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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오한수의 국악세계    [다음] 박덕화의 국악세계

김화선의 국악세계
 ㆍ 아티스트: 김화선
 ㆍ 음반사 : 정창관 국악녹음집
 ㆍ 음반번호: CD-ckjcd012
 ㆍ 발매일: 2009.10.31
 ㆍ 녹음: 2009.9.16.유니버살 스튜디오
 ㆍ 디렉터: 마스터링 및 편집: 양정환(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예술기획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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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관 국악녹음집(12)  
C K Jung’s Korean Traditional Music Recording Series (12)
김화선의 국악세계
Korean Traditional Music World of Kim Hwa-Sun

- 단가 · 최막동제 판소리 -
Danga · Pansori in Choi Mak-Dong Style
소리: 김화선, 북: 김수미 · 황금덕
Singer: Kim Hwa-Sun, Drum:Kim Soo-Mi · Hwang Keum-Duk
 
1. 단가 - 호남가(함평천지) (Danga, Honamga(Hampyungchunji)) 5:05
 판소리 - 최막동제 춘향가 (Pansori, Scenes from Chunhyangga in Choi Mak-Dong Style)
2. 이도령이 이별차로 춘향집 가는 대목 11:50
3. 이별 말에 춘향과 춘향모친 실성발광하는 대목 13:39
4.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하는 대목 5:30
5. 단가 - 사철가(이산 저산) (Danga, Sacheolga(Isan jeosan)) 4:16
 판소리 - 최막동제 심청가
    (Pansori, Scenes from Simcheongga in Choi Mak-Dong Style)
6. 심청이 밥 빌러 나가는 대목 8:23
7. 심청이 시비따라 가는 대목 4:19
8. 심봉사 물에 빠지는 대목 9:12
9. 심봉사 자탄하는 대목 8:33
총 녹음시간(Total Time) 70:47
· 소리: 김화선(여막), 북: 김수미(판소리) · 황금덕(단가)
○기획·제작: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회장 정창관(2009전통예술. 공예분야경연대회 평가위원회 위원장,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서초국악포럼 좌장) (010-2023-4390)
* 이 음반의 제작비 일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입니다. 지원에 감사합니다.
모든 국악음반의 자세한 내용은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회장이 운영하는 비영리사이트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gugakcd.kr)를 참조하시고, 전자책 국악음반 길라잡이 “정창관의 국악이 보인다” (www.gugakebook.com)도 방문해주세요.
김화선(여막) 명창의 단가와 판소리 최막동제 춘향가, 심청가
이 보 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국악아카이브연구회 정창관 회장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일련의 국악음반은 학술적으로 가치가 많지만 한편 재미있는 점도 있다. 왜냐하면 숨어 사는 명인명창들을 발굴하여 그 음악을 담아서 음반으로 담아 기록으로 남기어 후세에 연구자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는 이미 작고하거나 노쇠하여 연주가 불가능한 명인명창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 일련의 음악이 지니는 의미는 크다.
이번에는 정창관 선생이 낸 음반 시리즈에는 김화선(여막) 명창의 단가와  춘향가 및 심청가 일부가 담기었다. 이번 음반도 정창관 선생이 전남 함평에 묻혀 사는 노 명창 김화선을 찾아내어 그가 보유하고 있던 판소리를 녹음하여 음반으로 낸 것이다. 이번에 낸 김화선의 판소리 또한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이 음반이 귀하다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김화선 명창이 지방에 묻혀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의 판소리를 세상에 공개하게 되었다는 것이 귀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김화선이 부른 춘향가 및 심청가가 알려지지 않은 최막동제이기 때문에 귀하다는 것이다.
김화선은 1928년 함평에서 태어나 지금도 함평에 산다. 어려서부터 임춘앵, 강장완, 김수경, 최막동, 한성기와 같은 명인명창들에게 판소리를 비롯해서 승무, 산조, 민요 등 여러 가지 공연예술을 배웠다 하는데 주로 최막동에게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박탄가(흥보가)를 배웠다 한다. 이번에 나온 음반에는 그 당시에 배운 최막동제 춘향가 및 심청가 일부가 담긴 것이다. 지금도 김화선은 함평에 숨어 살며 제자를 가르치고 있는데 정창관 선생이 함평에 찾아가 설득하여 소리를 남기게 되었다.
최막동은 일제 강점기에 소리 솜씨가 뛰어난 명창이었으나 주로 전라남도 서남지역에 살며 활동 하였던 관계로 지금은 서울에서는 아는 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그가 대단한 명창이라는 것은 전라남도 서남지역에 가서 국악을 즐겼던 고로들의 증언을 듣게 되면 당장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음반도 없고 또 그에게 배운 제자들의 소리도 알려지지 않아서 잊혀지고 있었다. 다행히 이 음반이 잊혀진 최막동의 심청가 일부를 담아서 후세에 자료로 남게 된 것이다.
이번 음반에서 김화선이 부른 것은 단가 두 편과 최막동제 춘향가 및 심청가 일부이다. 단가는 ‘호남가’(함평천지), ‘사철가’(이산 저산) 두 편이다. 춘향가는 ‘이도령이 이별차로 춘향집 가는 대목’ ‘이별 말에 춘향과 춘향모친 실성발광하는 대목’,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하는 대목‘을 담았다. 심청가는 ’심청이 밥 빌러 나가는 대목‘ ~ ‘심봉사 자탄 하는 대목’을 담았다. 고수는 명창 김수미가 대부분을 담당하였다. 
이 음반은 숨은 명창 김화선의 판소리 기량을 연구하는 이에게 필요할 뿐 아니라 최막동제 판소리를 연구하는 이에게도 귀한 자료가 된 것이다.
판소리·전통춤·가야금 명인 김화선(여막)의 삶과 예술
글 / 노 재 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김화선(본명: 여막)은 1928년 1월 14일(음력)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에서 김안식(김해 김씨, 함평 태생)과 김모씨(광산 김씨, 무안 태생) 사이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김화선의 부친은 국악을 좋아했고 누나가 한명 있었다. 김화선의 조부는 김경국으로서 농부였다.
