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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용선생 경기소리판 유작모음**한정판*CD=16000원 *카세트테입2매1조=12000원
 ㆍ 아티스트: 전태용
 ㆍ 음반사 : 예술기획 탑
 ㆍ 음반번호: TOPCD-031
 ㆍ 발매일: 2000. 4. JIGU Seoul, Korea
 ㆍ 녹음: 1965,1966,1971,1973,1976,1986,1987
 ㆍ 디렉터: 양정환 Yang Cheong-whan, 한국고음반연구회
 ㆍ 비고: 표지디자인/ 무송기획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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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CD-031
 
창부타령으로 천하를 진동시킨 전태용 선생 경기소리판 유작모음
A Selection of Kyeonggi Sori performed by the late Cheon Tae-yong
¤ 1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9:10
¤ 2 노래가락, Noregarak (lit. melodies for song) 2:28
¤ 3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lit. song for a male actor) 6:18
¤ 4 노래가락, Noregarak 5:02
¤ 5 뱃노래, Patnore (boat song) 3:54
¤ 6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4:23
¤ 7 경기시나위, Kyeonggi Sinawi [instrumental] (shaman music from Kyeonggi areas) 3:05
¤ 8 노래가락, Noregarak 3:13
¤ 9 청춘가, Cheongchunga 1:56
¤ 10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8:51
¤ 11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3:46
¤ 12 노래가락, Noregarak 3:53
¤ 13 청춘가, Cheongchunga 1:09
¤ 14 사발가, Sabalga (lit. song for toasting a drinking) 1:01
¤ 15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3:27
¤ 16 창부타령, Changbu-taryeong 4:47
¤ 17 경기도살풀이, Kyeonggido Salpuri/(lit. dance to expel a bad spirit) [instrumental] 3:17
¤ 자료제공/ 김점석, 오수복, 한영서, 김운선, 이보형, 전숙희
¤ 해설/ 이보형(문화재전문위원,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최종민(국립창극단 단장,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이자균(무속연구가) 노재명(국악음반기록보존소장, 한국고음반연구회)
■ 창부타령으로 천하를 진동 시킨 전태용 명창
이 보 형 (문화재 전문위원·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전태용 선생이 창부타령을 부르는 것을 처음 듣고 이것은 단순히 항간의 소리꾼이 부르는 민요창이 아니고 전문적인 명창이 부르는 고도의 에술이라고 여겼다. 창부타령을 부르되 판소리와 같이 복잡한 시김새와 부침새로 얽어나가며 소리를 높이 들고 나가기도 하고 깊이 숙이기도 하여 그 변주가 어찌나 절묘한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필자가 전태용 선생이 창부타령을 부르는 것을 직접 들었던 것을 두고두고 행운으로 알고 있다. 1970대 어느날인가 대금 명인 한범수 선생이 당신 생신 잔치로 전태용 선생을 비롯하여 지갑성, 성금연, 김숙자 선생과 같은 국악계의 거장 몇 분을 초대하여 조촐한 잔치를 베풀었었던 일이 있었는데 필자가 말석에 초대되어 전태용 선생의 창부타령을 듣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태용 선생은 무대공연에서 창부타령을 부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마 본디 성품이 과묵하여 스스로를 대중들에게 내놓고 허장성세하는 것을 꺼리는 성품이기 때문이겠지만 본디 전문이 해금 삼현육각이었던고로 창부타령은 취미삼아 부르는 여기로 생각한 때문이었을 것 같다.
전태용 선생이 부르는 창부타령을 듣고 선생이 어떻게 그런 고도의 음악성을 구사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가 경기도 영종도에서 태어나 해금 삼현육각을 전공한 전문적인 음악인이었을 뿐아니라 경기도 일대에서 경기소리 명창뿐 아니라 남도소리 명창과 교류하며 여러 부문의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경륜을 지니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세월이 지나 전태용 선생에 타계하시니 그의 창부타령에 감동하였던 세상 사람들이 그의 학습을 아까워하였고 그 녹음 자료를 구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스스로를 들어내 놓기를 꺼리는 전태용 선생의 성품 때문에 공식 무대공연에서 녹음한 자료가 거의 없어 안타까워들 하였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한국고음반연구회 양정환 선생이 백방으로 전태용 선생의 창부타령 녹음자료를 수집하고 나섰다.
수년간 노력 끝에 전태용 선생의 따님인 전숙희를 비롯하여 생전에 선생의 창부타령을 좋아하던 애호가들에게서 귀한 자료들을 입수하는데 성공하였다. 이것들이 저마다 사석에서 불렀던 것이니 녹음상태도 여의치 않았고 잡음도 끼어들어 아쉽지만 오히려 즉흥성이 강하고 이것이 생동한 공연 현장성이 잘 표출되어 좋다. 같은 대목이 중복되기도 하지만 자료가 원체 귀중하니만큼 될 수 있는한 수집한 자료를 모두 편집하여 수록하였고 겯들여 전태용 선생의 생전에 연주하였던 해금 시나위와 삼현육각 녹음자료도 첨가하였다.
어렵게 수집된 귀한 자료들이 편집되어 전태용 선생의 창부타령 절창을 음반으로 내었으니 선생의 창부타령을 기리던 세상 사람들이 알마나 즐거워들 할꼬? 이를 축하하면서 자료 수집과 음반 편집에 헌신한 양정환 선생의 노고에 감사한다. 생전에 과묵하여 통 말씀이 없으셨던 전태용 선생이 지하에서 이를 아시면 미소를 지으리라.
■ 너무나 큰 아쉬움을 남기고 간 국악의 달인
최 종 민 (국립창극단 단장,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음악가의 가치는 현장에서 연주하는 연주기량이나 음반에 수록된 음악을 통하여 평가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의 음악가들은 늘 음악속에서 살기 때문에 그 음악가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현장에서 연주생활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수준을 짐작 하게 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전태용 선생은 경기무속의 최고 연주가들인 이용우 지갑성 이충선 임선문 정일동 등의 선배들과 어울려 연주생활을 했고 방송국에서는 이충선 장덕화 김한국 황병주 권혁태등과 어울어지며 연주활동을 하였다. 해금을 주로 하긴 하지만 피리잽이가 없으면 피리를 불고 대금잽이가 없으면 대금을 잡기도 하면서 어떤 장르의 음악을 해도 거침없이 자기 몫을 해 내던 음악가였다. 특히 이용우 이충선 등과 경기 시나위를 할 때에는 징을 잡고 멋지게 시나위 징의 매력을 십분 살려주기도 하였다. 정말 전태용 선생은 전천후 음악가였고 민속악의 달인이셨다.
