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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류지연 가야금    [다음] 김정림 해금 독주곡집 2 산조와 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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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권재은
 ㆍ 아티스트: 권재은
 ㆍ 음반사 : 예술기획 탑
 ㆍ 음반번호: TOPCD-086
 ㆍ 발매일: Manufactured by HWAEUM. 2004.11. Seoul, Korea
 ㆍ 녹음: 2004. 9. 22-23 충주소리골방 (TOP RECORDING)
 ㆍ 디렉터: 양정환 (음제1442호)/ ⓟ&ⓒ: Yang Jeong-hwan, www.gugakcd.com
 ㆍ 비고: ¤ 해설 / 이자균 ¤ Cover Design / Mu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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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CD-086
 
소리꾼 권재은 경서도 소리
GWON JAE-EUN - THE NEW SINGING VIRTUOSO THE GYEONGSEODO SORI
 
1. 뱃노래 Baennore 04:31
2. 노랫가락 Noretgarak 05:28
3. 제전 Jejeon 06:11
4. 금드렁타령 Geumdreungtaryeong 02:26
5. 변강쇠타령 Beongangsoitaryeong 09:38
6. 초한가 Chohanga 06:54
7. 전장가 Jeonjangga 06:32
8. 영변가 Yeongbeonga 04:52
9. 어랑타령 Eorangtaryeong 02:12
10. 긴난봉가 Ginnanbongga 06:26
11. 자진난봉가 Jajinnanbongga 03:32
Total Time 59:16
 
* 소리,장구: 권 재 은
* 표지그림 : 이 김 천
 
■ 이 음반을 내면서
- 귀한 만남 소리꾼 권재은 -
 
지난 8월 초순 어느 날 아침부터 더위가 느껴지고 있었다. 식사후 그 동안 밀린 자료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긴 충청도 충주 근교로 자기는 지방에서 소리하는 사람인데 출입이 여의치 못하니 한번 내려와 자기 소리를 들어봐 줬으면 했다. 몇 마디 더 나누는데 이미 나와 관련된 경서도 소리 음반들을 모두 꿰차고 있었고 경서도 옛 명창들의 소리를 두루 알고 있었으며 지금의 소리 바닥에 대하여도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경서도소리에 그것도 특히 남자소리에 목말라하던 차에 귀가 번쩍하면서 바로 오후 약속을 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는데 휴가철이라 그런지 밀리는 차량에 마음만 급했고 가까스로 중부 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차량도 숨통이 트였다. 세시간이 훌쩍 넘어 충주 근교의 십 여호 남짓한 어느 시골 동네 골목을 지나 외딴집으로 안내되었다. 소박한 말씨로 반갑게 맞아주는 그분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그에게 소리 배움을 의탁한 젊은이도 함께 있었다.
빼곡이 들어찬 음반과 많은 서적, 만만찮은 음향기기도 눈에 들어왔다. 대화가 오가면서 서로가 공감하는 부분이 쌓이고 이어 장구를 치면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 통성에 시원하게 뽑는 소리는 구성이 있었고 힘 또한 받쳐주어 나름의 진한 색깔을 담고 있음을 느꼈다. 이어 소리에 관련하여 속깊은 대화를 뒤로하고 귀경하였다. 그후 몇 번의 방문으로 이어져 그분의 집에서 가진 소위 원포인트 녹음방식은 일반 음반들과는 다르게 스튜디오 녹음, 믹싱 작업 없이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직접 장구를 치면서 소리하였고 간주는 장구 가락으로 대신하는 초유의 장구병창 음반으로.....
나는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미 출반된 천하의 명창 김옥심이 그랬고 전태용 명인이 또한 그랬듯이 소리바탕이 좋으면 요란한 화장이 필요없다는것을 되뇌면서 이런 귀한 만남의 경우는 자주 있어도 물리지 않을텐데 하는 욕심에 또다른 만남을 기원하게 된다.
2004. 10. 24
탑예술기획 양정환
 
■ 충주의 소리꾼 권재은
이자균(한국민속연구소)
 
남산과 탄금대가 서로 마주하는 산자락에 나침반을 놓고 방위를 보던 나이가 늙수그레한 지관은 마른 침을 삼키더니 “여기에다 묘자리를 쓰면 간간이 소리허는 광대가 날꺼유” 하자 부친은 눈만 꿈적일 뿐 말이 없고 권재은의 조부를 안장하기 위해서 막 산신제를 마치고 방위를 보려고 하는 참인데 그저 좋다고 흙장난만 한 이가 바로 충북 중원군이 안태본이며 현재는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 동락 마을에 솥을 건 옹골찬 소리꾼 권재은(1958~ )이다.
이녁도 말 하기를 “저는 평지돌출입니다. 그저 소리가 좋아서 한 거고 다른 건 窪습니다” 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데 말을 하는 품새가 그리 간단치 않은 이라는 것을 알고 궁금한 것 몇가지를 물어보았다.