김화선의 본명은 김여막, 옛 예명은 김해선이고 8세 때 부모를 따라 함평에서 정읍으로 이사하였으며 12세 때부터 정읍권번에서 국악을 학습하기 시작했다. 김화선의 부친이 김화선을 정읍권번에 넣었다. 김화선의 부친은 무남독녀 김화선을 무척 예뻐해서 출가 안 시키고 데리고 있는 다고 국악을 배우도록 하였다 한다.
김화선은 14~15세 무렵에 1년간 서울 다옥정 임춘앵 집에서 임춘앵한테 한국 무용 <승무>, <살풀이춤>, 단가 <천생아재>, <편시춘>, <공도난이>,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남도민요 <육자배기>, <흥타령>, <새타령> 등을 익혔다.
<흥타령>을 소리북으로 반주할 때는 다른 소리 반주 때처럼 북채로 북을 치는 식이 아니고 북채로 북통을 짓이겨 누르듯이 반주를 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흥타령>은 한이 있어야 제 맛을 잘 살려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김화선이 젊었을 때 요리집 출장, 권번 오후 저녁마다 모여 앉으면 <육자배기>, <흥타령> 등의 남도민요를 많이 불렀다 한다.
임춘앵은 <긴 사랑가>를 “만첩청산~”으로 부르지 않고 “사랑 사랑~”으로 불렀다. <긴 사랑가>를 “만첩청산~”으로 부르는 건 옛날식으로서 나이 많은 명창들이 그렇게 부르는 걸 김화선이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김화선이 임춘앵한테 국악을 학습할 당시 임춘앵은 조선권번 소속이었다. 당시 조선권번에는 판소리 사범이 없었고 요리집으로 놀음 나가는 조선권번 기생들을 태우는 인력거꾼이 조선권번에 많이 왕래하였다 한다. 임춘앵은 광주권번 동기 때부터 이름을 떨치고 반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임춘앵은 구음을 무척 잘했는데 임춘앵처럼 구음을 그렇게 잘하는 다른 사람을 김화선은 못봤다고 한다. 임춘앵은 ‘떼놈, 송장도 춤추게’ 구음을 잘했다 한다.
김화선이 임춘앵한테 배운 <승무>의 복장은 검정 고사, 흰 고깔, 적색 띠를 사용하고 반주는 삼현육각으로 염불-타령-북 놀음-느린 굿거리 순으로 진행되며 북채 넣고 빼는 부분이 요즘과 다르다고 한다. 임춘앵은 <승무> 공연시 북 하나를 놓고 쳤는데 북가락을 기가 막히게 멋있게 잘 쳤고 김화선은 바로 이 <승무> 북가락을 배우기 위해 임춘앵을 찾아간 것이라 한다. 김화선은 임춘앵한테 <승무> 북가락만 두달 동안 배웠다. 임춘앵 <승무> 공연시 북은 사람이 잡아줬고 북 크기는 판소리 북 크기 정도였다 한다.
임춘앵은 <살풀이춤> 공연시 하얀 한복을 입고 석자 내지 석자 반 정도의 긴 수건을 들고 춤을 추었고 반주는 살풀이-자진살풀이 장단이었다 한다.
임춘앵과 임유앵은 자매간이고 임유앵, 임춘앵의 모친이 김화선의 고모(김화선 부친의 누나)이다. 임유앵 형제는 총 2남 2녀인데 차례로 임유앵(여), 임모씨(남), 임천수(남), 임춘앵(여)이며 이 가운데 임유앵과 강장원, 임모씨와 김진진이 부부로 살았다. 임춘앵과 장월중선은 아주 다정한 친구 사이라 한다.
김화선은 14~15세 무렵에 서울 임춘앵 집에서 김화선 친구 한명(성명 미상)과 함께 김소희한테 판소리 수궁가 초입~<고고천변> 등을 사사했다.
김화선은 14세 무렵에 서울로 나갔다가 15세 무렵에 다시 정읍으로 갔다. 김화선이 정읍으로 간 15세 즈음에 정읍 부자 김평창 손자(당시 33세)가 머리를 얹어 주었다 한다.
김화선은 15세부터 3년간 정읍권번에서 강장원한테 단가 <백발가>(젊어 청춘), <초한가>, 판소리 춘향가 중 <기산영수>~<이별가>, 심청가 중 <집이라고 들어가니 방안은 텅 비어있고>,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부모 생각), 흥보가 초입~첫째 <박타령> 등을 배웠다. 이때 익힌 흥보가 중 <흥보 제비노정기>는 빠른 중중모리, “흑운 박차고~”라 한다.
강장원의 춘향가 중 <이별가>에서는 춘향이가 옷 찢고 소리 지르고 물건 집어 던지고 하는 부분이 안 나온다고 한다. 강장원이 춘향가 중 <‘궁’자 노래>를 부르는 건 김화선이 못 봤고 김화선은 강장원이 누구한테 <백발가>를 사사했는지 등의 얘기는 못들었다 한다. 강장원은 아편을 안했다 한다.
김화선이 정읍권번 소속시 많을 때는 기생 학습하는 동기만 열댓명이 있었고 나이 많은 언니들도 많았다 한다. 당시 일주일에 한차례 정읍권번 소속 동기가 두명씩 정읍 내장사에 있는 요리집에 국악을 공연하러 갔다 한다. 당시 동기는 머리를 땋고 머리를 얹히면 동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17세 넘는 동기는 없었다고 한다.
김화선이 정읍권번에 있을 때 정읍권번에는 판소리 사범이 강장원과 성명 미상의 모씨, 이렇게 두 명이 있었고 춤 선생은 없었다. 김화선은 정읍권번에서 강장원한테 판소리를 배웠고 성명 미상의 모씨에게는 판소리를 안배웠다.
김화선은 15세 경에 정읍권번에 정가 사범이 없어서 정읍의 한량을 찾아가서 가곡, 시조를 배웠다. 김화선은 15세 때 한달 동안 김수정(당시 50대 후반, 장성 사람, 가야금·양금·피리 명인)을 김화선 집에 스승으로 모셔다가 가야금풍류 48장과 가야금산조 한바탕, 양금 풍류를 익혔다. 김수정이 연주한 가야금산조는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엇모리 순이라 한다. 당시 정읍권번에는 가야금 사범이 없었다고 한다.