내가 전태용 선생을 만난 것은 방송국에서였다. 민요 백일장의 반주도 하시고 국악의향기에 출연하여서 합주도 하셨다. 또 김숙자씨가 경기도 살풀이 춤을 재현할 때에는 이용우 이충선 정일동 임선문씨와 함께 경기시나위를 연주하셨고, 경기도당굿을 재현할 때에도 이용우 조한춘씨 등과 경기무속음악을 하시곤 하였다. 그래서 경기도당굿이나 경기도살풀이음악을 할 때에는 반드시 전태용 선생이 들어가야 했고 그런 음악을 할 수 있는 음악가중에서는 젊은 세대에 속했었다. 그런 전태용 선생이 나에게 특별한 분으로 부각하게 된 것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선생의 노래를 듣게 되면서 부터였다.
어느해엔가 KBS에서 이해식 프로듀서의 인솔로 남원을 간 적이 있었다. 안비취 서공철 전태용씨 등과 신영희 안행련 강정숙 김성녀 등이 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저녁을 먹은 후 내가 서공철 선생님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있으니까 안비취 선생 말씀이 전태용씨의 창부타령이 대단히 멋이 있으니까 한 번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무렵만 해도 맥주를 꽤 고급술로 여기던 때라 맥주를 몇 병 사오도록 하고 안비취 선생께서 술을 많이 마셔가며 전태용 선생님도 권하고 하여 아주 자연스렵게 술판이 벌어지고 노래를 하면서 놀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전태용 선생의 창부타령이나 노래가락들을 들어 보게 되었다. 전태용 선생은 여러 사람 앞에 썩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시기 때문에 그냥 노래를 하라고 하면 멋적어 하시는 편이었지만 그렇게 안비취 선생이 적극적으로 판을 벌이고 흥을 돋구니까 마음이 확 풀어져서 속에 있던 가락을 마음껏 꾸미며 표현하는데 그 가락이나 사설들이 정말 멋지고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었다. 이날의 분위기는 전태용 선생의 노래로 하여 모두들 술을 더 마시게 되었고 누구보다 안비취 선생이 대취하실 정도로 마시며 재미있게 놀았다.
남원의 이 사건은 나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나는 평소에 우리 음악은 악보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음악가가 누구의 흉내를 내어 연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음악가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음악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음악이 가장 귀한 음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음악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민요의 경우 옛날에는 누구나 자기식으로 부르던 노래인데 요즘은 너무 고착되어 있고 창법까지도 양식화 되어서 음악가들의 개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전태용 선생의 민요는 전혀 달랐다. 같은 노래라도 가사 붙임이나 곡조나 창법이 다른 민요 명창들의 그것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어떤 노래를 불러도 그 독특한 창법과 가사 처리의 미묘함 때문에 “얼씨구”가 절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후에 KBS에서 몇 곡을 녹음했고 그 음악을 내가 진행하던 “흥겨운한마당”에서 방송을 하게 되었는데 그 방송 때문에 나는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방송을 통하여 전태용 선생의 ‘뱃노래’나 ‘창부타령’이나 ‘노랫가락’이 나가자 애청자들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었다. 신청곡이 쇄도하고 그 방송을 녹음해서 배우려는 애청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가장 많이 신청해 듣는 음악의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노래를 들어보면 소리를 기름지게 내는 것도 아니고 무슨 별난 테크닉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전태용 선생답게 자연스럽게 부른 것이다. 애청자들 입장에서 보면 방송을 통해서 노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태용 선생을 만나는 것이다.
정말이지 전태용 선생의 호흡이 그냥 노래가 되고 그의 체취가 노래의 멋이 되는그런 노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노래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노래가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애석한 것은 그럴 때 좀 더 많은 노래를 좋은 조건에서 녹음해 두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전태용이라는 음악가가 천 년 만 년 사실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언제든지 그런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을 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깝게 그런 작업을 하지도 못한 채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아쉽고 원통한 일인가?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음악으로만 살아오신 전태용 선생. 그래서 그는 하는 일마다 음악이 되곤 하던 민속악의 달인이 아닌가? 그런데 그의 음악을 제대로 음반으로 남기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런 안타까운 마음들이 모아져서 각자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음향자료들을 모아 유작집을 낸다하니 우선 반갑고 조금의 위안이라도 받게 된다. 평소에 전태용 선생의 노래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나 창조적인 음악가가 표현하는 한국음악의 멋이 어떤것인지를 알고 싶은 분들께서는 이 음반에 실린 전태용 선생의 음악들을 잘 들어 보시기 바란다.
■ 음반해설
전태용(全泰龍)소리세계 1922.5.16(음)~1991.3.9(음1.23)
이 자 균 (무속연구가)
유성기 음반 시대를 거쳐 씨디로 오면서 수많은 명인 명창들이 명멸하였지만 자기 목소리를 남기고 세상을 마감한 이는 손꼽을 정도이다. 고 전태용 명인은 경기도 영종군 운남면 잔다리에서 전일산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소리바탕을 마련하는데는 타고난 천부적 재능을 지닌 목구성과 여기에 소리선생 김부전 명인(1916~1952)이 있는데 김부전 명인은 경기도 시흥군 군자면 신길리 출생의 무속인으로 수원, 안산, 시흥, 부평, 인천 등지의 도당굿이나 집굿에서 세상을 주름잡는 명무이자 기생도 감히 그 앞에서 소리를 못한 명창으로서 판막음을 한 사람인데 삼 대를 이어온 세습무 집안으로서 세 살먹은 애들도 김부전 하면 죄다 아는 그야말로 기가막힌 사람이었다고 한다. 김부전이 한 번 소리를 시작하면 구경꾼들은 밤을 새웠고 다음날 새벽 첫닭이 울고 두 번째 훼를 칠 때까지 일어날줄을 몰랐을 정도로 놓아주지를 않았다 하는데 지금도 안산이나 시흥지방에 가면 김부전을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천하의 김부전 명인이 1952년 세상을 뜰 때까지 전태용은 바늘가는데 실가듯이 따라다니며 소리를 익혀 일취월장하여 전태용만의 독특한 소리세계를 이룩하였다. 여기에 전태용이라는 다시는 안 나올 명창의 소리를 집대성한 것이 본 음반인데 수집 가능한 자료를 찾아내어 모아 본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전태용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이 모 음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나왔으나 그 뒤로는 구할 길이 없어서 애를 태우던 중에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고 또한 고인이 생전시에 제작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렇지 못하여 송구스럴 따름이다. 전태용의 초기 음향(1965년) 에서부터 중년의 소리 그리고 원숙한 나이인 육십대 까지 두루 모아서 한 것인데 사십대 소리나 육십대 소리나 일호의 털끝 만큼도 어긋남이 없이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과연 명창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특히 경기 민요를 하는 이들이 수없이 있었지만 전태용의 소리 만큼 해 내는 이가 앞으로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디 목구성이 “수리성”에다 국악을 한 집안인 것도 그러하거니와 사설에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소리를 가지고 “던지고 “ “감고” 헤치고” 풀고 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를 못 내는 전태용만이 지닌 별난 재주이다. 