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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신 갓 스물에 숨어버린 산조
 ㆍ 아티스트: 김명신
 ㆍ 음반사 : 예술기획 탑
 ㆍ 음반번호: TOPCD-048
 ㆍ 발매일: Manufactured by JIGU. 2002.1. Seoul, Korea
 ㆍ 녹음: 1972.4.
 ㆍ 디렉터: 양정환 (음제1442호) Yang Jeong-hwan
 ㆍ 비고: Cover Design/ Mu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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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CD-048
 
김명신 갓 스물에 숨어버린 산조
The unknown performance of two Gayageum Sanjo presented by the age of 21, Kim Myeong-shin
 ¤ 가야금산조 / 김윤덕류 Gayageum Sanjo / Kim Yun-deok ryu
① 진양조 Jinyangjo 05:50
② 중모리 Jungmori 03:19
③ 중중모리 Jungjungmori 01:53
④ 자진모리 Jajinmori 01:41
⑤ 휘모리 Hwimori 02:05
⑥ 단모리 Danmori 02:00
 
¤ 가야금산조 / 성금련류 Gayageum Sanjo / Seong Geum-ryeon ryu
⑦ 진양조 Jinyangjo 05:16
⑧ 중모리 Jungmori 03:16
⑨ 중중모리 Jungjungmori 01:09
⑩ 굿거리 Gutgeori 01:11
⑪ 자진모리 Jajinmori 04:28
⑫ 휘모리 Whimori 02:42
⑬ 엇머리 Eonmeori 00:17
■ 가야금/ 김명신 gayageum/ Kim Myeong-sin
■ 장고/ 장덕화 janggo/ Jang Deok-hwa
■ 김 명 신
예명 정아, 유년시절 미진으로도 불려짐
1951.3. 경북 예천 출생
1969.2. 한국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
1973.2.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1974.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중퇴
1964.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 기악부 장려상 수상
1967.5.16. 제1회 5.16민족상 음악부문 가야금 우수상 수상
1968.10. 중앙대 주최 전국학생무용경연대회 특상 수상
1970.5. EXPO ’70 일본 국제만국박람회 한국민속예술단원으로 참가
1971.1.9. 제1회 가야금독주회 개최
1972.6. 서라벌예술대학 4년 재학중 메이퀸으로 선정
1972.8. 독일 뮌헨올림픽 공연 및 유럽,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24개국 순회공연 결혼후 음악활동 마감, 현 서울 거주
사사 : 성금연, 김윤덕(가야금), 박귀희(가야금병창), 한영숙(춤)
■ 김명신의 예술세계
김명신(金明信)은 1951년3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으며 예명은 정아, 어릴때는 미진으로 불려졌다.
일찌기 부모님의 영향으로 국악과 인연을 맺어 한국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예술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하였다.
학생시절 김명신은 당대 최고의 명인 성금연·김윤덕 선생에게서 가야금산조, 박귀희 선생에게서 가야금병창을, 한영숙 선생에게서는 춤을 배우면서 기악·소리·춤 등 수준 높은 기예를 익혔다. 국악예술학교 시절인 1967년 당시 최고 권위의 제1회 5.16민족상 음악부문 가야금 우수상을 비롯하여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 기악부 수상에 올랐고 또한 중앙대 주최 전국 학생무용경연대회에서 특상을 받기도 하였다. 대학재학중에 개인독주회를 가질만큼 당찬 열의와 실력을 갖췄으며 대학축제 행사에 메이퀸으로 선정될 만큼 미모도 겸비하였다.
학생신분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예술단원으로 선발되어 1970년 EXPO ’70 일본 국제만국박람회 공연 및 1972년 뮌헨 올림픽공연에 이어 유럽·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24개국 순회공연을 가질만큼 당시 촉망받는 연주가로 주목을 받기도 하였으나 일찍 찾아온 결혼과 함께 평범한 일상 가정주부의 생활로 돌아가 다시는 그의 활동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지금은 나이 오십이 넘은 중년으로 서울에 살고 있다.