김화선은 15세 무렵에 최막동에게 판소리 수궁가 중 <왕왈 연하다>~<고고천변> 등을 사사했다. 김화선은 15세 무렵에 김안식(당시 40~50세, 김화선 부친과 동명이인)한테 김안식 집에서 정계선, 임춘앵, 배화봉과 함께 남도민요 <새타령> 등을 사사했다. 김안식은 설장고 명인으로서 남도민요 <보렴>, <화초사거리>를 잘했다 한다.
김화선은 15세부터 17세까지 정읍권번에 소속되어 있었다. 김화선은 17세 때 정읍에서 함평으로 이사하고 18세 때 함평에서 목포로 이주하였다.
김화선은 17세 때 함평에 자주 온 임방울에게 단가 <호남가>와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사사했다. 김화선의 말에 따르면 임방울이 유명해진 것은 춘향가 중 <쑥대머리>에서 “내가 만일으~” 하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화선은 18~19세 무렵부터 2~3년간 목포권번에서 최막동(당시 50대 나이)에게 판소리 춘향가 초입~<이별가>, 심청가 거의 전판,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 흥보가 초입~<흥보 제비노정기>(흑운 박차고), <놀보 제비노정기>(안남산), 남도민요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등을 배웠다. 김화선이 목포권번에서 최막동한테 판소리를 배울 때 안채봉도 같이 사사했다 한다.
김화선이 목포권번 소속시 최막동이 유일한 판소리 사범이었다. 최막동이 목포권번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기 전에는 오수암이 판소리 사범이었고 최막동 다음으로 목포권번에서 판소리 사범을 한 사람은 안기선이라고 한다.
김화선은 오수암과 안기선한테는 판소리를 배우지 못했고 오수암과 최막동은 나이가 비슷했으며 김화선은 오수암 성음이 수리성이라 한다.
최막동의 성음은 듣기 좋은 철성으로서 목구성이 좋았다 한다. 철성은 본래 판소리하기에 안좋은 성음인데 철성 중에도 특히 듣기 안좋은 철성이 있고 최막동의 성음과 같이 듣기 좋은 철성이 따로 있다고 김화선은 말한다.
김화선의 의견에 따르면 최막동이 오수암보다 소리를 아질다질, 아기자기하게 맛있게 했다고 한다. 김화선은 최막동의 스승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한다.
김화선은 성악가는 일단 성음이 좋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김화선은 수리성, 철성, 귀곡성, 애원성, 천구성이라는 말을 들어봤다고 한다. 김화선은 ‘마당목’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구성 없이 넙적해 가지고 넓게 쓰는, 멋 없이 내는 목이라고 한다.
김화선의 판소리 스승 임춘앵, 강장원, 최막동은 한결같이 노랑목을 절대 구사하지 못하게 했다 한다. 김화선은 중고제, 동편제, 서편제라는 말은 들어봤고 경드름, 덜렁제, 잉애걸이, 완자걸이, 호걸제라는 말은 못들어봤다고 한다.
김화선은 18세 때 두달 동안 목포권번에서 한성기에게 가야금산조 한바탕을 배웠다. 한성기 가야금산조는 김수정이 연주한 가야금산조와 유사하다고 한다. 김수정, 한성기는 구식 산조를 연주했고 야질야질한 가락이 없고 다소 싱거웠다고 한다.
유대봉은 가야금산조를 잘한 천재 명인인데 신식 산조라 할 수 있고 야질야질한 가락을 많이 연주했다고 한다. 유대봉은 재담도 무척 재밌게 하고 남을 잘 웃기는 재주가 있었으며 가야금을 굉장히 잘해서 ‘가야금 버러지’라는 별호로 불렸다 한다. 유대봉은 어디에서 가야금을 배우지도 않고 자득하여 연주를 잘한 것이라 한다. 유대봉은 봉사였는데 병원에서 치료받고 잘은 안보여도 눈을 떴으나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서 안타깝게 작고하였다 한다.
김화선이 정읍권번 소속시 조합장은 박모씨, 김화선이 목포권번 초기 소속시에는 조합장이 남자, 김화선이 목포권번 후기 소속시에는 조합장이 여자였다. 김화선은 18세부터 5년간 목포권번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목포권번에서 활동하면서 딸 둘을 낳았다 한다.
김화선이 목포권번 소속시 한농선이 목포권번의 동기였다. 김화선이 33세 때 목포를 떠나고 나서 막 신영희, 안향련이 목포로 왔다고 한다. 박보화(박보아)는 목포권번 시절 박농선으로 불렸다 한다. 목포권번 시절 김화선은 18세인데 20세라 하여 두 살 많은 박옥진과 친구가 됐다 한다. 당시 목포권번에는 무용 사범이 없었다고 한다.
김화선은 20여세 때 정모씨에게 단가 <백대영웅>를 배웠는데 참으로 맛있는 소리라 한다. 김화선은 지금은 성명이 기억나지 않는 모 스승에게 판소리 해방가를 사사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부르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광복 직후 김화선은 함평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김선일이라는 한량에게 판소리 안중근 열사가를 배웠다. 김선일은 전주 태생으로서 2009년 현재 80대 후반, 함평 지역의 치과 원장이며 예전에 명창 최일원한테 판소리를 익혔고 영광에서 국악 단체 생활을 한 바 있다. 김화선은 김선일과 함께 영광에서 국악 단체 생활을 했는데 이때 김화선은 영광 단체에서 판소리, 가야금, 한국 무용 <승무>, 창극 ‘춘향전’의 향단 역 등을 담당하였다.
김화선은 후손의 장래를 위해서 일찍이 국악계를 떠났다 한다. 그러다가 중년 이후에 서서히 국악 활동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김화선이 젊었을 때 함평 지역의 삼현육각 명인으로는 오영주(피리), 정산옥(피리), 임봉(대금) 등이 있었고 해금 연주자는 당시 못 봤다고 한다. 오영주, 정산옥, 임봉은 1900년 이전에 출생한 명인들이고 모두 세습 전문 국악인 집안 출신이라 한다.