한 노래를 가지고 여러 성음으로 “엇부침”을 구사하며 다른 노래를 부르는 것은 웬만한 능수능란한 소리 공력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인데 전태용은 노래가락이나 요즘도 부르는 “청춘가” 또는 “사발가”등을 창부 타령조로 그야말로 아래 위를 더듬어서 부른다는 것은 기가막힌 소리 공력도 있지만 하늘이 내린 목구성을 타고 났다고 볼 수 밖에 없다.또한 이 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습무 굿과 강신무 굿을 할 적에 쓰는 목구성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에 사람들은 소리하면 죄다 똑같은 줄 알지만 사실 이런 데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엇부침과 시김새를 구사하는 이들이 세습무들은 유달리 많이 있어서 예술성이 매우 뛰어난 기예를 가지고 있는 강신무 계열의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보아 이런 빼어난 예능을 밖으로 드러낼 수가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이며 이들은 또한 이런 빼어난 재주를 인정을 아니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소리와 그렇지 아니한 소리는 구별할 수가 있을까?. 예를 들자면 기교를 부릴 적에 적절하게 그리고 내던질 적에 장단을 달아놓고 가든가 “지촉동방 천리도야 바라보기 막연쿠나 은하작교가 꽉 무너졌으니 건너 갈 길이 막연쿠나”(1번, 창부 타령) 하면서 처음부터 상성으로 계속 쳐올렸다가 “성상이 버리시기를 “하는 대목에서와 같이 툭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이런 소리를 과연 세습적으로 국악을 하지 않은 이들은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 음반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사이 사이에 “시김새”를 넣어서 소리를 맛있게 이끌어 주는 재주도 있고 무엇보다도 애원성이 잔뜩 묻어 있는 “궁쩨를 짊어진” 소리가 전 바탕에 깔려 있어서 금방 자고 일어나더라도 김치 된장 밥 같은 결코 물리지 않는 소리가 여기에 담겨 있다. 또한 “판패개” 성음이 가끔씩 튀어 나오는데 이는 전태용이 그런 학습을 배운 탓도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전상현이라는 이한테 그런 소리를 배워서 그런 것이고 이는 당연한 이치이며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 전태용 소리의 진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예술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가 있다. 요새는 소리 목이 조금 있는 이들이 쓸데없이 목을 굴린다거나 생목으로 기교만 배워서 발발성만 내지른다거나 또는 꺽는 대목을 구별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평조로 지르는 경우가 지금도 많은데 전태용의 경우나 세습 국악인들과 비교하면 이런 모습과는 매우 다르고 소리의 멋과 진수는 어찌해야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같은 노랫 가락이라도 창부타령을 불러도 “산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과 비교해서 들으면 확연하게 구별할 수가 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음악성이나 예술성에서 아주 빼어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데 기교를 부릴 적에 적절하게 그리고 내던질 적에 장단을 달아놓고 가든가 “지촉동방 천리도야” (1번, 창부 타령) 하면서 처음부터 상성으로 계속 쳐올렸다가 “성상이 버리시기를” 하는 대목에서와 같이 툭 떨어뜨리는 대목이나(1번) 사이사이에 “시김새”를 넣어서 소리를 맛있게 이끌고 가는 재주도 있고 무엇보다도 애원성이 잔뜩 묻어 있는 “궁쩨를 짊어진”소리가 전 바탕에 깔려 있어서 금방 자고 일어나서 들어도 싫증이 안 나는 소리이다. 또한 “팔을 들어서 누웠으니” (3번, 창부 타령)하는 대목에서는 “팔을” 하고 “데데한(데면데면한)” 성음을 구사하고 있는게 바로 그것이고 “인적이 끊겼으니 차라리 잊을꺼나” 하는 대목에서는 “차라리”하며 풀어 헤치는 대목 역시 그 어느 누구도 흉내를 내지 못한다. 곳곳에 “엇붙임새” 가 들어가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산이”들의 목구성 쓰는 법인데 유달리 전태용의 목구성은 중하성을 쓰면서도 치켜 올리려는 상성이 또한 맛이 있다. “만리장공 하운이 흩어지고 무산십이봉은” (1번 ,창부 타령) 하는 대목에서 이런 목이 나오는데 하성을 대다가 이어서 “빗청”으로 지르는 송곳으로 꿰듯이 내뻗는 목을 듣노라면 오금이 져리고 서슬이 시퍼런 작두 날 같은 느낌이 들며 상성으로 올려도 소리가 “괄리지” 않고 수리성 본디의 맛이 배어나오고 있는데 공력이 없거나 미진한 이들은 이런 대목에서는 “생목”이 나오거나 “엇붙임새”를 못 하는 수가 왕왕 있음을 볼 적에 세상이 그를 버린 것이 통곡할 것이로되 그 마디마디는 백지에 기름 절듯이 “쩔은”한 맺힌 목구성 때로는 속이 옹골차게 찬 씻은 흰 배추 잎 같음이 어찌 범속한 이가 논할 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이 음반에서 전태용의 한 개인의 목소리를 듣는 “자미스러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경기민요를 이렇게도 멋있고 감칠 맛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일 것이고 그리고 언제 어느 장소이건 사설의 내용에 따라서 소리를 감고 던지고 치켜 올리고 내렸뜨렸다 하는 재주를 우리는 이 음반을 통해서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 대체적인 모습이 어느 정도 밝혀졌으며 “되바라지고” 공력이 없는 소리가 작금에 횡행 하는 이즈막에 소리의 진수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소리속을 아직도 “기연가 미연가” 하는 이들한테 한번 들어둠직한 다시는 안 나올 소리임을 자부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인은 경기도 김포군 양촌면 백호리 소재의 정선 전씨 문중산에 잠들어 계시다.-
■ 내가 아는 전태용 명인
취재 대담 정리/노 재 명(국악기록보존연구소 소장·한국고음반연구회원)
전태용 명인의 숨은 발자취를 찾기 위해 그와 교류했던 국악인들의 증언을 들어보았다. 전태용 명인을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과연 그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는지 여기 그 취재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전숙희 명창이 말하는 아버지 전태용,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묵계월·이은주 명창이 말하는 전태용의 경기민속악, 전태용 명인과 절친하게 지냈던 김점석 명인의 증언 내용이 여기 실려있다. 한결같이 그의 뛰어난 예술성과 따뜻한 성품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본 취재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모쪼록 여기 정리된 증언 내용이 많은 분들에게 전태용 명인의 생애와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예전에는 부녀지간에 국악 한다는게 창피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사회 분위기가 그랬고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국악한다는 걸 숨기고 부끄러워 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를 생전에는 그냥 해금, 피리 악사로만 알았지 그 민요 창의 가치를 잘 몰랐다. 이런 소리도 있으니 한 번 해봐라 하고 가르쳐 주시면 나는 무시하고 배우려들지 않았다. 그일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스럽고 가슴이 아프다.그런데 어느날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아버지의 <뱃노래>를 듣고서 ‘아, 저렇게 하는 소리도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나는 뒤늦게 아버지의 녹음을 들으면서 방창을 해보는데 구비구비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하고 도저히 흉내내기가 어려운 신비로운 부분들이 많다. 내가 느끼기에는 피리 연주법과 그 성음을 따서 부르는 ‘피리 성음조’ 창법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버지께서는 <창부타령>과 <노래가락>을 즐겨 부르셨는데 장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소리를 하셨다. 그렇기에 무대에서 흔히 불리는 판에 박힌 경기민요에 비해 자연미가 있다. 아버지께서는 어려서 집 뒷동산의 감나무에 기대어 노래 부르길 즐겨 하셨다고 하는데 집안 어른들의 음악을 어깨 넘어로 듣고 그걸 흥얼거렸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민요의 경우엔 무속세계에서 자득하신 셈이며 해금과 피리의 경우 육촌형인 전상현 명인한테 배우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분이었고 누구와 다투시는 걸 보지 못했다. 노소동락 하셨고 정이 무척 많으셨다. 돈도 그날 벌면 그날 다 써버리셨다.