권재은이 사는 집 뒤에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마땅하게 산소를 쓸 자리가 없어서 일년에 반 이상은 장사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자란 터수여서 볼만한 구경거리가 없는 시골에서는 이 또한 기중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였는데 당시만 하여도 의학이 발달되지 못해서 병이 나거나 아니면 저승 사자가 명부에 올릴 만한 이가 있으면 저승에 머릿수를 맞추려고 그랬는지는 모르되 그냥저냥 깜냥껏 산 이는 더 있다가 오라고 기별을 늦추지만 그렇지 않은 이는 여지없이 통지서를 보내곤 하던 시절이라 어느 때는 동지섣달에 언 땅을 곡괭이로 판 집도 있고 또 어느 집은 보리밥이 진득진득하게 묻어 나올 정도로 날이 더워 콩죽 같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광중을 파는 집도 보며 당시는 울긋불긋한 만장이나 공포를 드는 재미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게 좋았을 뿐인데 상여 위에서 요령을 흔들며 제 설움 반 저승으로 간 한 많은 이의 설움 반을 뒤섞어서 눈물과 콧물이 앞 섶을 적시는 줄도 모르고 묵은 신 김치에 콩비지와 느직하게 된 시커먼 막 된장을 넣어 만든 것처럼 쉰 듯하면서도 쉬지 않은 목구성을 보고 듣고 자랐다.
하도 이런 모습을 보고 들어서 누우면 천장이 빙빙 돌고 황소 불알 보다 조금 작은 요령을 들고 “대돋음 소리”가 귀에 젖어 덧께가 앉을 정도로 되어 몇 번 상여를 메기도 하고 선소리를 대준 적이 있는데 집에 가면 부친이 알까 봐서 삼일 동안 집에도 못 들어 가고 동무의 집에서 머물다 해거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부친은 당신이 소리를 하지는 않은 이이며 고양이 새끼 양반 새끼라고 시골의 토반(土班)으로 시골의 오일 장이나 삼일 장이 서면 장 터 마당에서 약장수들이 온갖 묘기를 부리며 소리하는 걸 등에 업은 아들이 그대로 흉내를 내자 겉으로는 호랑이 얼굴을 했지만 속으로는 판검사나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이제는 철이 든 아들이 어디 어디에도 나가고 또한 서울 KBS라디오 민요백일장(당시 19세, 최연소 연말장원)에 나갈 때마다 이름도 나오고 무슨 무슨 것을 상이라고 타올 적에는 “ 니가 하는 짓이 노는 거 하고 일 하는 게 구분이 안되니 아예 작파를 하고 다른 거나 하라고 말린 거다” 하고 한 말을 뒤곁에서 “굽은 나무가 선산지킨다”고 한 것 마냥 그래도 깜냥껏 하는 짓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권씨 집안의 장남으로서 실룽벌룽 바람 난 숫캐마냥 돌아다니는 게 부친의 이마 살을 찌푸리게 한 적이 하도 많아서 적잖이 가슴을 애태우게 한 곡절도 있지만 이제는 이녁도 한편으로는 뭐든지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애들이 허면 얼마나 하겠느냐’ 생각을 하였는지 마침 동네에 시조를 하는 이가 있어서 이한테 ? 「D㎱?받게 하였다.
부친 역시 철없는 아들이 소리한다는 게 당시만 해도 광대패나 기생들이나 하는 줄로만 알던 분위기라서 감히 신주 단지 불태우고 소리를 하면 모르되 그것도 아니라면 감히 자다가도 꿈도 못 꿀 당시의 사정을 감안 한다면 꽤나 도량이 넓은 분인데 “초성”이 좋아서 아지랑이 하늘하늘 피고 종달새 쉰 길이나 하늘 높이 떠서 종알댈 적에 쟁기질 하며 소 모는 구성진 목은 다른 이들보다 한 길 위였다고 하는 걸 보면 장차 권재은이 소리길로 접어드는 데 큰 버팀목 구실을 한게 아닌가 한다.
권재은이 우리 소리에 처음 접한 것은 열 두살 무렵 마을의 경노당 회장을 하고 있던 토박이로 이모라는 성을 지닌 지금은 성만 알지 이름 석자도 기억이 안 나는 이 노인한테 평시조 한 수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당시하고는 너무나 세속이 변하여 선생 앞에서도 아무 말이나 하고 그렇지만 육십년대 후반 쯤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반상(班常)의 구별이나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고 방식이 철두철미하여 감히 존장뻘이나 그 이상이 되면 성과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당호를 부르는 게 본디의 모습이었으니 함자를 모르는게 당연한 이치리라.
그렇지만 시골의 일상적인 모습은 권재은의 가슴에는 더 넓은 곳에 가보려고 하여도 손에 틀어 쥔 게 없어서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학교가 파한 뒤에 책가방을 던져 버리고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한평생 삶을 살아 온 이들한테 신주 단嗤매?犬?귀하게 여긴 소 한바리를 칠흙 같은 그믐 날에 외양간에서 끌어내어 고삐를 움켜쥐고서 내달아 서울로 갈 “자금(?)”을 마련하여 기차에 몸을 실어 내린 곳이 바로 당시에 종로 3가에 벽파(碧波) 이창배(李昌培 1916~1983, 인간문화재)가 청구고전학원이라고 간판을 내걸고 제자를 양성한 데를 허위단심 찾아갔다.
지금은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나는 일이 되어 버렸고 덧없는 세월도 유수 같이 흘러 지난 일이 되었지만 가만가만 생각을 해 보아도 어디에서 그런 담력이 생겨 철없는 짓을 했는지 쓴 웃음이 나는 일이건만 이는 권재은이 그만큼 소리에 대한 목마름이 너무나 강렬하여 그리했는지도 모르겠고 이녁 역시 허허 웃으면서 굳이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학원에서 서도소리인 영변가를 맨 처음 배우고 전장가, 노랫가락, 경기민요, 뒷산타령 등을 사 개월간 머물면서 혀를 빼물고 배웠으며 이 당시 나이가 열예닐곱 먹었을 때이다.