김화선은 젊었을 때 함평 지역에서 굿을 보기는 했으나 당시 당골 세습무 이름은 잘 모른다고 한다. 김화선은 한국 무용 <검무>의 경우 같이 출 짝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김화선이 국악계에서 체득하고 사용했던 은어(변말, 곁말)로는 세습 전문 국악인 집안 출신:산이, 기생:째생, 소리:패기, 장고:고장, 여자:해주, 남자:떼들이, 노인:구망, 영감:감영, 아이:자동, 먹는다:챈다, 죽음:귀사, 닭:춘이, 쌀:새미, 떡:시럭, 밥:서삼, 입:서삼집, 눈:저울고, 코:흥대, 발:디딤이, 얼굴:벤대, 옷:버삼, 거짓말:석부 등이 있다고 한다. 함평의 일반인들은 남자 소리꾼을 ‘광대’, 여자 소리꾼을 ‘기생’이라고 부른다 한다.
김화선의 말에 의하면 명창은 대부분 무식한 경우가 많았는데 동초 김연수는 유식했다고 한다. 박동진의 판소리는 유별나서 배우기가 어려운 소리라고 한다. 김화선은 이동백, 김창환, 정정렬, 김봉이가 명창이라는 말만 들었고 보지는 못했다 한다. 김화선은 이화중선, 임방울은 본 적이 있고 정정렬, 이화중선, 임방울의 유성기음반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김화선이 현재 보유하고 실연이 가능한 전통 예능은 단가 <호남가>(임방울제), <홍문연>(강장원제:천하태평), <백발가>(강장원제:젊어 청춘), <이산 저산>(조상현 녹음 듣고 익힘), <편시춘>, <공도난이>, <천생아재>,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이별가>(최막동제), <쑥대머리>(임방울제), 심청가 중 <곽씨부인 유언>~<심봉사 눈 뜨는 데>(최막동제), 적벽가 중 <군사 설움타령>(최막동제), 수궁가 초입 ~ <고고천변>(김소희제), 흥보가 초입~<흥보가 매품팔이 허탕치고 귀가하자 흥보처 좋아하는 데>(최막동제), 안중근 열사가(김선일제), 남도민요(최막동제)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타령>, <흥타령>, <새타령>(김안식제), 구음(자득/자장단 가능), 한국 무용 <승무>(임춘앵 사사), <살풀이춤>, 가야금 풍류(김수정 사사) 등이다.
김화선은 1992년 무렵부터 5~6년간 나주국악원과 김화선 자택 등에서 학생과 주부들에게 판소리와 고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현재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내교리에서 살고 있으며 집으로 찾아오는 학생, 주부들에게 판소리와 고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김금주는 15세 무렵에 김화선(당시 30여세)한테 함평군 대동면 김화선 집에서 판소리를 사사했고 현재 남원에서 살고 있다 한다.
김화선은 남편 모창하 사이에서 슬하 5남 2녀를 두었는데 둘째딸은 어려서 사망하였고 국악을 하는 자손은 없다고 한다.(1998.7.16, 1998.8.30, 2000.12.21, 2005.9.25, 2009.8.10. 김화선 증언)
김화선은 웬만한 남자들보다 더 대범하고 화통한 성품을 지닌 명인이다. 김화선은 젊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어쩐 일인지 늙으니까 한이 다 어디로 가고 없어졌다고 한다.
김화선 명인은 본 음반 취입 섭외차 함평 자택을 방문했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자들이 오늘은 허지 마라 해도 우리 집에 와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이렇게 늙었어도 보기 싫지 않으니까 오는 갑소. 고맙제라.”
2005년 김화선 명인 함평 자택에서 열린 국악음반박물관 판소리연구회 주최 김여막 적벽가 감상회 직후, “앞으로 건강하면 한번은 더 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마지막 작별일 지도 모르겄소. 잘 가시오.” 하며 당시 78세 김화선 명인은 자택 대문을 나서는 손님들의 손을 꽉 잡았다.
다행히 그날이 마지막 작별이 아니었고 그로부터 4년 후 본 음반 취입까지 성사가 되었으며 김화선 명인의 근래 소리를 오래도록 깨끗한 음질로 보관하며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두가 꿈만 같고 너무나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 시대 무척 귀중한 존재 김화선 할머니가 82세에 생애 첫 독집 음반을 국악아카이브연구회 이름으로 출반하게 됨을 마음 속 깊이 축하드리며 김화선 명인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수 : 김수미(판소리 반주)
· 1971년 5월 1일 전남 목포출생
· 1994년 2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졸업
· 2002년 2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원 국악과 졸업
· 1983년 1월 목포시립국악원에서 판소리 입문(사사:故 김흥남)
· 1985년~1986년 목포 은진고전무용연구소에서 판소리
(사사:윤진철), 전통무용(사사:이은진), 가야금(사사:감미숙), 판소리고법(사사:감남종) 학습
· 1986년~1997년 서편제 박동실판 심청가, 유관순 열사가 학습 (사사 : 故 장월중선)
· 1997년~2000년 동편제 김세종판 춘향가 학습 (사사 : 성우향)
· 2000년~2003년 동편제 박봉술판 적벽가 학습 (사사 : 김일구)
· 2003년~2006년 동편제 박녹주판 흥보가 학습 (사사 : 박송희)
· 1992년 전국국악대제전 판소리부 일반부 최우수상
· 2003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창작판소리 사습대회 입상
현재
·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
· 서울대학교, 전남대학교, 청주대학교, 백석예술대학교, 세종대학교 강사
· 순복음 보혈의 교회 국악성가대 지휘자 및 작곡가
고수 : 황금덕(단가 반주)
· 1949년 11월 13일(음력), 1950년 1월 1일(양력) 출생.
· 전라남도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신기산 778번지 태생.
· 2000년 김화선 문하에서 판소리, 고법 사사.
· 2001년 강진 남도국악제 신인부 우수상 수상.
· 2003년 추정남 문하에서 고법 사사.
· 2004년 나주 목사골국악경연대회 신인부 대상 수상.
· 2005년 무안 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도지사상 수상.
곡 설명 및 가사
 
< 일러두기 >
1. 사설 채록에 있어서, 고유 명사는 창자의 사설과 다르더라도 원래의 지명으로 바로 잡아 썼다.