한이 너무 많으셨기에 그걸 그날그날 풀고 욕심없이 사셨다. 그리고 자기 색깔을 잊지 말고 자신의 성품대로 순색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본 음반의 발매를 계기로 앞으로 ‘전태용 CD 출반기념회’와 ‘전태용제 경기민요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음반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애쓰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1998년 7월 9일 전태용 명인의 딸, 전숙희 명창 증언)
■ 전태용 명인은 <창부타령>, <뱃노래>와 같은 민요를 즐겨 불렀다. 그분은 서울 외곽지역의 창법으로 매우 특이하게 불렀는데 나 묵계월이나 안비취 씨, 이은주 씨가 부르는 방식과 다르지만 거부감이 들기 보다는 그분 나름의 예술성이 잘 발휘되어 독특한 매력이 있고 듣기가 아주 좋았다.
1960∼80년대 전태용 씨는 지갑성, 지영희, 김광식, 이충선, 성금연 씨 등과 함께 KBS방송국 전속 국악단 등 민속음악 악사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당시 전태용 씨는 해금과 피리 연주를 맡았는데 내가 음반 취입이나 공연, 방송에서 민요를 할 때 반주악사로 함께 많이 활동하였다. 그 반주 실력은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소리하는 사람이 부르기 좋게 잘 반주해 주었다.(1998년 8월 11일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묵계월 명창 증언)
■ 전태용 씨는 일류 해금 악사였다. 나는 그분이 생전에 민요 부르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분은 1960년대부터 작고하기 전까지 내가 음반 취입, 공연, 방송에서 민요를 할 때 반주악사로 함께 많이 활동하였다. 요즘 그분의 능숙한 해금 반주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소리하기가 매끄럽고 편안하게끔 반주를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대명인들이 이제 하나, 둘 다 떠나고 없어 너무도 아쉽고 허전하다. 뒤늦게나마 이렇게 그분이 남긴 음악들이 한데 모아져서 음반화 된다니 기쁘게 생각한다.(1998년 8월 11일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이은주 명창 증언)
■ 내가 해금과 피리의 대가 전태용 명인을 처음 만난 것은 내 나이 23세 때였다. 그로부터 5~6년 동안 음악 활동을 함께 하면서도 나는 그분이 민요를 그렇게 잘 부른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어느날 지연화 씨가 굿판 뒤풀이 때 해금을 연주하고 있던 전태용 명인에게 소리 좀 해보라고 권했고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들었는데 처음 듣는 그 소리는 정말 기가 막혔다. 그때 들은 민요는 바로 그분의 특기인 <창부타령>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그때까지 독특하다고만 생각했던 지연화, 이소향 씨의 <창부타령> 스타일의 원조가 바로 전태용 명인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 뒤로 1960년대 후반부터 20여년 동안 나는 전태용 명인의 민요를 시간 나는대로 녹음을 했다. 그 소리에 애착을 가지고 녹음한 것은 우선 듣기에 너무 좋고 또 내가 공부삼아, 그리고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 한 것인데 이렇게 음반화까지 되니 기쁘고 보람있게 생각한다.
전태용 명인의 창법은 서울에서 보편적으로 불리는 소리에 비해 엇박, 변조가 너무나도 색다른데 그런 소리를 ‘드렁제’, ‘인천제’라 한다. 전태용 명인의 형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형은 전태용 명인 보다 더 소리를 잘했다. 그 분들의 가족은 모두 민요를 다 그런 식으로 불렀고 그래서 전태용 명인도 자연스레 그런 창법을 터득했던 것이다. 전태용 명인은 호방하고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무언가에 꽁하거나 집착하는 법이 없고 뒷심이 없었다.(1998년 7월 4일 국악인 김점석 명인 증언)

■ 곡목 해설
1. 창부타령(9:10)
녹음 일시: 1971년 11월 8일 /소리: 전태용, 장고 지갑성. / 녹음자료 제공: 한영서.
이 녹음은 장고의 명인 지갑성(1911~1980,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 거모리 태생)의 회갑을 맞아서 명인 명창들이 모였을 적에 녹음을 한 것이다. 여느 때와는 달리 마음놓고 소리를 박은 것인데 여기에서 소리도 좋지만 장고를 치는 지갑성의 추임새도 멋이 있으려니와 장고 반주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빼어난 가락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의 연주자들은 무조건 합장단을 치고 이어서 채편을 치는데 비해서 여기에서는 소리를 살리기 위해서 왼손으로 궁편을 짚고 오른 손으로 즉 채편보다는 “변죽”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소리의 “한 배”에서 감고 던질 적에 박자를 잘못 짚으면 “가락이 삐는” 수가 있는데 오랫 동안 전태용과 호흡을 한 탓에 장고 가락이 든든하다. 또한 쓸데없이 채편을 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지갑성은 대풍류와 경기도의 무속 음악에도 기가막힌 재주를 지니고 있었으며 평택 태생 오강산(1876~1952)한테 배웠고 시흥군 군자면 초지리 태생인 이치문(1871~1939)한테서도 배웠다.