이녁이 지금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면서 한다는 말이 있듯 벽파는 소리도 소리지만 끌날 같은 세상을 어찌 살아가야 하며 사는 모양새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를 한 두마디씩 지나가는 말로 먼 산 바라보며 해 주시는게 지금도 온 몸이 부서져서라도 오랬동안 모시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만부득이한 일이었음을 어찌하랴?
사개월을 배우고 난 뒤에 범 같은 스승 앞에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 가슴만 앓다가 마침 수중에 가진 돈도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있기가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다시 새로운 소리 세계를 알기 위해서 이듬해 찾아간 선생이 황해도 태생인 지관용을 알게 되어 그 집에서 일주일 간을 머물며 전장가를 다시 “깨끼고” 생전 처음 듣는 “싸름” 타령이라는 것을 배웠으며 이 지관용이 예 간다 제 간다 하여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은 이를 붙잡고 더 이상은 있을 수가 없어서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집으로 내려와서도 농사철이 되었는데도 일을 할 생각은 도무지 아니하고 객지에 나가 한 번 콧 바람이 들었으니 삽자루 낫자루가 손엔들 쥐어지겠으며 밥을 먹어도 내려가지 않고 온몸이 맥이 탁 풀려 한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를 하자 당신이 보기에도 딱해 보이고 측은해 보였던지 아무런 말씀을 안 하시고 툇마루 끝에 앉아서 애꿎은 담배만 축내고 추녀 끝에 떨어지는 낙수물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 이었다.
권재은의 소리 세계 탐구는 여기에서 그치고 말 것인가?
역마살이 끼였는지 동네는 별로 소리를 하는 이나 먼 발치로나마 가근방에서 하는 이들이 없어서 나중에 철이 들어 안 것이지만 소리를 틀에 갇혀서 하는 소리가 마뜩찮아서이십대 초에는 녹음기를 들춰 메고 춘천 남면으로 가서 당시 팔십에 가까운 월남한 노인을 알게 되어 팔개월을 보내면서 “개타령”과 “한량굿” 이라는 재담을 하면서 소리를 하는걸 착실하게 배웠다.
이 노인은 술을 좋아해서 늘 코가 빨개 “코삘빌”이라고 부른 이였는데 개타령을 자유자재로 목을 구사하면서 부르기도 하고 통상 듣고 보아 온 가사나 선율을 “던지거나”, “마디가 깎이지” 않으면서도 엮는 재주는 또 다른 음악의 세계로 이끌기 충분한 노인었다.
이 노인은 노소동락할 줄 알고 재담이나 농담을 잘해서 비록 조명난 이는 아니지만 멋이 든 이었다고 하며 엮는 개타령은 다른 이들과 다른데 방아타령→개타령→맹인덕담→파경으로 짠게 “한 틀”이며 지금은 앞뒤를 잘라버리고 일부만 소리를 하고 있으니 영 입맛이 떨떠름하며 자꾸 담배에 손이 가고 가슴에 붓두질만 남는다고 권재은은 투덜거린다.
삼십대 중반 권재은은 참으로 소리 욕심이 많아서 한나절이나 걸려 전주로 내려 가서 판소리를 하는 이기권의 제자 홍정택을 찾아가서 들며나며 단가 “초한가”를 배웠는데 “해가 동쪽에서 뜨면 세상인 줄 알고 밥사발이 높으면 생일날인 줄 안다”고 세상을 무애무덤하게 살아 온 권재은한테 “얘야, 너 어디서 소리를 배웠느냐” 하길래 “제가 쬐끔 경기민요를 했습니다” 하자 “오, 그래” 하면서 준비해간 “학채”를 덜어 주면서 자주 오라고 등을 두드리며 격려를 해 준 기억은 스승복이 많다고 자부한다.
사실 홍정택을 찾아 간 것은 판소리를 배우려고 간 것도 간 것이지만 이녁이 평소 생각에 민요하는 이들이 ‘왜 그렇게 목구성이 얇은가’ 늘 불만이라고 생각을 해 온 터라 목을 기름지게 하려고 간 것이며 다 여미지도 못하고 거리상으로 너무 멀기도 하고 해서 바탕 소리는 못 배우고 결국 중동무이가 되고 말았다.
홍정택한테 북을 배우기도 했는데 중머리, 중중머리 초벌을 배우기도 하였고 종로 3가에 있을 적에 설장고의 명인 이정범한테 당신이 먼저 몇 장단을 치면 따라 치고 하면서 장고를 배우기는 했으되 이녁이 설장고를 쳐서 살 생각이 별로 없어 그만두고 민요백일장 때문에 서울을 오가며 김득수(1917~1990, 고법 인간문화재)는 안면을 익혀 두었던 터라 찾아가서 북은 단가 정도 치는 초벌 학습만 하였고 장고로 굿거리 삼장을 배웠다.
위와 같이 권재은의 학습 내력을 들춰 봤는데 이제는 권재은이라는 소리꾼의 소리 빛이라는게 무엇일까?
궁금한데 한번 그 속내를 들여다 볼 것 같으면 밤을 하얗게 새울 때까지도 모자라겠지만 한 번 이 음반을 듣는 사람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이는 우리가 소리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에 그러한 것이며 그렇다고 권재은의 소리 빛이 틀을 무너뜨려 엉뚱생뚱한 길로 들어 선 것도 아니요, 골격을 유지하면서 소리 길을 지니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가무악이 대부분 비슷해져 가려고 무진 애를 쓴다는 점인데 이는 아주 무엇인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판소리를 한 고 박봉술, 정권진, 생존한 한승호, 일정 시대의 이화중선, 경기민요의 고 지연화 등의 소리 빛은 제 각기 다른데 자기만의 소리 빛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가무악에서 특히 소리 빛에서는 얼마나 개성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일진대 지금은 그런 것이 없고 두루춘풍 네 멋도 내 멋도 아닌 애비 성도 없고 에미 성도 없는 소리가 되어 버렸다.