2. 장단이 있는 소리대목의 사설은 마침표나 따옴표 없이 채록하였다.
3. 가능한 한 창자의 사투리를 그대로 받아 쓰되, 의미 전달을 위해서 괄호 안에 표준어나 생략된 음절을 써 넣었다. 4. 사설이 들리지 않는 부분은 김화선 명창에게 전화로 확인하여 수정 및 보완하였다.
1. 단가 - 호남가(함평천지)
(곡 설명) 단가 호남가는 호남의 지명을 문장으로 엮어 부르는 단가로써, 일명 함평천지라고도 한다. 중모리 장단으로 부른다. 이 단가는 호남의 각 지명에 어울리는 표현과 다음 지명으로의 자연스러운 문장 연결이 듣는 이들로 하여금 호기심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함평 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 허고
제주 어선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
흥양의 돋은 해난 보성에 비쳐 있고
고산의 아침 안개 영암을 둘러 있다
태인하신 우리 성군 예악을 장흥허니
삼태육경의 순천심이요 방백수령은 진안군이라
고창성에 높이 앉어 나주 풍경 바라보니
만장운봉 높이 솟아 층층한 익산이요
백리 담양 흐르난 물은 구부구부 만경인데
용담에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며
능주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금산인가
남원에 봄이 들어 각색화초 무장허니
나무나무 임실이요 가지가지 옥과로다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데
이초난 무주허고 서기난 영광이라
창평한 좋은 세상 무안을 일삼으니
사농공상의 낙안이요
부자 형제난 동복이로구나
강진의 상고선은 진도로 건너갈 제
금구에 금을 이뤄 쌓인 게 김제로다
농사허는 옥구 백성 임피사의를 둘러 있고
정읍에 정전법은 납세인심 순창이요
고부청청 양유색은 광양춘색이 팔도에 왔네
곡성의 숨은 선비 구례도 허려니와
흥덕을 일삼으니 부안제가 이 아니냐
우리 호남에 굳은 법성 전주 백성을 거나리고
장성을 멀리 쌓고 장수로 돌아들어
여산석에다 칼을 갈아 남평루에 꽂았으니
대장부 헐 일이 이외 또 있으리야
거드렁 거리고만 놀아보세
최막동제 춘향가
2. 이도령이 이별차로 춘향집 가는 대목
  웬갖 생각 두루헌다 (중모리)
  그때여 향단이 (중중모리)
  춘향이가 무색허여 (중모리)
  옳제 인제 내 알았소 (중중모리) 
(곡 설명) 이몽룡과 춘향이 한참 사랑에 빠져 있었으나, 이몽룡의 아버지인 사또가 동부승지 당상하여 한양으로 올라가야 하는 바람에 이몽룡은 춘향과 이별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도령은 무거운 마음으로 춘향 집을 향하고, 사정을 모르는 향단이와 춘향 모친, 그리고 춘향이의 기쁜 마음으로 이도령을 반긴다. 이도령의 묵묵부답에 춘향이의 서운함과 답답함은 극에 달했으나 이도령의 답변에 자신도 당연히 한양에 따라갈 것이라고 장담한다.
<아니리>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니 춘향과 이몽룡씨는 부득불 이별이 되것구나
<창조> 도련님이 이별차로 나오난디
<중모리> 웬갖 생각 두루 헌다 점잖허신 도련님이 대로변으로 나오면서 울음 울 리가 없제(지)마는 옛일을 생각허니 당명왕은 만고영웅이나 양귀비 이별에 울어 있고 항우는 천하에 장사로되 우민이별에 울었으니 날 같은 소장부야 아니 울 수 있겠느냐 춘향을 어쩌고 갈끄나 두고 갈수도 없고 다리고 갈수도 없네 저를 다려 가자 허니 부모님이 만류를 허고 저를 두고 내가 가자 헌들 저 못보면 나 못살고 저도 나 못 보면 그 성질 크게 울어 응당 자결을 헐 것이니 사세가 모도 다 난처로구나 길 걷는 줄을 모르고 춘향 문전 당도허니
<중중모리> 그 때여 향단이 요염섬섬 옥지갑 봉선화를 따다가 도련님을 얼른 보고 깜짝 반겨 나오면서 도련님 이제 오십니까 우리 아씨가 기대리오 전에는 오실라면 담 밑에 예리성과 문에 들면 기침 소리 오시난 줄을 알것더니 오날은 누기를 놀리시랴 가만 가만히 오시니까 도련님 아무 대답 없이 대문 안을 들어서니 그 때여 춘향 어머니난 도련님을 드릴려고 밤참음식을 장만허다 도련님을 반기보고 손뼉 치고 일어서며 허허 우리 사위 오네 남도 사위가 이리 아질 야질 어여쁜가 밤마동 보건마는 낮에 못 보아서 한일로세 사또 자제가 형제분만 되면 데릴 사우 내가 꼭 청헐 걸 한분되니 헐 수 있소 도련님이 아무 대답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때여 춘향이난 촉하에 침상 놓고 도련님을 드릴려고 약랑의 수를 놓다 도련님을 반기 보고 침상 물리쳐 단순호치를 열고 쌩긋 웃고 일어서며 옥수 잡고 허는 말이 오날은 왜 늦었소 방자가 병 들었소 어데서 친구 왔소 벌써 괴로와 이러시오 전에는 날 보면 반기더니 오늘 이리 수심키는 누구 내게 험담 들으셨소 게 앉지도 못하시오 약주를 과음허여 정신이 혼미헌가 입에다가 코를 대고 쌍긋 쌍긋 맡어 보며 술내도 아니 나는 걸 저녁 이슬에 새벽 바람 실성을 과히 허셨는가 이마 우에다 손을 얹어 잔듯이 눌러봐도 머리도 안 더우네 저(겨)드랑에다 손을 넣어서 꼭꼭꼭 찔러 봐도 종시 대답을 아니 허네
