다. 신명의 남다름을 인정하고 이익을 위해서 이합집산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 공공재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집단의 전통을 개인적 창조력이나 기술적인 연마력을 가지고 이를 활용하면서 남다른 점으로 전환하는 것이 다음의 차원이고 새로운 층위라고 하겠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고, 이들의 창조력은 사회적 공공재 위에서 출발하여 한층 우리를 새롭고 놀라운 경이의 세계로 인도하게 신명의 도가니로 흡입하여 녹여내는 남다른 면모가 있다. 이들이 최상위는 아니지만 현재까지 관찰한 이들로서는 가장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들을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논산 지역에서 태어났으므로 그곳에서 남다른 점을 가지고 신명을 자아내면서도 그 누구도 이를 수 없는 경지를 이룩한 이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 절대음을 기초로 하면서 장단과 장단의 사이를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이들의 놀라운 능력을 새롭게 구현하려는 태도가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고, 비범하지만 켤코 평범을 벗어나지 않는 이들의 능력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쉽게 규정하기 어렵다. 이 지역의 풍장 언어로 이른 바 노름마치 판굿, 노름마치 등에서 나오는 노름을 마치게 하는 잽이들이라고 억지로 이름지을 필요가 있겠다. 노름마치의 전통을 재현하는 이들이 곧 이들이다.

 

논산연합두레풍물단, 제주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 축제의 공연 2018518

 

논산두레풍장의 노름마치는 전혀 색다른 존재는 아니다. 함께 어울리면서도 어울림을 굳이 내세울 수 없으므로 이들은 외로운 존재들일 수 있다. 논산두레풍장패 가운데 논산연합두레풍물보존회의 몇몇 인물이 이러한 노름마치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곧 김요덕, 이충하, 김홍배, 남상빈, 송동의, 차영호, 김영수 등이 이러한 인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순간발생적인 음악, 절대음으로 박과 박, 장단과 장단을 품고 앗으면서 이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른 인물들이 이 축에 못든다고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짜여진 가락과 장단 속에서 맵자하게 이루어지는 즉흥적인 신명을 최고조로 이끄는 데 이들 인물의 활동과 내용은 긴요한 구실을 한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소개를 하는 이유는 비교적 간결하다. 이들을 우연하게 만나서 이들의 음악에 스스럼없이 빠져들고, 이들에 대한 일정한 탐구를 하게 되었다. 탐구라고 할 것도 없으며, 이들의 노력을 보면서 가장 놀라운 신명을 체험할 수가 있었다. 그것이 이들을 소개하는 전부이다. 이들을 만나면서 놀라운 능력을 알게 되었고, 단순한 타악인 두레풍장이 신비롭게 비약하면서 놀라운 것으로 전환하는 기쁜 신명 체험을 하게 되었다.

      

1 김요덕(金堯德, 1946(甲申)215일생- )

 김요덕은 천하에 으뜸가는 쇳가락을 구사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김요덕이 태어난 마을은 광석면(光石面) 천동리(泉洞里) 411번이다. 예전에 지역마다 마을마다 쇠를 잘 치는 인물이 있었는데 김요덕 역시 그러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버지인 김성덕(金聖德)과 어머니인 김순덕(金順德) 사이에 6남매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장남이다. 김요덕은 최정이(崔貞伊)와의 사이에 4남매를 두었다. 일찍이 서당공부를 한 바 있는데, 14세에 20개월에 걸쳐서 다녔다. 주로 신천자문과 구천자문 가운데 신천자를 공부하고, 이어서 <<啓蒙>>, <<小學>>, <<明心寶鑑>> 등을 공부하였다.  

김요덕이 기억력이 총명하고 한문의 문자 속을 가지고 유식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집안이 가난한 관계로 15세부터 지게를 지고 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워낙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이때부터 일에 미립을 내게 되었으며, 아울러 문리도 터득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에도 못방고소리를 할 수 있는 기억을 가지고 있으므로 얼마나 일에 침잠하고 열심히 일을 했는가 알 수가 있다.  

김요덕은 참으로 드문 인물이다. 김요덕은 글을 배운 것과 자신이 터득한 것, 그리고 여러 두레풍장꾼에게 쇳가락을 익히게 되었는데, 자득한 것이고 어깨 넘어로 듣고 배운 것이라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가령 도굿대풍장꾼으로 알려진 조종삼, 장구가락이 나긋나긋하게 알려진 정창문 등에게 가락을 얻어들으면서 새롭게 가다듬었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며, 가락을 빠르게 치면서도 장단과 장단을 건너뛰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김요덕의 쇳가락에 대한 자부심이 담긴 한 마디가 귓전을 울린다. <<명심보감>>에 있는 말이다. “不恨自家汲繩短 只恨他家苦井深”(자기 집 타래박 줄이 짧은 것은 탓하지 않고 남의 집 우물 깊은 것만 탓하도다). 이 무슨 말인가? 쇳가락의 깊은 맛을 모르면서 왜 그렇게 치는가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항변이다. 쇠를 이처럼 잘 칠 수가 있는가? 스스로 잘 치지 못하면서 왜 남 탓을 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비판이다.  