이 음반은 대학재학중인 21세때의 단 1회 한번의 녹음으로 가락 한 올 한 올 마디 마디에 젊음과 패기가 서려 있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각기 성격이 다른 두 바탕 산조의 깊은 맛을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한껏 발산하고 있다.
김명신! 그의 갓 스물을 넘긴 나이의 실력으로 볼 때 계속해서 연주활동을 하였더라면 아마도 오늘날 가야금산조계의 판도가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녹야(鹿野) 김윤덕(金允德)은 1918년 12월 21일(음)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정자선·김광석에게 가야금 풍류를 김용근에게 거문고 풍류 그리고 정남희·강태홍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또한 한갑득에게 거문고산조를 배우기도 하여 그의 음악세계를 넓혔고 1960년 후반에는 기존의 가락에 새로이 자신의 가락을 넣은 독자적 산조를 구축하면서 가야금산조 부문에 큰 획을 그었다.
1968년에는 드디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53년 이후 10여년을 국립국악원 악사로 재직하였고 1964년 부터는 한국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연주·녹음·방송 등 많은 활동을 하다가 1978년 2월 18일(음) 61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 일본·멕시코·유럽·미국 등 해외 공연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1972년의 미국 카네기홀 연주에는 지영희·성금연 부부 그리고 김소회와 함께 하여 큰 호응을 얻어 현지에서 녹음 음반을 내기도 하였다.
그의 가야금산조 가락은 1951년대 부터 수년동안 수학한 황병기가 있으며 그후 이영희·원한기·이효분 그리고 여식 김정숙 등이 그 맥을 잇고 있다. 그의 가야금산조는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단모리로 짜여져 있는데 화사하지 않고 담담하며 선비의 지고한 맛을 느끼게 하는 농담이 진하게 녹아있어 들을수록 빠져들게 한다.
■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성금연(成錦鳶)은 1923년 8월 5일 전남 광주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성육남(成六男) 호는 춘사(春史), 피리·해금의 명인으로 민속악계의 큰 족적을 남긴 지영희 명인과는 부부사이이다.
그의 음악수업은 일찌기 당대 가야금 최고의 명인 최막동(최옥산·최옥삼)·안기옥 선생에게 수학후 조명수·박상근에게서도 가야금산조·풍류·양금·병창 등을 배웠다. 또한 정정렬 명창에게서 판소리(춘향가)를 수학하였으며 여기에 김상기 선생에게서 거문고까지 배웠다.
그후 국내외 연주·방송 및 음반취입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1960년대는 한국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교사 그리고 1968년 부터는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 예술대학) 강사로 후진 양성에 남다른 헌신을 하였다. 그해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기능보유자로 지정되기에 이르렀으며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다. 1974년에 미국 하와이로 부군을 따라 이민길에 올라 그곳 해외 현지인과 교포에게도 국악보급 및 연주활동, 후진양성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86년에 잠시 귀국하여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귀국연주회를 가졌으며 출국후 그해 숙환으로 하와이에서 7월 28일 63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의 제자로는 지성자·순자·미자 등 딸과 김명신(정아)·황병주·권혁태 등이 있으며 가야금산조외에 ‘흥’·‘눈물이 진주라면’ 등 자작곡을 다수 남겼다. 그의 가야금산조 가락은 진양조· 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로 짜여있는데 화사하고 경쾌하고 발랄하면서도 또한 애절한 맛 또한 진하게 배어있다. 다른 산조와 달리 중중모리와 자진모리 사이에 굿거리 장단이 있어 더욱 흥취가 있으며 전체적으로 마치 물 흐르듯 윤기가 자르르 넘치고 있다.
■ 장덕화(장고) 반주를 맡은 장덕화는 오늘날 많은 활동과 함께 이분야 최고의 명인으로 손꼽힌다.