<중모리> 춘향이가 무색허여 잡었던 손길을 시르르르르 놓고 뒤로 물러 나앉으며 내 몰랐소 내 몰랐소 도련님 속 내 몰랐소 도련님은 사대부댁 자제요 춘향 나는 천인이라 일시풍정 못 이기어 잠깐 좌정 허였다가 부모님께 꾸중을 듣고 외인으게 시비 들어 그럴수가 옳다 허고 하직을 허러 오셨는거 속이 없난 이 계집은 늦게 오네 편지 없네 짝사랑 외즐검이 오직 보기가 싫었것소 정히 진정 그러시오면 누추하온 저의 집에 오시기가 OO시면 책방의 가만히 앉어 계셔 방자시켜 거절헌다 편지허면 젊은 년의 몸으로써 사자 사자 허오리까 아들없는 노모를 두고 자결은 못하겠소 독수공방 수절허다 노모당고 당하오면 조종장사 삼년상을 정성대로 지낸 후에 소상강 맑은 물에 풍덩 빠져서 죽을련디 백운청산 유명암자 자꾸 찾어 들어가서 삭발이승 중이나 될런지 소이대로 헐 것인디 금불이네 석불이네 도통허자는 학자신가 이리 물어 대답이 없으니 이게 계집의 대접이면 남자의 도례시오 들기 싫어 허는 말을 더 하여도 쓸데 없고 보기 싫어 허는 얼굴 더 보아도 병 되느니 나는 나는 건넌 방으로 가서 어머니 모시고 잠이나 잘라네 이부드득 일어서니 도련님이 화가 벌컥 일어나 춘향 초마자락 부여잡고 게 앉거라 허허 게 앉거라 속 모르면 말 마러라 말을 허면 울것기로 참고 참었는디 너 허는 거동을 보니 울음이 장차 질(길)것구나 말 소린지 울음인지 아무 분별을 못허것네
<아니리> “속 모르면 말을 마라니 무슨 말이요? 어서 답답허니 말이나 좀 허시오.” “춘향아, 사또께서 동부승지 당상하야 내직으로 올라가시게 되었단다.” “아니, 그러면 댁에는 경사났소 그리어. 그런 양반 댁은 그런 경사가 있으면 한바탕씩 우는 결례가 있소?”
<중중모리> 옳제 인제 내 알었소 도련님 올라 가시면 내 아니 갈까 이러시오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천리만리 어디든지 도련님을 따러가지
3. 이별 말에 춘향과 춘향모친 실성발광하는 대목
  허허 이게 웬 말씀이오 (진양조)
  춘향 어머니 나온다 (중중모리)
  춘향이가 여짜오대 (중모리)
(곡 설명) 이도령이 춘향에게 한양으로 함께 갈 수 없음을 알리자, 춘향이는 이도령에게 천지일월로 맹세했었음을 상기시키며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애절하고 절박한 심정을 토로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춘향 모친은 딸 춘향이의 도도함을 타박하고, 이도령에게 또한 애통함으로 따지고 든다. 춘향이는 현실을 인지하고 춘향 모친을 방으로 보낸 후에 이도령과 훗날을 기약하며 눈물로 이별을 받아들인다.
<아니리> “점점 더 기맥힐 소리만 허는구나.” “아니, 그럼 이별이라도 허잔 말씀이오?” “이별이야 되것느냐마는 잠깐 훗 기약을 둘 수 밖에는 없구나.”
<창조> 춘향이가 이별 말을 듣더니
<진양조> 허허 이게 웬 말씀이오 지금 허신 그 말씀이 참말이오 농담이오 이별말이 웬말이오 답답허니 말을 허오 작년 오월 단오날의 광한루서 처음 만나 소녀 집을 찾어 와겨 도련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어 무엇이라 말하였소 천지로 명(맹)세허고 일월로 증인을 삼어 상전이 백(벽)해가 되고 백(벽)해가 상전이 되도록 떠나 사지를 마잤더니 말경의 가실 적으난 뚝 띠어 버리시니 이팔청춘 젊은 년이 독수공방을 어이 사리 못허지 나를 죽여 묻고 가면 영 이별이 되련마는 살려두고 못가리다 공연헌 사람을 사자 사자 조르더니 평생 신세를 망치네 그리어 향단아 예 건넌방 건너가서 마나님을 오시래라 도련님이 떠나신다니 사생결단을 헐란다 죽는 줄이나 아시래라
<아니리> 건넌방 춘향 모친이 춘향이 이별헌단 말을 듣고 사랑쌈 허는 줄 알고 쌈을 말리러 나오난디
<중중모리> 춘향 어머니 나온다 춘향 어머니 나온다 백수 미다리 파뿌리 대머리 가닥 가닥 들어 얹고 고부라진 허리 손들어 얹고 허정거리고 나온다 가만 가만 나오더니 춘향방 영창 밖의 귀를 대고 들으니 이별이 분명구나 춘향 어메 기가 막혀 어간 마루 선 듯 올라 두 손뼉 땅땅 허허 별일 났네 우리 집에가 별일 나 야이 얘야 왜 우느냐 남 다 자는 깊은 밤에 아이고 치고 울음을 우느냐 요년아 요망헌 년 내가 일생 말허기를 무엇이라고 이러드냐 후회되기 쉽것기로 태과헌 맘 먹지 말고 여염을 세아릴 제 지체도 너와 같고 인물도 너와 같은 봉황같이 짝을 지어 내 눈 앞에 보았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지야 마음이 너무 도도하야 날과 별로 다니며 잘 되고 잘 되었다 여보시오 도련님 나하고 말 좀 하여 보오 내 딸 어린 춘향이를 버리고 간다 허니 무슨 일로 이러시오 군자 숙녀 버리난 법 칠거제(지)악 동천하면 버리난 법 없난 줄을 도련님은 모르시오 내 딸 춘향 어린 것이 도련님을 모신지가 근일년이 되았으나 행실이 그르든가 인물이 밉든가 언어가 불순든가 어느 모가 그르기로 이 지경이 웬일이여 양반의 유세를 허고 몇 사람의 신세를 버리오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중모리> 춘향이가 여짜오되 아이고 어머니 우지 말고 건넌방으로 건너 가오 도련님 내일은 부득불 가신다니 밤새도록 말이나 허고 울음이나 실컷 울고 내일 이별 헐라오 춘향모가 기가 막혀 못허지야 못허지야 니 맘대로는 못허지야 저 양반 가신후로 뉘 간장을 녹이랴느냐 보내어도 곽을 짓고 따러가도 따라를 가거라 여필종부라 허였으니 늙은 어미는 쓸데가 없으니 너그 서방을 따러 가거라 나는 모른다 너그 둘이 죽던지 살던지 나는 모른다 나는 몰라 춘향 어메 건너간 이후로 춘향이가 설워 울음 내어 아이고 여보 도련님 참으로 가실라요 나를 어쩌고 가실라요 동방작약 춘풍시에 꽃이 피거든 오실라요 마두각 나거든 오실라요 오두백 허거든 오실라요 동서남북 너른 바다가 육지가 되거든 오실라요 조그만헌 조약돌이 크드라는 반석이 되야 정이 맞거든 오실라요 높드라는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오실라요 운종용 풍종호라 용 가는데는 구름이 가고 범이 가는디는 바람이 가니 금일 송군 임 가신 곳에 백년소첩 나도 가지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 오나라 정부라도 각분동서 임 그리워 규중심처 늙어있고 공문한강 천리외요 한산월이 높은 절행 추월강산이 적막헌디 연을 캐며 상사허니 너와 나와 굳은 약속 후일 상봉 헐 것이니 송죽같이 굳은 절개 니가 날 오기만 기달려라 둘이 서로 꼭 붙들고 퍼버리고 울음을 운다  