2. 노래가락 (2:28)
녹음 일시 : 1965년 7월. / 소리: 전태용. 장고 :전태용. 대금, 해금: 김점석 / 녹음 자료 제공: 김점석
이 소리가 처음 카세트에 녹음을 한 전태용의 소리이며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다. 이 당시만 하여도 나이가 사십대라서 든든한 목구성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나 노랫 가락을 “창부 타령”조로 바꿔 부르는 이가 지금이나 그때나 없었는데 전태용은 원체 목구성이 좋고 음악성이 빼어나 그야말로 “궁쩨” - 이들은 “한”이라고 사뭇 일컫는다. - 를 짊어지고서 화평하게 불러야 할 노랫 가락을 한이 담뿍 서린 엇부침을 구사하여 부르고 있다.
3. 창부타령(6:18)
녹음 일시: 1965년 7월 / 소리, 장고: 전태용. 대금 해금: 김점석 / 녹음 자료 제공: 김점석.
2번 노랫 가락과 같이 사십대 소리인데 목이 제대로 나와서 상성을 짤 처리하였다. 김부전이 이런 방식으로 소리를 하였다한다
4. 노래가락 (5:02)
녹음 일시: 1986년 11월/ 소리: 전태용. 장고: 장덕화. 대금: 이생강. 피리: 김찬섭. 해금: 김한국. / 가야금: 정달영. / 녹음자료 제공: 전숙희 (KBS 소장)
전숙희가 민요집을 출반할 적에 마지막 부분에 들어 있는 것인데 공식적으로는 세상에 처음 선보인 소리이다. 이 민요에서 비로서 전태용의 소리가 어느 정도로 밝혀졌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경기 민요의 고정 관념을 뒤집어 놓은 계기가 되었고 이렇게 멋들어지게 소리를 할 수가있구나 하고 소리 좋아 하는 이들을 감탄하게 한 소리이다. 실제로 성음이 매우 높으며 부르기가 썩 어려운 소리이다.
5.뱃노래 (3:55)
녹음 일시: 1986년 11월 / 소리: 전태용. 장고: 장덕화. 대금: 이생강. 피리: 김찬섭. 해금: 김한국 / 가야금: 정달영. / 녹음자료 제공: 전숙희 (KBS 소장)
4번과 음반 서지 사항이 같다.
6. 창부타령(4:30)
녹음 일시: 1986년 11월 / 소리: 전태용. 장고: 장덕화. 대금: 이생강. 피리: 김찬섭. 해금: 김한국 / 가야금: 정달영. / 녹음자료 제공: 전숙희 (KBS 소장)
4번과 음반 서지 사항이 같다.
가장 대표적인 창부타령에서 전태용의 목구성이 나오는데 “이목에 매양 있고 ~”에서처럼 툭 소리를 던지는가 하면 “만리 장공 하운이 흩어지고" 또는 “하야 귀귀 진터를 보고 에서 위로 치켜 올리다가 위에서처럼 밑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그 목구성은 바로 전태용의 소리 특징이다.
7. 경기시나위
녹음일시 : 1987년 5월 / 징;전태용, 피리: 조한춘(1919-1995), 대금: 김한국, 장고: 이영수 녹음 자료 제공: 이보형..
경기도의 세습무들이 도당굿이나 집에서 굿을 할 적에 모든 무의식에서 첫번째로 연주하는 것이 바로 “시나위” 음악이다. 시나위는 제 멋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도 일정한 틀이 있으며 앉아서 청배하는 이들은 앉은말이라고 한다. 남자 선학습꾼과 이것이 끝나면 서서 소리도 하고 춤도 추는 무녀의 소리에 맞추어서 시나위를 연주하는데 이 녹음에는 김포,통진의 시나위가 섞여 있다. 바로 조한춘이 김포 출신이기 때문이다.
8. 노래가락(3:13)
녹음 일시: 1965년 7월 / 소리, 장고: 전태용. 대금, 해금: 김점석 / 녹음 자료 제공: 김점석.
2번과 음반 서지 사항이 같다
9. 청춘가(1:56)
녹음 일시 1965년 7월. / 소리, 장고: 전태용. 대금, 해금: 김점석 / 녹음 자료 제공: 김점석.
현재 부르고 있는 가사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대목은 신민요에 가까운 것이어서 조금 다르며 요즘 부르고 있는 목구성과는 전혀 다르게 부르고 있다.
10. 창부타령(8:51)
녹음 일시: 1965년 7월. / 소리, 장고: 전태용. 대금, 단소: 김점석 / 녹음 자료 제공: 김점석.
3번과 음반 서지 사항이 같다.
11.창부 타령 (3:45)
녹음 일시: 1966년 8월 / 소리: 전태용. 해금: 강학수. 피리: 이윤성 / 녹음자료 제공 / 한영서
12. 노래가락
녹음 일시: 1973년. / 소리: 전태용. 장고: 지갑성. 피리: 이윤성. 해금: 김한국. 가야금:정달영. 대금:김점석 / 녹음자료 제공: 김점석.
지갑성: 사회자의 말 - 오늘 일년에 한 번씩 지나가는 생일 기념일이 돼서 여러 친목적인 수상수하 여러분들이 모여서 한 잔씩 잡수시고 노는 가운데 저 인천에 사는 전태용이라는 분이 여기 오늘 여기를 셨는데 목소리가 하도 유명하셔서 기념으로 음악과 음악 반주에 어울러서 - 사이: 노랫 가락을 하라는데: 전태용의 말 - 예서 한마디 기념으로 예서 증정하는 겁니다. 그런줄 아시고 조용히 점 들어 주셨으면 감사하겄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이: 이거 목이 나올라는지 모르겠네: 전태용의 말 - 12,13,14, 15번 녹음은 같은 장소에 한 것인데 자료 제공이자 녹음을 한 김점석씨가 본인 생일에 선배 동료, 명인 명창들을 초청해서 주연이 끝나고서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소리를 박은 것이다. 삼현육각에 맞추어서 구성진 목구성으로 감고 던지는 소리가 일품이며 반주 음악 역시 빼어나다. 중간에 “오동동 달이 밝은데”하며 부르는 이는 대금 명인 김광식의 조카 김한국이다.
13. 청춘가
녹음 일시: 1973년. / 소리: 전태용. 장고: 지갑성. 피리: 이윤성. 해금:김한국. 가야금:정달영. 대금:김점석 / 녹음자료 제공: 김점석.