특히 경서도소리의 장단은 단연 독보적 위치에 있을만큼 경기음악에는 그의 장고반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음반의 녹음은 그의 생애 첫 번째 산조 반주 녹음 음반이기도 하다. 현재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전수조교로 지정받았으며 한국국악협회 이사 그리고 국립국악원 민속합주단 지도위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각 대학에 출강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 Profile of Kim Myeong-sin (nickname: Jeong-a, Mi-Jin)
 Kim Myeong-sin was born in 1951 in Yecheon, Gyeongsang-bukdo (northern part of Gyeongsang Province of Korea). Her parents were the source of the musical influences which made her to continue to develop her musical skills. She studied the gayageum (가야금 伽倻琴, 12 stringed zither) and its music at Hanguk Gugak Yesul School (current Seoul Gugak Yesul High School, 1966-69) and then continued her studies at Seorabeol Yesul College (current Jung-ang University, 1969-73). During the College she was lucky to study these two particular styles of Gayageum Sanjo (산조散調, lit. scattered melody and a highly virtuoso music within improvisation) with the both master musicians, Seong Geum-ryeon and Kim Yun-deok, who developed their own styles of Gayageum Sanjo. She also learned the Gayageum Byeongchang (가야금 병창竝唱, singing with a gayageum accompaniment by the singer) from Park Gwi-hi as well as Korean dance from Han Yeong-suk. This made her musical experience rich. Her musical talent began with winning a number of important prizes in many competitions including the excellent award on the gayageum part at the 1st 5.16 National Music Competition in 1967; her formal artistic debut sponsored by The Public Information Bureau; the special award at the Student Dance Competition organised by Jung-ang University. She was actively engaged in music-making during the College, including solo gayageum performances. Furthermore, her musical career started to bloom when she joined the Korean Folk Art Company. The Company did regular overseas tours of important performances such as EXPO '70 hosted by Japanese International Export in 1970; at The Munchen Olympic Festival in 1972; a series of tours to the European countries, Southeast Asia, Middle East, African countries, and so on. Her musical development and maturity were also gradually increased with her regular based performances. Unfortunately she had to stop playing music when getting married. She was no longer encouraged to develop further her talent by the social environments and cultural systems. Sadly this attitude towards Korean female artists was typical in the 1970s. This recording is derived from a series of performances which she had made during her early 20s, so that it reveals her passionate and exuberant spirits within that music. In particular, it is remarkable to note that she has clearly interpreted such distinctive styles of the two master pieces of Gayageum Sanjo which she had directly obtained from the composers. She even shows her maturity of dealing with these virtuoso pieces of musics. It is certainly a great loss for the field of Gayageum Sanjo music to have lost her further contribution. There might be a different situation today if she would have continued to carry on her musical career.
■ Kim Yun-deok ryu Gayageum Sanjo Kim Yun-deok (penname, Nokya, 鹿野, lit. deer in the forest, 1918-1978) was born in Jeongeup, Jeollanamdo, southern part of Korea. He learned Gayageum Pungnyu from Jeong Ja-seon, Kim Gwang-seok, Geomungo Pungnyu from Kim Yong-geun, and Gayageum Sanjo from Jeong Nam-hee and Gang Tae-Hong in about 1950. Pungnyu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classical genres performed by the noble on both stringed instruments, the geomungo and gayageum. He also learned the genre of Sanjo on the both instruments from Gang Tae-hong and from Han Gap-deuk respectively. Then he made his own unique version adding his own musical elements such as garak (가락, melody) based on these masters' Sanjo, particularly on the gayageum in the late 1960s. He was retained as Gayageum Sanjo Kineung Boyuja and became the No. 23rd JungyoMuhyeong Munhwajae in 1968. He had taught the gayageum and its music as agsa (악사, professional musician employed by the government) for more than 10 years at GunglipGugakwon since 1953. He was actively engaged in performance, recording, broadcasting, while teaching young people at Hanguk Gugak Yesul School until his death. His musical career was extraordinary performing around the world such overseas as in Japan, Mexico, European countries and North America. Especially performance at the Carnegie Hall with other master musicians, the Ji Yeong-hi and Seong Geum-ryeon couple, as well as Kim So-hi, one of the finest Pansori singers, was of great success and was released immediately their record from the live performance. His Sanjo style was continued to preserve by such his protege as Yi Yeong-hi, Won Han-gi, Yi Hyo-bun and the gayageum master, Hwang Byeong-gi who had learned from him since 1951, as well as his daughter, Jeong-suk. His version of Gayageum Sanjo consists of six parts as in the front of this CD sleeve. Its sound is not colourful, but embodies serenity and elegance of noble character. There is also a striking contrasting effect of nongdam (농담濃淡, “shade and light") in which listeners become embedded.