4.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하는 대목
  술상 차려 (진양조)
  내 행차 나오난디 (자진모리)
  도령님이 이 말을 듣더니 (중모리)
(곡 설명) 춘향이는 이도령과 이별주를 하고자 술상 차려 오리정으로 나가고, 한편 한양행차 나가던 이도령은 오리정에서 나는 춘향의 울음 소리를 듣고 차마 발걸음 떼지 못하고 말에서 뛰어 내려 춘향과 함께 눈물로 이별한다.
<아니리> 이리 한참 울고 야단 났을 적에 방자 충충 들오더니 “여보시오 도련님, 사또께서 도련님 찾느라고 동원이 발칵 뒤집혔소. 어서 그만 가옵시다.”
<창조> 도련님 하릴없이 방자 따라 가신 후에 춘향이 허망하야 향단아 술상 하나 차리어라 도련님 가시는데 오리정에 나가 술이나 한잔 드려보자
<진양조> 술상 차려 향단 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녹림 숲을 울며 불며 나가는디 치맛자락  끌어다가 눈물 흔적을 씻치면서 녹림 숲을 당도허여 술상 대령 옆에다 놓고 잔디 땅 너룬 곳에 두 다리를 쭉 뻗치고 정갱이를 문지르며 아이고 어쩔끄나 이팔청춘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웬일이며 독수공방 어이 살꼬 내가 이리 사지를 말고 도련님 말고삐에 목을 매어서 죽고 지고
<자진모리> 내 행차 나오난디 쌍교를 거루거니 독교를 거루거니 쌍교 독교 나온다 좌우병마 좌우나졸 쌍교 엄위하여 구름같이 나오난디 그 뒤를 바라보니 그때의 이도령 지둥같은 노새등 뚜렷이 올라 앉어 재상 만난 사람 모냥으로 훌쩍 훌쩍 울고 나오난디 녹림 숲을 당도허니 춘향 울음 소리가 귀에 얼른 들리거날 이애 방자야 이 울음이 분명 춘향 울음이로구나 잠깐 가 보고 오너라 방자 충충 갔다 오더니 웠다 울음을 우난디 울음을 우난디 울음을 우난디 야 이 녀석아 누가 그렇게 운단 말이냐 누가 그렇게 울것소 춘향이가 나와 울음을 우난디 사람의 자식으로는 못 보것습디다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을 듣더니 말 아래 급히 내리어 우루루루루 뛰어 가더니 춘향의 목을 부여 안고 아이고 춘향아 니가 천연히 집에 앉어 잘 가라고 말허여도 나의 간장이 녹을턴디 삼도 네거리 쩍 벌어진 데서 니가 이 울음이 웬일이냐
5. 단가 - 사철가(사절가. 이산 저산)
(곡 설명) 단가 사철가는 사절가 혹은 이산 저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비유해서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 단가이다. 이 역시 중모리 장단으로 부른다. 단가 사철가는 사설의 내용과 정서가 소리꾼들이나 청중들에게 큰 호감을 주고, 그런 탓인지 가장 애창되는 단가 중 하나가 되었다.
<중모리>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가 갈려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있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가 되고 보면 월백설백천지백허니 모도가 백발이 벗이로구나 무정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 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 어려워라 어화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말 들어 보소 인간이 모두다 백년을 산다고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하면 단 오십도 못산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후에 만반진수는 불여생전에 일배주만도 못허느니라 세월아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마러라 아까운 청춘들이 다 늙는다 세월아 가지마라 가는 세월 어쩔끄나 늘어진 계수나무 끝끝터리다가 대랑 매달아 놓고 국곡투식 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난 놈 형제화목 못하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어 한 잔 더 먹소 덜 먹게 허여가며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
 최막동제 심청가
6. 심청이 밥 빌러 나가는 대목
  삼베 전대 외동지어 (단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중모리)
  심청이그날부터 (중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자진모리)
(곡 설명) 심청이 자라 철이 들자 동냥밥을 얻어오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신이 밥을 빌어 오겠노라고 아버지 심봉사를 설득한다. 간신히 허락을 받은 심청이는 동네 여러 집을 다니며 밥을 얻어 집으로 돌아오고 심봉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심청을 맞이한다.