첫째는 소리에 대한 생각이 반듯하게 서 있다는 점이다.
소리가 되었든 악기가 되었든 이 소리를 어찌 해야되고 어떤 음색을 내야되며 악기라고 하면 선율이나 고저 장단하며 들였으면 널어야 되고 다시 풀었다가는 조이고 마냥 조여도 답답하니 풀고 시나브로 맺고 해야 소리나 악기가 지니고 있는 본디의 모습이 있어야 하며 예전 전통 사회에서 나서 평생 가무악을 해 온 이들은 이런 생각이 머리 속에 철저하게 박혀 있는데 이들이 타계하자 제대로 학습을 안 한 이들이 제가 잘못 한 줄을 모르고서 남의 탓만 한다거나 한 장단이나 가락의 틀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한 배”를 못 채운다거나 “마디가 깎이게” 한다거나 반벙어리마냥 끝을 여민다거나 하는 수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민속 음악계의 개탄스런 현실을 볼 적에 권재은이 지니고 있는 소리에 대한 생각은 분명 이채로우며 “소리는 결국 소리이다” 라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못 깨닫고 자꾸 옆으로 빗나가 목 성음을 만들거나 하는 웃지 못할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니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갈 지는 모르되 그렇게 썩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며 마침내 소리꾼이 나와 가뭄에 단비가 온 것 같은 생각! 이 드는 까닭은 비단 필자 뿐 만아니라 참 소리꾼을 고대하고 있는 귀명창들은 두루 두루 공감을 할 것이다.
목 성음을 만들더라도 정도껏 만들고 버무려서 소리 길길마다 꺽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고 감아서 잡아채기도 해야 되고 장단을 달아놓고서 소리 마디를 던진다거나 밀어 올려서 덜미청으로 흔들고 때로는 방울목으로 달랑달랑 거리다가 서슬 시퍼렇게 치고 눌러서 숙인 다음 목을 돌려서 여미는 권재은의 목구성은 현존 경서도 소리꾼이 별반 없는 이즈음에 혓바늘이 돋고 입 안에서 단내가 물씬물씬 나도록 공력을 쌓아야 될 줄로 안다.
둘째는 소리 공력이 탄탄하다는 점인데 이는 나이 들어서 목이 부러져서 후회할 일을 미리 시사해 준다는 것이다.
대관절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되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적에 소리 공력을 쌓아놓아야 되는데 이를 얕보거나 업수이 여겨 기운 줄고 세월이 흘러 바지 괴춤을 추스를 즈음에는 그 때는 이미 늦은 때라고 종종 명창들이 증언하는 것을 들었는데 권재은의 목구성은 축 쳐짐도, 얇음도, 쓸데없이 두껍거나 나팔통 마냥 목에 힘줄을 세우며 지르지도 않고 흔들림이 없이 고루 튼실하게 곡목에 맞춰서 펼친다는 점이다.
한창 소리 공부를 할 적에는 하루 아침에 일어나서 밤까지 소리 연습을 하노라면 눈 앞이 노랗고 하늘이 시커멓게 보일정도였다 하니 아니 보아도 알 것 아닌가?
목을 굴릴 적에 잘 못하면 발발성이나 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목에서 나오는 해발딱한 일본 접시 모양 같은 되바라진 목구성이 튀어나올 적이 있는데 이는 목을 어찌 써야 되느냐 하는 확고부동한 생각 없이는 안되는 틀거지 있는 소리이며 특히 서도소리는 속청, 겉청을 써야 된다고 하는 말은 맞는 말인데 이는 수심가, 관산융마 같은 호흡을 길게 끌어서 하는 소리는 그렇게 해야 되지만 고인이 된 최경명, 김영택의 소리를 들어 보면 반드시 들어 맞는 얘기는 아니며 긴염불이나 난봉가 소리는 본디 황해도의 만수대탁굿이나 철몰이 굿 등 큰 굿을 할 적에나 또는 진오귀 새남굿을 할 적에 목청 좋은 만신들이 나와서 하거나 주무가 나중에 고인이 극락 세계로 잘 가라고 하는 소리가 나중에 전문 소리꾼인 기생들이 불러서 이렇게 시김새를 많이 넣어서 발전시킨 것이다.
셋째로 음색이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녁 굶은 시어머니 얼굴 마냥 칙칙하지도 않으며 시건방을 떨다가 제 품에 넘어가는 “시거든 떫지나 말으랬다”고 시푸르둥둥하고 얼룩덜룩한 푸른 빛인지 시커먼 빛인지를 구별을 못 짓는 소리 빛은 더더욱 아니며 깜냥에는 멋을 부린다고 목을 돌리고 사설을 얼버무려서 소리 길을 정확하게 놓지를 않고 다음 소리 마디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는 소리 빛은 이 또한 아니며 칠하면 칠할 수록 윤이 나는 옻칠 같은 진하디 진한 빛이며 빨면 빨수록 은은한 제주도의 물들인 감 옷처럼 그런 소리 빛이다.