■ Seong Geum-ryeon ryu Gayageum Sanjo Seong Geum-ryeon (1923-1986) was born in Gwangju, Jeollanamdo, southern part of Korea. Her autonym was Yungnam (六男, lit. six men) and her penname Chunsa (春史, lit. spring history). She was married to Ji Yeong-hi who was one of the master musician, particularly on the piri (bamboo oboe) and haegeum (2 stringed spike fiddle). She learned the gayageum from Choe Mag-dong (also called Choe Ok-san, Ok-sang) who was the master player, and An Gi-ok. She also learned Gayageum Sanjo, Pungnyu (풍류風流 means "cultural act" or does "in a tasteful and enjoyable manner", or "playing a nice and enjoyable life"), yangeum (양금洋琴, dulcimer), Byeongchang, and so on from Jo Myeong-su and Park Sang-geun. She extended to learn Chunhyangga (song of Chunhyang) of Pansori (판소리, narrative song with a drum player) from Jeong Jeong-ryeol, a master singer, as well as the geomungo (거문고, 6 stringed plucked zither) with Kim Sang-gi. She was involved in performing both in abroad and home, while working on broadcasting and recording. She also devoted her time to teaching young people at Hangug Gugak Yesul School in 1960s and at Seorabeol Art College since 1968. Her musical career was highlighted when being retained the Gayageum Sanjo Gineung Boyuja (기능보유자, the holder of the particular style of music) for the 23rd JungyoMuhyeongMunhwajae. Afterwards she emigrated to Hawaii with her husband in 1974, and devoted to playing and teaching music there. She had visited home and performed at the Sanullim Small Theatre in Sinchon shortly before she passed away. Her disciples are Kim Myeong-sin, Hwang Byeong-ju, Kwon Hyeok-tae, and so on, including her own immediate family, daughters, Ji Seong-ja, Sun-ja and Mi-ja. She also composed such pieces as Heung (흥, enjoyment), If a tear were a pearl, and so on. Her version of Gayageum Sanjo comprises seven parts (see on this CD) and its rhythmic arrangement differs from other Sanjo, which Gutgeori jangdan (rhythm and melody based on shaman music) is in between Jungjungmori and Jajinmori. This element adds to its music much more fun, and gives it flowing and bright character in the entire movement. Her style of Sanjo achieves colourful and exuberant, energetic sound as well as sadness.
■ Jang Deok-hwa: janggo Jang Deok-hwa is regarded as the janggu (장구, hour-glass shaped percussion instrument) virtuoso and the leading exponent of jangdan (장단, rhythmic cycle) of Gyeonggi-Seodo Sori (경기서도 소리, vocal music rooted in the Gyeonggi and Seo Provinces in which are situated in the middle of Korean). This recording is his first janggu accompaniment for Sanjo music, so it can be a memorable work for him. He was appointed by Jeonsu Jogyo (전수조교, assistant teacher) for No. 5 Pansori gobeop (판소리 고법, epic song with one person singer accompanied by one drum player, and its method of drumming) which was appointed as JungyoMuhyeongMunhwajae (중요무형문화재,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Asset). He is the committee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the leader of the Folk Music Ensemble attached to GunglipGugakwon (국립국악원, The National Centre for Korean Performing Arts). He also teaches the janggu at many colleges including the School of HanggugYesulJonghap (Korean Complex Arts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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