쇳가락에 대한 엄정한 기준이 있으며, 두레풍장은 모름지기 어떠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핵심적인 발언은 쇳가락과 장구가락, 북가락, 그리고 징가락이 마디마디가 분명하게 맞아 떨어져야 하고, 특정한 대목마다 품고 앗으면서 가락이 나긋나긋하게 맞물려야 한다고 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요덕의 절대음감은 단순한 것은 아니고, 논산두레풍장의 가락을 이끄는 혼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 이충하(李忠夏, 1952(壬辰)218일생- )

이충하는 논산시 광석면 득윤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해는 호적과 달리 1949(己丑)91일이다. 아버지는 이건숙(李建肅)이고, 어머니는 김용의이다. 슬하에 모두 7남매를 낳았는데, 이충하는 삼남이다. 이충하는 김성순과 혼인하여 슬하에 12녀를 두었다. 그리고 득윤리 방죽안에서 살다가 혼인을 하면서 제금을 나와 현재 용산절이라고 하는 곳에 주거하고 있다. 광석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논산기민중학교를 졸업하고, 논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서 현재까지 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이충하가 두레풍장과 만나게 된 사연은 모두 집안의 내력으로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다. 이충하의 아버지께서 워낙 쇠를 잘 다루었으며, 득윤리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점잖고 한학을 하고 사람들을 가르친 경험을 가지고 계셔서 다른 고장에 출타하지 않고 오로지 동네에 거주하면서 토박이 두레풍장꾼으로 살아낸 셈이다. 바로 이충하가 듣고 자란 두레풍장의 대물림 과정이었다.  

어른들 앞에서 이충하가 가락을 연주하고 이를 치게 되면 동네 어들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쉽사리 알 수가 있다. 이충하는 장구 가락을 내는 솜씨는 어마어마하다.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으며, 장구 가락에 있어서 마디마디마다 쇳가락을 품고 안으면서 주고 받는 풍장 가락으로서는 둘째가라면 서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김요덕 쇠꾼과 20여년 전에 만나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둘이 이루는 쇳가락과 장구가락의 절묘함은 신명의 극치, 누구도 이를 수 없는 가락의 멋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가락은 비교적 단순하게 몇 가지 안되는 가락인데 이를 치면서 거의 절대적으로 고수의 경지에 상승하곤 한다. 북과 징이 내는 빠르기를 기준으로 장구가락이 궁편과 채편을 넘나들면서 오고가는 모습은 저절로 신명을 자아내곤 한다. 슬글슬금 가락을 치면서 주고받으면서 몸을 놀리면서 가락이 풀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평범을 벗어나서 비범에 이르는 신명의 도가니를 맛보게 한다.  

이충하는 스스로 자득한 가락이다. 타고난 바가 있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락을 연주하면서 스스로 궁리하고 창조한 결과가 이러한 놀라운 가락으로 발전하였다고 하는 점을 볼 수가 있다. 이충하가 치는 가락의 모습은 한결같은 것이 없다. 발을 부드럽게 놀리면서 굼실거리는 사이에 궁채가 궁편과 채편을 넘나들면서 마디와 마디를 맺고 건너뛰면서 쇳가락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충하의 가락은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장터풍장이나 사물놀이의 사치가락이 아닌 남다른 장구가락을 만들어내는 것은 뒷궁에 의한 수직상승의 면모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이와 같은 가락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인가?

      

3 남상빈(南相斌, 1945(乙酉)55- )

 남상빈은 노성면 하도리 의령 남씨 집성촌에서 태어났으며 본디는 甲申生(1944)인데, 호적에는 乙酉年으로 되어 있다. 남상빈의 남씨 가문 전통에 의해서 백부인 남성희(南聖熙) 출계하여 양자로 가게 되었다. 본디 생부는 남익희(南益熙)이고, 생모는 도순임이었다. 백모는 이순희(李順熙)로 양자로 출계되어 갔음에도 어려서 일찍 사망하였다고 한다. 남상빈은 이후에 이희경과 혼인하여 슬하에 12녀를 두었다.  