푸른 빛이 너무 푸르면 나중에는 검은 빛을 띠는데 소리의 강약과 고저를 유효 적절하게 구사하는 권재은의 재주는 주워 담을 때는 담고 칠 때는 쳐야 멋지고 담백한 소리가 있고 또한 되어야 한다고 일찌감치 깨달음의 밑바닥에는 많은 공력과 보이지 않은 뒤곁에 돌아 서서 안으로 삼킨 눈물과 한숨이 강과 내를 이루어 마침내 대천 한바다에 쏟아 부은 폭포수임에랴 누구인들 탓할 것인가?
 
IN SEARCH FOR A NEW VOCALIST OF THE GYEONGSEODO SORI
Encountering with "The Cherished Vocalist" - Gwon Jae-eun
I received a phone call on an early August, while organising my recording materials. The person on the phone introduced me himself and asked me to come down to his place and to listen to his singing, as he was not free to travel to Seoul. His base has been an outskirt of Cheongju, the Chungcheong province. From a conversation with him over the phone, I could realise that he knew all the released CDs related to the Gyeongseodo sori recorded by me and had some opinions about the deceased master singers' style of the Gyeongseodo repertoire. Furthermore he had his own clear views and experiences with its singing practice. His understanding and involvement of this particular regional singing gave me a deep impression that I have for long been keen on discovering repertories and new voices of the Gyeongseodo sori, particularly searching for hidden male soriggun(s) (singing virtuoso).
I immediately drove down to his place on the day and arrived his detached house in a small village after long hours' journey. There was a young man who was tutoring singing with Gwon. His room was equipped with full of CDs and books, and a valuable audio system was also presented. As building up a certain rapport between us during chatting, he started playing a janggu and then singing. Having had a tongseong (vocal production that coming out of abdomen) and a powerful voice that supports this kind of the singing style, I noticed that he basically had his own method and style of interpreting the repertoire. I thought he deserves making a record later time. After listening to his singing a couple of times, we agreed to make his album and did record for the first time the so-called an "one-point" method of recording which refers to recording without a mixing process in a studio. Moreover the CD became the first "Janggu Byeongchang" that Gwon Jae-eun himself accompanied the ! janggu with his singing and elaborated the janggu melodies into the interlude part.
I am absolutely certain that when a vocalist has a solid ground for a capacity of interpreting songs, any gay ornaments would not be necessary, as the deceased master singers like Kim Ok-shim and Jeon Tae-yong did. I wish I would be able to encounter other hidden voices like Gwon. I am looking forward to listening to his other repertories in the future.
Yang Jeong-hwan
(24 October 2004)
 
■ 사 설
뱃노래
※ 어기야 디여차 어야 디야 어기 여차 뱃놀이 가잔다
1. 부딪치는 파도소리 잠을 깨우니 들려오는 노소리 처량도 하구나
2. 만경창파(萬頃蒼波)에 몸을 실리어 갈매기로 벗을 삼고 싸워만 가누나
3. 낙조청강(落潮淸江)에 두둥실 뜬 배야 술렁술렁 노저어라 달맞이 가잔다
4. 바람앞에 장명등(長明燈)은 꺼지건말건 우리들의 사랑만은 변치를 마잔다
5. 소정에 몸을 싣고 잠깐 조을새 어디서 수상어적이 나를 깨운다
6. 창해만리 먼 바닷가에서 외로운 등불만 깜빡 어린다
7. 하늬바람 마파람아 불지를 말어라 키를 잡은 저 사공이 갈 곳이 없단다
노랫가락
1. 비는온다 만은 님은 어이 못오는가
구름은 간다마는 나는 어이 못가는가
언제나 비구름 되어 임에게로 오락가락
2. 바람이 물소린가 물소리 바람인가
석벽(石壁)에 달린 노송(老松) 움츠리고 춤을춘다
백운(白雲)이 허우적거리고 창천(蒼天)에서 내리더라
3.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신 임을 왜 보냈나
오신 임 보내질 말고 잠든 나를 깨워주지
일후에 임 오시면은 임을 붙들고 날 깨워 주렴
4. 말은 가자 네 굽을 놓고 님은 날 잡구 놓지를 않네
석양은 재를 넘구요 나의 갈 길은 천리로구나
님아님아 날 잡지 말구서 서산에 지는 해를 잡어.
5. 나비야 청산가자 호랑나비 너두 가자
가다가 날 저물거든 꽃에서라도 쉬어가자
그꽃이 싫다구 허면은 잎에서라도 쉬어가자
6.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滄海)하면 다시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여 간들 어떠하리
7. 가고 못 올 임이라면 정이나 마저 가져가지
정은 남고 몸만 가니 정둘 곳이 만무로구나
이정을 어디다 두었다 임 오실 때에 풀어볼까
제전(祭奠)
백오동풍에 절일을 당하여 임의 분묘를 찾어가서
분묘앞에 황토요 황토위에다 제석을 놓고
제석위에다 조조반 놓고 조조반 위에다 좌면지를 깔고
좌면지 위에 상간지를 펴고 차려간 음식을 벌이울제
우병좌면 어동육서 홍동백서 오기탕 실과를 전좌후준으로 좌르르 벌이올 제
염통산적 양보끼 녹두떡 살찌찜이며 인삼녹용에 도라지채며
고비 고사리 두릅채 왕십리 미나리채며 먹기 좋은 녹두나물이며
쪼개 쪼개논 콩나물도 놓고 신계곡산 무인처에 머루다래며
함종의 양률이며 연안백천에 황밤대추도 놓고
경상도 풍기준시 수원홍시며
능라도 썩건너서 참모롱이 둥글 둥글 청수박을
대모장도 드는칼로 웃꼭지를 스르르르 돌리어 떼고
강릉생청을 주루룩 부어 은동글반 수복저로다 씨만 송송골라내며
한 그릇 메 한그릇은 갱이로구나
술이라니 이백의 기경 포도주며 떨어졌다 낙화주며 산림처사의 송엽주로다
도연명의 국화주며 마고선녀 천일주며
맛좋은 감홍로 빛좋은 홍소주 청소주 왠갖 술을 다 고만두고
청명헌 약주 술을 노자작 앵무배에
첫 잔부어 산제하고 두잔 부니 첨작이요
석잔부어서 분상묘전에 퇴배연후에
옷은 벗어 남게 걸고 그냥 그 자리에 되는대로 펄썩 주저앉아
호천만극의 애곡을 헐 뿐이지 뒤 따를 친구가 전혀 없구려
잔디를 뜯어 모진 광풍에 흩날리며
왜 죽었소 왜 죽었소 옷같은 나 여기두고 왜 죽었단 말이요
선영에 풀이 긴들 절초할 이 뉘 있으며
한식명절 당도하여도 잔 드릴 사람이 전혀 없구려
일부황분이 가련쿠나.