12번과 음반서지사항은 같다.
14. 사발가
녹음 일시: 1973년. / 소리: 전태용. 장고: 지갑성. 피리: 이윤성. 해금:김한국. 가야금:정달영. 대금:김점석 / 녹음자료 제공: 김점석.
12번과 음반서지사항은 같다.
15. 창부타령
녹음 일시: 1973년. / 소리: 전태용. 장고: 지갑성. 피리: 이윤성. 해금:김한국. 가야금:정달영. 대금:김점석 / 녹음자료 제공: 김점석.
12번과 음반서지사항은 같다.
16. 창부타령(4:50)
녹음 일시: 1976년. /소리: 전태용. 장고: 지갑성 / 녹음 자료 제공: 오수복.
세습무들이 “진적맞이”를 “관대 어정”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정업의 제수 이정자씨가 진적맞이를 할 때에 명인 명창을 초청해서 술 한잔 마시고 흐드러지게 놀 적에 소리를 한 것이다.
17 경기도살풀이中 (3:15)
녹음일시: 1988년 9월 / 징: 전태용, 피리: 방인근, 대금: 김한국, 쇠: 김숙자, 장고; 정일동 자료제공 : 김운선
이 곡은 시나위를 연주하는 것을 장단 이름으로 말할 적에 붙인 이름이다. 다른 이름은 “섭채”라는 이름도 쓰인다. 징은 홑징과 겹징이 있는데 겹징이 주로 쓰이며 사설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매 박자 한 점씩 친다. 현재 무대 공연시에 하는 “도살풀이”는 정통적으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며 비슷하게 흉내만 낼 뿐이며 가락이 많이 벗어나 있다. 한가지 유의할 점은 태평무, 진쇠무도 경기도 무속에 쓰이는 음악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반주 음악에 춤사위를 얹어서 하는 것이고 또한 무속 춤사위는 현재 태평무나 기타 여러 춤사위 하고는 전혀 다르다.
「진쇠춤」 속설에 아황 공주를 기리기 위해서 궁궐에서 춤 반주로 쓰였다고는 하지만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사정을 감안한다면 견강 부회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다. 경기도 도당굿에서 “군웅굿”을 할 적에 선학습꾼과 무녀가 군웅상을 마주보며 서서 춤을 출 적에 반주하는 음악이다. 그러나 현재 진쇠춤 장단은 많이 어긋나 있다. 또한 뒷 부분에 나오는 “덩덩궁이”는 경기도의 가락이 아니며 악기 편성 역시 정통이 아니다.
사설 채록
정리/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일러 두기】
*사설 가운데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곡명으로 분류 통합하여 다음과 같이 표기하였다.
*한자는 ( )로 넣었으며 구구절절 각주를 달아야 되나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서 생략하였으며 표준어 표기 및 다른 사설도 역시 ( )로 처리 하였다.
■ 노래가락
꿈아 무정한 꿈아
오시던 님 보내는 꿈아
오신 님 보내지 말고 잠든 나를 깨워주지
일후에 님이 오거던 날 깨울 걸
세상에 독허고 모진 짐생은
거미 밖에 또 있는가
제 발로 제살갗을 꺼낼 거면 날 인줄 집 짓고
석양에 걸린 나비는 제 양식 삼어
저 달은 떠서 대장이 되구요
견우주성(견우직녀) 후군이로구나
동자야 너는 바삐 나가서 향군(行軍) 젓대(취타吹打)를 갖추오라.
저 건너가 저 해가 떳다 지는 데로 향군 결단을 하러 갈까
충신은 만조종이요
효자 열녀 가가재(家家在)라
화형제낙처자(和兄弟樂妻子) 붕우유신(朋友有信) 하오리라
우리도 성주 모시고 태평성대를 누리리라
공자님 심으신 낭게(나무)
안연 증자로 물을 주어
자사로 벋은 가지 맹자로 꽃이 피워서라
아마도 그 꽃 이름은 천추만세의 무궁환가
나비야 청산을 가자
봄 나비야 어서 가자
가다가 저물면은 꽃에서라도 자고 가야지
꽃에서 푸대접하거던 잎에서라도 자고 가자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 허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허니 쉬여 간들 어떠하리
세상에 약이 많구요 드는 비수 많건만은
임을 잊을 약이 없구요
정 끊어 질 수도 안 건만은
널과 나 못 살지라도
어느 누구에 하소연 할까
■ 창부타령
아~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지척 동방 천리도야 바라보기 막연쿠나
은하 작교가 꽉 무너졌으니 건나 갈 길이 막연쿠나
인적이 끊쳤으니 차라리 잊을까나 아름다운 자태 거동 이목에 매양있고
잊으리라 맹세해도 그래도 못잊어 걱정이라
눈 감아서 보여진다면 소경이라도 되어질거냐(지)
일후에 남이 되고 보면 후회 막급이 되져 할 거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아~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공도라니 백발이로구나
면치 못할 건 죽엄일세
천황 지황 인황 실농 황제는 복희씨
말 잘하는 소진 장의는 육국 지황(제왕)을 다 달랬으되
염라대왕을 못 달래어 한번 죽엄을 못 면하고
그러한 영웅들은 죽은 사정이라도 잊건만은
초로 같은 우리 인생 아차 한 번 죽어지면 다시 오기가 어려워라(울거냐)
일후에 또다시 만나 인연인 것이 아니면 원수였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만리장공 은하(는) 흩어지고 무산십이지근(십이봉은 )월색도 유정터라
님이라면 다 다정하며 이별이라고 다 그런거(슬프냐)
이별마자(말자) 지은 맹서(를) 태산 같이도 믿었더니
태산이 허맹이 무너질줄 어느 가인이 알겄느냐
얼씨구 절씨구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아~~ 서산에 해 기울고 황혼이 짙었는데
안 오는 님 기다리며 마음을 조일적에
동산에 달이 돋아 왼(온) 천하를 비쳐있고
외기러기 홀로 떠서 짝을 불러 슬피울제
원망스런 우리 님을 한 없이 기다릴 제
일경 이경 삼사 오경 어느덧이 새벽이라
추야장 긴 긴 밤을 전전 불매 잠 못들제
상사일념 애타는 줄 그대는 아시는가
둘 데 없는 이내 심사를 어디다가 붙여 볼꺼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아~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지척 동방 천리도야 바라보기가 막연쿠나
은하 작교가 끊겼으니 건너 갈 길이 막연쿠나
인적이 끊겼으니 차라리 잊을 꺼냐
아름다운 자태 거동 이목에 매양 있고
잊으리라 맹세해도 그래도 못잊어 걱정이라
눈 감었어도 보여진다면 소경이라도 되어질 꺼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만리장공(萬里長空) 하운(夏雲)이 흩어지고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은 월색(月色)도 유정(有情)터라
님이라면 다 다정하며 이별이라고 다 슬프냐
이별 마자( 말자) 지은 맹세는 태산 같이 믿었더니
태산이 허맹이 무너질 줄 어느 가인이 알어줄 거냐(얻느냐)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음을 운다
무슨 새가 울랴마는 적벽화전이 비운이라
하야구구(何也歸歸) 진터(塵)를 보고 설리(서러웁게) 통곡허는 모양
사람에 인정 치고는 차마 어찌 볼 수가 있으랴
얼씨구 절씨구 절사자(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백구야 백구 백구 백구로구나
백구야 나질마라 너 잡을 내 안 간다(아니다)
성상이 버리시매 너를 쫓아 여기 왔네
강상(江山)에 터를 닦고 구목위소(九木爲巢)를 하여두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들어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 살이가 요만허면 넉넉할거냐
일촌 간장 맺은 설움 부모님 생각 뿐이로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일촌 간장 맺은 서러움
부모님 생각 뿐이로구나
죽장망혜 단표자로 천리 강산을 들어가
폭포도 장히 좋아 뫼 산이 여기로고(구나)