남상빈은 노성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논산중학교를 나와서 서울에 있는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대 상학과를 나와서 ROTC로 임관하고 제대한 뒤에 삼성물산에 197211월에 입사하고 19988월에 퇴사하여 26년간 회사원으로 근무한 바 있다. 논산의 수재로 알려진 인물이고, 가장 빛나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씨 집성촌에서 보고 자라면서 들은 하도리 두레풍장의 신명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신명을 인정하고 사람 누구나 가진 것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두레풍장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남다른 모습이다. 사람이 배우거나 배우지 못하거나 기본적으로 같다고 하는 전제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렸을 때에 들었던 두레풍장의 근간을 이룬 인물들은 집성촌의 남씨 집안 문중 어른들, 그리고 타성받이들의 전통적인 악기 소리를 잊지 않고 있다. 장구 가락을 두레풍장으로 잘 하던 어른들이 곧 남배희, 남면희, 이은우 등이었고, 쇳가락을 잘 치던 어른이 바로 강신덕, 임근수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임근수 어른은 생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항상 자부하곤 한다. 두레풍장의 전통은 치우침이 없는 것, 기본적인 가락을 받쳐주는 징도 예외일 것이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견없는 그의 태도가 결국 징소리나 북소리에 소박하게 묻어난다. 층차나 높낮이가 없는 것이 곧 두레풍장의 진정한 면모이다. 남상빈은 논산연합두레풍물단의 회장직을 맡아서 성실하게 단체를 이끌고 있다. 두레풍장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고 하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 점에서 남상빈 회장의 리더쉽은 현저하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4 김홍배(金洪培, 1954(甲申)33- ) 

 김홍배는 195433일 공주군 탄천면 덕지리 송정골에서 태어났다. 아버니는 김봉진(金鳳鎭)이고, 어머니는 이봉석이다. 덕치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는 가지 못했다. 대략 15세에서 17세경에 두레풍장 가락을 듣게 되었다. 동네 어른들이 치는 것을 보고 이를 모방하여 양철로 된 물통을 두드리면서 가락을 익혔다고 되어 있다. 17세 무렵부터 지게질을 하고 품앗이를 하러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풍장을 접하게 되면서 이를 신명의 원천으로 삼았다.  

공주 탄천이라고 하는 곳은 두레고지로 유명한 곳인데, 이 고장에서 아랫가절 조원복의 장구가락을 들을 수 있었고, 김순배의 동네 두레풍장 가락을 들었으며, 동시에 상쇠의 소리로는 최영환 어른에게 쇳가락을 익혔다고 하였다. 그리고 2009년도에는 광석풍물단에서 윤종만의 장구가락을 익혔다고 전한다. 특히 탄천의 장승제에서 넉넉하고 푸짐한 가락을 익힌 것으로 되어 있다.  

김홍배는 자신의 생처인 공주 탄천을 버리고 부여로 이주하였다. 친구가 함께 살자고 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서 부여에 정착하였다. 그런데 이 곳에서 친구가 얼마 못가서 죽게 되었으며, 고향과 친구를 잃어버리는 불운을 겪었다. 그런데도 김홍배는 두레풍장에 깊은 맛을 잊지 못해서 여러 곳에서 장구를 배우고 가락을 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장구를 칠 때에 자신의 소리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칭찬하던 소리를 잊지 않았다.  

최영환의 환갑 잔치에서 장구를 치면서 풍장치는 사람으로 많은 격려를 받았던 것을 잊지 않는다. 김홍배는 여러 곳에서 다니면서 장구를 치고 회원으로 경험을 하게 된다. 부여의 세도두레풍장, 부여의 초촌면 추양리 농악 등을 익히면서 그곳에서 회원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단체에서 경험을 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윤종만을 만나서 느리고 푸짐한 가락을 익혔다고 한다. 그의 가락에 윤종만과 같은 가락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김홍배는 김요덕과 이충하를 만나서 논산시연합두레풍물단으로 활동하면서 이들의 가락과 조화를 이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가락이 원래의 윤종만 가락과 맞지 않고, 각인된 소리가 많이 희미하게 되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레풍장의 일원으로 서로의 기쁨을 이룩하는 일은 본디부터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배우지 못했지만, 귀로 듣고 눈으로 배운대로 두레풍장을 치면서 자신의 일상 생화를 남다르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5 김영수(金泳守, 1945(乙酉)99- )