천지루다 집을 삼고 황토루다 포단삼으며
금잔디루다 이불을 삼고
산천초목은 울을 삼으며 두견 접동이 벗이로구나
심야공산 다 저문 밤에 홀로 누워 있기가 무섭지두 않단 말이요
임죽은 혼백이라도 있거든 나를 다려만가려마
금드렁 타령
※ 금드령 금드령 금드령거리구 놀아나보잔다 금드령 금드령
1. 놀구나 싶은맘 태산과 같은데 원수의 금전이 허락질않네
2. 바람에 불리는 갈대와 같이도 변하기 쉬운건 사람의 맘일세
3.간다네 가누나 유정님 버리고 동설령 고개로 나 넘어간다
4.못살겠드라 죽고만 싶드라 정든님 그리워 나못살갔네
5.산천초목은 푸르러만 가는데 우리네 인생은 늙어만 간다
변강쇠 타령
아니리: 이노래는 무슨 노랜고 하니 천하잡놈 변강쇠 타령이렸다.
소리: 강쇠란 놈의 심사 봐라 저 강쇠란 놈 심사봐라
자라는 호박에 말뚝박기 불붙는데 가면 키질허기
물에 빠진 놈 덜미잡기 자친 밥에다 돌 퍼붓기
우물 길에다 똥싸기요 정절 과부를 모함허기
옹기전에 말달리기 활쏘는 양반은 줌 팔치기
아니리: 이놈 심술이 이렇게 못쓴데 저의집에 데리고 사는 마누라는 천하절색이라
두양주 얼싸안고 노는 데 이렇게 놀겠다.
소리: 얼 둥둥 내사랑이로다 얼럴 거리구 상사디야
너 생겨나구 나 생겼으니 진아 장삼은 준륙이요
아삼약사 오륙이로구나 얼럴 얼럴럴 얼럴럴거리구 상사디야
너두 젊구 나두 젊어 우리 두 양주 저 젊어 노자
늙어지면 못 논다누나 얼럴 얼럴럴 얼럴럴거리구 상사디야
너와 나 와 사랑타가 아차 한번 죽어 지면
너는 죽어서 무엇이되며 나는 죽어서 무엇되리
너는 죽어 물이 되는데 이물 저물 다 그만두고
음양수라는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는데
이새저새 다 그만두고 원앙새라는 새가 되어
네 물위에 내가 앉어 터덕터덕 놀게나 되면
네가 난 줄을 알려무나
계집: 아이 난 물이 싫어요
강쇠: 물은 왜 아! 싫다 그래 물이 좋지
계집: 아이 물도 좋긴 좋은데 오뉴월 복댓날 남자들이 발가벗고 멱감을때
가운데 시커머니 보기 싫어서 그렇지 뭐
강쇠: 오 그거 안되겠구나 그럼 다른거 하자
소리: 네가죽어서 될 것 있드라 너는 죽어 방아가 되고
나는 죽어 방아괘이 되어 천만석에 디딜방아로
쿵덕 쿵덕 쿵덕 찧게나 되면 네가 난 줄을 알려무나
계집: 아이 난 방아도 싫어요
강쇠: 아이 방아는 왜 또 싫다 그래 방아는 좋지
계집: 아이 그 여자는 살아서도 남자 밑에서 노는데 죽어서 까지 남자밑에서 놀란말이요
난 방아 안하갔소
강쇠: 오 그럼 위로 놀자우
소리: 네가 죽어서 위로만 되라 너는 죽어 망우싹이 되고
나는 죽어 망미싹이 되두 그래두 내 근본 내가 가지구
그저 피빙핑 돌기나되면 내가 난줄을 알려무나
아니리: 이렇게 한참동안 놀아났으나 때는 마참 어느땐고 하니
동지섣달 설한풍이나 낭구를 좀 해와야 되갔거든.
근데 동네 총각 홀애비 남정네란 남정네를 쏵헤아려 보니까 한삼사십명 되야요.