(죽장망혜 단표자로 천리 강산을 들어가니
폭포도 장히 좋커니 예 산 경치가 여기로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사랑 사랑 사랑하길래 사랑이란 것이 그 무엇이냐
보일 듯이 안 보일듯 잡힐 듯 허고 놓쳐져
저 혼자 잊혀진 중에 그것이 사랑에 근본이거니
이제는 남이 되고 보면 후회 막급이 되져 헐 거냐
얼씨구 절씨구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한송이 떨어진 꽃은 낙화가 진다고 서러워 말어라
한 번 쯤 피었다 떨어질 줄은
너도 번연이 알겄냐만
모진 손으로 꺾어다가
시들기 전에 내버리니 버림도 쓰라리거던
무심코 밟고 가니 건들 아니가 슬플소냐
숙명적인 운명이라면 너무 아파서 못 살겄구나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가시네 가겠구나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임을 따라서 나는 간다
천리라도 따러를 가고 만리라도 쫓아 가
임을 보낸 이 세상을 누구를 믿고서 사는가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 뱃노래
부딪치는 파도 소래(소리) 잠을 깨우니
들려 오는 노(櫓) 소래 처량도 하구나
어기어차 어야듸야 어기여차 뱃놀이 갈 꺼나
창해만리 먼 먼 바닷가에서
외로운 등불만 깜박거린다
어기여차 어야듸야 어기여차 뱃놀이 갈 꺼나
낙조청강(落照淸江)에 배를 띄우고
술렁 술렁 꺼져어가 간다 달맞이 갈 꺼냐
어기듸야차 어야듸야 어기여차 뱃놀이 갈 꺼나
어야 듸야라 어야듸야 어기여차 뱃놀이 갈 꺼나
소정(小艇)내에 북을 싣고 창가에 조을 제(졸 적에)
어디서 수성어적(水聲漁笛)이 나를 깨운다
어기듸여차 어야듸야 어기어차 뱃놀이 갈 꺼나
망망한 창해도(滄海濤)중에 북을 울리며 원포귀범(遠浦歸帆)으로 돌아 올거냐
어기듸여차 어기듸여 어기여차 뱃놀이 갈 꺼나
갈매기로 벗을 삼어 싸워만 가노라
어기듸여차 어기듸여 어기여차 뱃놀이 갈 꺼나
■ 청춘가
아깝다 내 청춘아
네 원망 뿐이로구나
허무 맹랑이
시들어졌구나
산 속에 자규가
무심히 울어도
처량한 회포가
얼씨구 자연히 나누나
요럴 줄 알았더라면
애당초 말리지
공연히 정 주었다
얼씨구나 내일이 낭패로구나
■ 사발가
에야 어여라 어여라 난다
듸여라 허송을 말어라
슬아 슬아 찬 이슬아 찬 이슬 오기만 기다려
오늘 같이 춘향이는 임 오기만 기다린다
에여라 어야 어여라 난다 듸여라 허송 세월을 말어라
■ a Cheon Tae-yong as an extraordinary talented singer
Yi Po-Hyeong(Korean Musicologist)
It was at the private gathering to celebrate the birthday of Han Peom-su, the late taegeum master, in Namweon (southern part of Korea) in the 1970s, when I first heard of Cheon Tae-yong singing the Changbu-taryeong, which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Kyeonggi Sori or Minyo (경기소리 / 민요, sound / folk song / music of Kyeonggi area, middle part of Korea) and originally derived from a shaman music of the areas. There were other folk virtuosi and master singers were also present at the party. Cheon was almost forced to sing a song, particularly the melody of Changbu-taryeong, by another female master singer, An Bee-chwi, but he was not willing to accept her request because he was modest and reserved. She had some ideas to make him to sing by providing the situation with a relaxed and informal mood. She offered some drinks to him and then to herself including the guests. At last he sang the song and the listeners were deeply moved by his songs.
Cheon was largely known as the instrumental virtuoso, specialised in the haegeum (two string instrument with a bow) and SamhyeonYukgak (삼현육각, 三弦六角, lit. ensemble for the accompaniment of dance consisting of six instruments - 2 hyang-piri, 1 taegeum, 1 haegeum, 1 changgu and 1 drum) rather than a singer. I have never heard of such unique version of it: His singing skills were highly artistic like the musicianship of Pansori singers. His technique and style concerning the Changbu-taryeong were far beyond the amateur levels which he recreated the song with the dramatic expressions as shown in techniques of Pansori singing, but importantly still possessing the essence of the Changbu-taryeong as a folk song. It was a great opportunity for me that I could hear such rare versions of the repertory. It is certain that his unique style of varying the song has been influenced by his early musical environments where he experienced listening to lots of Kyeonggi Sori and Kut (shaman ritual) of his birthplace, Yeongjeongdo of Kyeonggi Province, and where his family was involved in performing Kut hereditarily. He also experienced the Namdo (southern part of Korea) Sori which he continuously made friendships with lots of fine singers from that area. Of course he never appeared with the Changbu-taryeong in public.
It was Yang Cheong-whan, a member of Korean Archive Society and producer of this CD, who started to collect all the versions of Cheon Tae-yong s Changbu-taryeong from various scattered sources, mostly recorded at the private functions and preserved by some acquaintances and music lovers who were particularly interested in the repertory. Yang decided to release a selection of Cheon′s repertoire including that song. I would like to congratulate for Yang s great efforts and for releasing such a valuable CD. I hope all the music lovers and audience will enjoy listening to this CD.