 김영수는 194599일생이나 사실은 원래 생일은 95일이다. 태어난 곳은 노성면 두사리인데 원 마을의 이름은 물레고개라고 하였다. 마을 형상이 물레를 닮아서 이러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면서기가 잘못 올리면서 생일의 착오로 현재 호적에는 99일로 되었다. 김영수의 부친은 김흥복이고 어머니는 박봉춘이다. 두 분은 10남매를 두었으며, 김영수는 막내이다. 김영수는 이영희와 혼인하여서 4남매 13녀를 두었다. 노성국민학교를 나오고, 노성중학교를 나왔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를 모두 마치지 못했다 

김영수는 두레풍장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사는 곳은 논산시 노성면 두사리로 두레풍장을 겪으면서 이룩한 점에서 김영수는 평가할 만한 특징을 가진 인물이다. 김영수는 논산 노성칠형제두레메기를 하는 데서도 중추적인 구실을 하였고, 동시에 논산연합두레풍물단의 총무 구실을 하면서도 두레풍장을 알리는데 혁혁한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어른들인 윤석중이나 천명복과 같은 사람에게서 가락을 듣고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칠형제두레메기를 결성하고 두레풍장 전승을 위하여 줄기찬 노력을 하고 있다  

김영수는 북을 치는 신명을 가장 잘 아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북은 두레풍장의 북을 치면서 이를 두드리는 솜씨는 돌올하다. 두레풍장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가 여럿이 있지만 북만큼 제 구실을 해야 하는 악기도 드문 형편이다. 김영수 역시 박을 잘 지키고 꽹과리와 장구가 잘 놀아날 수 있도록 기본박을 징과 함께 연주해야 하는데 이를 형편대로 생생하게 해주는 인물은 흔하지 않다. 말뚝풍장 또는 제자리풍장에서 북이 요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수가 지니는 사람들을 모으고 이를 독려하는데 있어서 남다른 친화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항상 사람들을 모으고 연락을 열정적으로 하기 때문에 논산연합두레풍물단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수에게 사람이 달겨드는 데에는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영수의 북가락이 살아나고 신명이 고조되는 것에 쇠와 장구가 멋진 변체 가락을 연주할 수가 있었다.  

김영수의 북가락은 몇 안되는 훌륭한 것으로 소중한 것인데, 그만 가락을 당분간 들을 수 없게 된 것을 가장 아쉽게 생각한다. 몸에 불편함이 생겨서 당분간 본격적인 참여가 어렵게 된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가장 화급하게 막아야 하는데 어떠한 명분으로도 이러한 일을 도모해도 세월의 침범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6 송동의(宋東儀, 1960(庚子)77- )

 송동의는 아버지인 송석봉(宋碩奉)과 어머니인 김종희의 오남매 가운데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출생지는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 돌못이라는 곳에서 났다. 논산부적초등학교, 논산중학교를 거쳐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송동의는 원래는 사물놀이를 연마하고 사물놀이 주자로 주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가 거닌 길들을 보게 되면 그러한 자부심과 경력이 송동의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송동의는 본래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연희학과를 수료하였다. 기간은 2011년에서부터 2015년까지 학습하였다. 그 곳에서 많은 전통예술과 전통문화를 공부한 것이 인생의 커다란 밑천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서 새로운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사물놀이와 같은 가락을 핵심적으로 익혀서 그것을 기량으로 삼아 대전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도 이래로 논산에 정착하고 논산에서 두드림대표로 활동하면서 사물놀이 가락 전수에 매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처용어울림사물놀이를 보급하고 논산에서 최초로 사물놀이팀을 창단하고 공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 20161월달에는 중국 산동성에서 공연하는 일도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은 논산두레풍장의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우리 민족의 심층인 두레풍장의 전통에 각성을 하게 된 점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김요덕, 이충하 어른들을 만나면서 전통에 자각하고 이를 익히면서 그는 남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낡은 것이 힘이고, 우리가 기댈 언덕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하나, 아주 오랜 것이 곧 미래를 여는 지침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그 전통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길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함께 걸어온 길이 다른 것이니 만큼 이해와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일 수가 있다. 배운다는 자세로 겸허하게 낮추어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정말로 소중한 투자이다. 송동의가 한 여러 경과를 보게 되면 대전무형문화재 제1호인 대전웃다리농악도 전수를 받은 바 있고, 난타와 같은 일도 한 바가 있다. 그러한 자세로 결국 자신의 길을 완성하는 것을 우리는 축원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곳에서 곰삭으면서 익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전통의 자각과 계승이 될 것이다. 함께 익어가면서 새로운 것으로 비약하고 발전하면서 인생은 완성되는 것이다.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그를 있게 한 전통을 구실삼아 미래를 개척하려는 점을 잊지 않고 있다. 북을 두드리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그의 여정에 많은 미래를 걸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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