조것들 그냥 내버려 두고 가면 지 마누라 우째건드릴까배
밸 밸 꾀어 가지구 올라 가겄다
소리: 강쇠란 놈의 거동봐라 저 강쇠란 놈의 거동 봐라
삼십명 나무꾼 앞세우고 납작지게를 걸머 지고
도끼는 갈아 꽁무니다 차고 낫은 갈아 지게에다 꽂고
우줄 우줄 넘어간다 거들거리구 넘어간다
이산 넘고 저산 넘어 감돌아 들고 물돌아 들어
죽림 심천 돌아 들어 원근산천을 바래보니
오색 초목이 무성하다 마주서 있다고 형제목이요
입맞추면 쪽나무에 방구 뀌면은 뽕나무
십리 절반은 오리나무 한다리 절뚝 전나무에
오동 지심은 경자라로다
아니리: 이렇게 나무를 나갔으나 나무가 있어야지 나무가 없는게 아니고
이녀석이 양지바른쪽에 지게를 뜩 바쳐놓고 낮잠을 한 참 쎄리다
낯바닥이 선선해 깨보니까 하늘에 별이 총총하지.
이대로 갔다간 즈이 마누라한테 혼날걸 생각하니까 그냥갈수가 있소?
밤중에 나무가 있어야지. 밤길을 슬슬기어 내려오다 한쪽을 바라 보니까
뭐가 키가 우뚝한게 서있거든 보니까 장승이야. 올다 됐다.
저걸좀 빼다가 불좀 때야 되겠구나. 하지만 장승이 무슨 죄가 있소.
강쇠 아궁이 앞에 엎드려 신세 한탄을 하는데..
소리: 아이구 답답 내신세야 아이구답답 내 팔자야
어드런 나무는 팔자가 좋아 계승가문 신주가되어
사시절이 돌아오면 만반지수를 떡 차려놓고
공양재배 고축을하니 근들 아니나 소중하며
또 어드런 나무는 팔자가좋아 오동복판 거문고되어
어여쁜계집에 무릎에 앉아 둥기덩 둥덩실 놀아있고
또 어드런 나무는 팔자가 좋아 고대 광실 들보가되어
거들거리고 잘사는다 이내 팔자는 왠 팔자로
나무중에도 천목이되어 뭇잡놈들이 나를베어
웃동은 잘라 개밥통파고 아랫동 잘라서 소구영파
가운데 동으로 장승을 만들어 제놈의 할배기 기생처럼
왠갖무늬가 진토로다 삼갑수 팔척키에
팔자에 없는 사모풍대를 완연 하게도 날 씌워
거리노중에 홀로서 홀로 우뚝 서있으니
다리가 있으니 달아나며 입이있으니 말을하랴
죽도 살도 못해여 불피풍우 우뚝 서서
진퇴유곡에 이내몸 저 몹쓸 변강쇠 말놀음 끝에
아궁귀신이 왠말이냐 아이구 답답 내신세야
초한가(楚漢歌)
만고영웅호걸들아 초한 승부 들어보소
절인지용 부질없고 순민심이 으뜸이라
한패공의 백만대병 구리산하 십면매복 대진을 둘러치고
초패왕을 잡으랄 제 천하병마도원수는 표모걸식 한신이라
장대에 높이 앉아 천병만마 호령하니 오강은 일천리요
팽성은 오백리라 거리거리 복병이요 두루두루 매복이라
간계 많은 이좌거는 패왕을 유인하고 산 잘 놓는 장자방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를 슬피 불어 팔천제자 해산할 제
때는 마침 어느때뇨 구추삼경 깊은 밤에 하늘이 높고 달 밝은데
외기러기 슬피 울어 객의 수심을 돋아주고 빈방만리 사지중에
장중에 잠 못드는 전 군사야 너의 패왕의 역진하여 장중에서 죽을 테라
호생오사하는 마음 사람마다 있건마는
너희는 어이하여 죽길 저리 즐기느냐
철갑을 고쳐입고 날랜 칼을 빼어드니
천금같이 중한 몸이 전장검혼이 되겠구나
오읍하여 나오면서 신세자탄하는 말이 내평생 원하기를 금고를 울리면서
강동으로 가쟀더니 불행히 패망하니 어이 낯을들고 부모님을 다시뵈며
초강백성 어이보리 전전반측 생각하니 팔년풍진 다지내고
적막사창 빈방안에 너의부모 장탄수심 어느누구라 알아주리
은하수 오작교는 일년일차 보건마는 너희는 어이하여 좋은 연분을 못보느냐
초진중 장졸들아 고향소식 들어보소 남곡녹초 몇번이며
고당명경 부모님은 의문하여 바라보며
독수공방 처자들은 한산낙목 찬바람에 새옷지어 넣어두고 날마다 기다릴제
허구한 긴긴날에 이마위에다 손을얹고 뫼에올라 바라다가 망부석이 되겠구나
집이라고 들어가니 어린자식 철없이 젖달라 짖어울고
철안자식 애비불러 밤낮없이 슬피우니 어미간장이 다썩는구나
남산하의 장찬밭은 어느장부 갈아주며 이웃집에 빚은술은 누구를대하여 권할쏘냐
첨전고후 바라보니 구리산이 적병이라
한왕이 관후하사 불살항군 하오리구나 가련하다 초패왕은 어디로 갈꺼나
전장가
에- 조침치 삼치 끝에 적벽강산 배진군사
여기저기 모여앉어 신세자탄 우는 양은 목불인견 못보간듸
어떤 군가 내달으며 여봐라 동지들아 이내 사정 들어보소
이내 팔자 기박하여 초 일곱 살에 모친 잃고 여덟살에 아부지 잃어
사고무친 혈혈단신 의탁할 곳이 바이 없어 외삼촌네 집으로 갔더니만
첫해에는 애 보이고 그 이듬엔 소 끌리어 아차하면 욕질이요 야칫하면 매질이니
이 세상에서 돈 없으면은 일가 친척이라도 다 쓸 곳이 없구나
남의 집 머슴살이 첫 해에는 두냥 닷돈
그 이듬에 슥냥 닷돈 차차차차 올라가서 마루고봉이 되게 되니
그 동정에 어떤 분이 무남독녀 딸 하나를 애지중지 곱게 길러
아무개집 아무개는 남의 집을 살지라도 착실허구 근실하다고 다릴사위로 삼는다고
모캉모캉 모여 앉어 쑥떡쑥떡 하더니만 길일을 택하여서 신부 집으로 나갈 적에
강구지에가 절로난다
오날같이 좋은날에 우리 부모나 계셨던들 얼마나 기쁘다고 하시련만은
여영가고 못오시니 그 아니 절통하랴 일락서산에 해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 솟을제
신부집을 당도하니 신부가 나오는데 녹이홍상에다 명월패를 인찌차고 아장아장 나올적에
나의 설움을 못 이기어 섬섬옥수 덤벅잡고 만단수단를 다 못하여
앞뒷문으로 와르르 달겨 들더니 고두래상투 부여잡고 군사뽑혔다고 재촉하니
신부님의 거동보소. 샛별같은 두 눈에서 진주같은 눈물방울이 핑그르르 돌더니만
나삼 소매로 낯을 가리고 말 못하고 돌아 앉아 흐득흐득 느껴 울다가
여보시오 낭군님 당신은 대장부라 부귀와 아녀자를 생각지 말으시고
만리전장 분부군진 백전백승 전커들랑 패가 부르며 돌아와서
우리 둘이 끊어졌던 거문고줄 다시 이어 둥당실 즐겁게 놀게되면 근들 아니 기쁘리까.