■ The Artistic world of Cheon Tae-yong (1922 - 1991)
Yi Cha-Kyun (Researcher of Kut)
Only a few Korean traditional musicians have left their performances on record, though a number of master musicians and singers did take advantage of recording industry in the 20th century. Born Yongjong-gun, Kyonggi Province, he was the third son of Chon Il-Son Behind Cheon′s musical development, there was a well known Sori teacher called Kim Pu-jeon (1916-1952). Born in the three generations of the hereditary shaman family in the Kyeonggi Province, Kim was a shaman artist who performed Todang-kut and Chip-kut (private kut performing in a house) around the Kyeonggi areas such as Suweon Ansan Siheu ng, Pupy'eong and Incheon. She was not only the shaman performer but also a fine singer whose musical skill was inherited by her family. The following episode glves us how she was a good singer: when she started singing, listeners were so immersed in her singing that she was encouraged to sing until the dawn. She became a legendary figure as an exceptional singer in the areas of Ansan and Siheung, even known to the children. Cheon continued to learn his teacher′s all the techniques and styles in both repertoire and its creative process until Kim′s death.
This CD is a collage of the kernel repertoire of Kyeonggi Minyo (folk songs rooted in the areas of Kyeonggi Province) sung by the late Cheon Tae-yong, who, although little recognised, was one of the Korea s finest singers. It was difficult to collect his performances onto CD, because they often took place in informal contexts, though he had already released his first record in the mid-1980s. An then it was only possible to do so with the help of various music-lovers who had listened to and recorded his songs. This CD contains some essential songs taken from a repertoire which spans his career from his early performances in 1965 to those he made in his later years.
Its aim is to inform the listeners of Cheon as an exponent of Kyeonggi Sori: for instance, such representative song as Changbu-taryeong is put seven variations so that listeners can compare one version to another. It is no doubt in this CD that his almost perfect renditions are reminiscent of a master singer, and as far as the Kyeonggi Minyo is concerned, no singer can sing like him. For instance, as well as his hereditary musical family background, he was born with a voice which can be described as a metaphor of Mokguseong (목구성, lit. vocal technique) helps Suriseong (수리성, lit. subtle expression in voice) : he displayed his own unique interpretation based on the aesthetics of producing a variety sound in the Korean musical forms of Teonjigo (던지고, throwing), Kamgo (감고, wounding/tensing), Hechigo (헤치고, pushing) and P′ulgo (풀고, releasing) within one mouth movement regardless of the length of the text of a song.
He varies songs by using a variety of SeongEum (성음 聲音, lit. feeling in a sound) employing eutbuchim (엇부침, lit. a kind of pushing & pulling technique) . Especially in such repertoire of Noretgarak or Changbu-taryeong as Cheongchunga or Sabalga , which are still popular today, he employs a wide range of vocal technique. This repertoire reveals his excellent vocal power as well as inherent talent. In order to understand his vocal sound, it is necessary to distinguish shamans Mokguseong in their ritual performances from Seseupmu (세습무 世襲巫, hereditary shaman) and Kangsinmu (강신무 降神巫, spiritual shaman) . In the case of Seseupmu, the shaman uses the subtle artistic technique of Eotbuchim and Sigimsae (시김새, referring to process of composing a song or music within a given melody by putting adequate decorations and a wide range of ornamentation frequently used in Korean traditional music). In contrast, in Kangsinmu, the shamans are not able to perform the Kut with such artistic ability as in the former or rarely display outwardly such highly musical quality. For instance, the following phrases (in No. 1 on this CD) clearly demonstrate the different musical skills within a given Changdan (장단 長短, rhythmic cycle) between the Seseupmu and learned shamans, which are ChiChokDongBang CheonIiDoYa PaLaBoGi MagYeonKuNaEunHaJakGyoGa Kkawk MuNeoJeotUNi KeonOKal KiLi MakYeonKuNa. (transcribed phonetically some of the text of No. 11 Changbu-taryeong). In this section, the singer begins to raise his voice from the initial phrase continuously in a high pitch, and then drops it down in the phrase of SeongSangI PeoRiSiGiLeul. . This skillful use of contrasting the tone colour can be acquired only by someone with a high degree of hereditary musical background. Furthermore, singers are required to put Sigimsae between the phrases which has the effect of making the song stylish with subtle nuances of embedded sadness of the Kungzzeleul Chilmeojin (궁쩨를 짊어진) tone that is a typical character of the regional style of Kyeonggi music. Cheon Tae-yong must have learned Panpaegae (판패개) Seong′eum from Cheon Sang-hyeong, who was another master singer, and this influence breaks out occasionally in the song. Such subtle technique and feeling is the core of his artistic musicianship (compare No. 4 to No. 1 on this CD) and his interpretations are very different from other singers. His unique artistic skills are demonstrated as follows: in seven versions (Nos. 1, 3, 6, 10, 11 and 16) of Changbu-taryeong, No. 3 he uses SeongEum differently; in the phrase of Paleul TeulEoSeoNuWeotSeuNi, the underlined word is used as Tedehan SeongEum technique; in InJeogI GgeunGyeotEuNi ChaRaRi IjeulGgeoNa the underlined one with PuleoHecheeneun Daemok (풀어헤치는 대목, lit. sections using by the technique of unravelling and pushing ). The technique of Eotbuchimsae is typically used in Mokguseong in the phrase SanI in the middle and lower registers, and at the same time CheeKyeoOlLiDa (치켜올리다, lit. rising a pitch high) in using the lower register ManLiJangGong HaUnI HeutEoJiGo MuSanSibIBongeun (No. 11 on this CD) and then in the sudden sharp outburst of sound in the high register which is very shrill to our ear.
Above all, this CD shows how folk songs can be sung with subtle contrasts across the entire register of the vocal cord. Rest in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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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The Changbu-taryeong of nos. 1, 3, 6, 10, 11, 15 and 16 are sung in different times and different places by the singer (see below the date of recording).
Sources for the songs: Kim Cheom-seok, O Su-bok, Han Yeong-seo, Kim Wun-seon, Yi Po-hy ng and Cheon Suk-hee
Sleeve notes: Yi Po-Hyeong (a member of Committee of Cultural Asset, Director of Korean Archive Society), Choi Jong-min (Director of Kunglip Changgeugdan (Korean Folk Opera Company), Yi Cha-gyun (Researcher on Shaman music) and Noh Chae-myeong (Director of Archive for Recording and Document of Korean Traditional Music)
Date of recording: 1965, 1966, 1971, 1976, 1987
Director: Yang Cheong-whan
Production: Jigu Eumban, April 2000,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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