잘 가시오 잘 있으소 이렁저렁 떠날 적에 보통문안 송객정아 이별에도 설워마라.
만군지중에 나갈적에 행여나 승전하여 고국갈까 바랬더니
패군지장이 되었으니 고국 갈 길이 망연이로다
어떤 군사가 나오는데 다 떨어진 전복에다 부러진 창대 옆에 끼고 울음 울며 나오면서
여봐라 동지들아 그까짓 헛 서러움을 서러워 말고 이내 사정 들어보소
만군지중에 나갈 적에 당상학발 늙은 양친은 못 간다고 슬피 울고
청춘애처 장손엄만 시부모가 계시니까 크게 울던 못하여도
치맛자락을 입에다 물고 아드득 뜯으면서 같이 가자고 달겨 들고
어린 장손이는 서당 갔다 오더니만 천자백수문을 문밖에 와르르 던지더니
아부지 군복자락을 덤벅잡고 아고 아부지 애고 아부지
오날이 무삼 날이기에 전에 없던 철총장대가 왠 말이며
군복 자락이 또 왠말이요.
영변가(寧邊歌)
1. 노자에 - 노자 - 젊어서 노잔다
나도 많아 병이나 들면은 못노리로다
영변의 약산의 동대로다- 부디 평안히 너잘있거라
나도 명년 양춘은 가절이로다 또다시보자
2. 오등의 - 복판이로다- 거문고로구나
동당실 술구덩 소리가 저절로 난다
달아 에- 달아달아 허공중천에 둥텅실 걸리신 달아
임의나 창전이로구나 비치신 달아
3. 아서라 - 말려무나- 네 그리 말려무나
사람의 인정의 괄시를 네 그리마라
남산을 바라다보니 진달 화초는 다 만발하였는데
웃동 짧고 아리아래동 팡파짐한 아희들아 날살려주렴
어랑타령
어랑 어랑 어허야 어어야 더야 내사랑아
1. 공산야월 두견이는 피나게 슬피 울구요
강심에 어린 달빛 쓸쓸히 비춰있네
2. 오동나무를 꺾어서 열녀탑이나 짓지요
심화병 들은 님 장단에 풀어나 줄거나
3. 삼수갑산 머루다래는 얼크러 설크러 졌는데
나는 언제 임을 만나 얼크러 설크러지느냐
4. 구부러진 노송남근 바람에 건들 거리구
허공중천 뜬 달은 하해를 비춰주누나
5. 허공중천 뜬 기러기 활개 바람에 돌구요
어랑천 급한 물은 저절로 핑핑 도누나
긴난봉가
※ 애 - 애해애 애해요 어럼마 둥둥 내 사랑아
1. 정방산성 초목이 무성한데 밤에나 울 닭이 대낮에운다
2. 오금이 오슬오슬 춥구요 골머리 사지통 나는 건 임으로 연하여 난 병이로다
3. 만경창파 거기 둥둥 뜬 배야 게 잠깐 닷 주어라 말물어 보자
4. 사면십리 늘어진 능파 능파 속에 임 찾아 갈길이 망연이로다.
잦은난봉가
1. 넘어 넘어간다 넘어간다 자주하는 난봉가 훨훨 넘어간다
※ 에헤 에헤야 어야더야 어허야 어라함마 디여라 내사랑아
2. 실죽밀죽 잡아댕길 줄만 알았지 생사람 죽는줄 왜 몰라주나
3. 한잔을 들고 또 한잔을 마시니 아니나던 심정이 저절로 난다
4. 이놈의 살림살이 할지 말지 한데 울 넘어 박넝쿨은 지붕을 훨훨 넘누나
※ 에헤에헤 에헤야 어야어야어야 더야 아스랑적에 맑갔지 무삼 별수가 있나
5. 감실 감실 사라지는 정든임의 뒷모습 하염없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 심정
6. 가려면 가려마 잊으라면 잊어주마 이세상 미련을 남김없이 가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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