<아니리> 심봉사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보단 덮어 뉘어 놓고 동냥차로 나가는디
<단중모리> 삼베 전대 외동지어 왼 어깨 들어 매고 동냥차로 나간다 여름이면 보리동냥 가을이면 나락동냥 어린 아이 맘중차로 쌀 얻고 감을 사 허유허유 다닐적에 그때여 심청이난 하날이 도움이라 일취월장 자라날 제 세월이 여류허여 십여세가 되야노니 모친의 기제사를 아니 잊고 헐 줄 알고 부친의 조석공양 의복을 정히 허여 무정세월이 이 아니냐
<아니리> 심청이 하로난 부친 앞에 단정히 꿇고 앉어 “아버지, 오늘부텀은 암디도 나가시지 말고 집에 가만히 계시면 소녀가 밥을 빌어 조석공양 허것네다.” 심봉사 깜짝 놀래며 “야야, 거 무남독녀 너를 밥을 빌러 보내다니 거 될 법이나 헐 말이냐? 워라 워라 그런 소리 마라.”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자로난 현인으로 백리의 부미허고 순우의 딸 제영이난 낙양옥의 갇힌 아비 몸을 팔아 속죄허고 말 못허는 가마귀도 공림 저문 날에 반포은을 헐 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만 못 허리까 다 큰 자식 집에 두고 아버지가 밥을 빌면 남이 욕도 헐 것이요 바람 불고 날 치운 날 천방지축 다니시다 행여 병이 날까 염려오니 그런 말씀을 마옵소서
<아니리> 심봉사 좋아라고 “야야,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워)가(지)고 나왔느냐? 너의 어머니 뱃속에서 배(워)가(지)고 나왔느냐? 니 뜻이 정 그리 허면 한두집만 다녀서 수이 오도록 해라.”
<중모리> 심청이 그날부터 밥 빌러 나갈 적에 헌베중의 다님 매고 말만 남은 헌 치마 깃 없는 헌 저고리 목만 남은 질보신에 청목휘양 둘러 쓰고 바가지 옆에 끼고 바람 맞은 병신처럼 옆걸음 쳐 건너갈 제 먼 산에 해 비치고 건너 마을 연기 일제 주적 주적 건너가 부엌문전 다달아서 애근히 비는 말이 저의 모친 나를 낳고 초칠안에 죽은 후에 앞 어두신 우리 부친 강보에 나를 안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동냥젖 얻어 멕여 이만큼이나 자랐으나 앞어두신 우리 부친 구완헐 길 전히 없어 밥 빌러 왔사오니 한술씩 덜 잡수고 십시일반 주옵시면 치운 방 우리 부친 구완을 허겠네다 듣고 보는 부인들이 뉘 아니 후히 주랴 그릇 밥 김치 장을 애끼잖게 덜어주며 혹은 먹고 가라 허니 심청이 여짜오되 치운 방 우리 부친 날 오기만 기다리니 부친 전에가 먹것네다 한두집이 족헌지라 밥 빌어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올 제 심청이 허는 말이 아까 내가 나올 제는 먼 산에 해가 아니 비쳤더니 벌써 해가 둥실 떠 그새 반일이 되얏구나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심청이 들어서며 아버지 춥긴들 아니허며 시장긴들 안허리까 더운 국밥 잡수시오 이것은 흰밥이오 저것은 팥밥이오 미역 튀각 갈치 자반 어머니 친구라고 아버지 갖다 드리라 허기로 가지고 왔사오니 시장찮게 잡수시오 심봉사 기가 막혀 딸의 손을 쥐어다 입에 넣고 후후 불며 아이고 내 딸 춥다 불 쬐어라 모친 목숨이 죽지도 않고  이 고생을 시키는구나
7. 심청이 시비따라 가는 대목
  시비따라 건너간다 (진양조)
  계상을 올라서니 (중중모리)
(곡 설명) 뜻밖에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의 청함을 받은 심청이는 시비를 따라 승상댁을 찾아간다. 승상 부인은 심청을 수양딸로 삼고 싶어함을 전한다.
<아니리> 심청이 어언간 십오세가 되야노니 심청이 효성이 원근에 낭자허여 하로난 무릉촌 장승상 댁에서 시비를 보내어 저를 청하였사오니 심청이 여짜오되 “아버지, 무릉촌 장승상댁에서 시비를 보내어 저를 청하였사오니 어찌 하오리까?” 심봉사 좋아라고 “야야, 그 댁 부인과 너의 모친과는 절친허게 지나였느니라. 진직 가서 뵈어야 할턴디 이렇게 부르도록 잊고 있었구나. 건너가되 아미를 단정히 허고 묻는 말에나 대답허고 수이 오도록 해라이!” 부친의 허락을 받고 무릉촌을 건너갈 제
<진양조> 시비따라 건너간다 무릉촌을 당도허여 승상댁을 찾어가니 좌편은 청송이요 우편은 녹죽이라 정하의 섰난 반송 광풍이 건 듯 불며 노중이 굼니난 듯 뜰 지키는 백두루미 사람 자취 일어나서 나래를 땅으다 지르르르르 끌며 뚜루루루루루 기룩 징검 징검 알연성이 거이 허구나
<중중모리> 계상을 올라서니 부인이 반기허여 심청 손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가 좌를 주어 앉은 후에 니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은지라 무릉에 봄이 들어 도화동 개화로다  니 내 말을 들어봐라 승상 일찍 기세허고 아들이 삼형제나 황성 가 득냥허고 어린 자식 손자 없어 적적한 빈 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는 게 고서로다 니 신세를 생각허니 양반의  후예로서 이렇듯 곤궁허니 나의 수양딸이 되야 예공도 숭상허고 문필도 학습허여 만년 재미를 볼까허니 너의 뜻이 어떠허뇨
8. 심봉사 물에 빠지는 대목
  배는 고파 (진양조)
  이래서는 못쓰것다 (자진모리)
  중타령 (엇모리)
(곡 설명) 심봉사는 심청이를 승상댁에 보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심청이가 돌아오지 않으니, 심청이를 찾아 나가다가 개천물에 빠져 죽을 지경이 되었다. 때마침 몽운사 화주승이 나타나 심봉사를 건져 살려준다.
<아니리> 심청이 여짜오되 “부친은 저를 아들 겸 믿사옵고 저는 부친을 모친 겸 믿사와 분명 대답 못허것네다.” “기특타 내 딸이야. 너는 나를 딸로 알터니 너는 나를 에미로 알거라,” 심청이 일어서며
<창조> 치운 방 우리 부친 날 오기만 기다리니 어서 건너 가겠네다
<아니리> 부인이 허락허여 채단과 양식을 후이 주어 시비와 함께 보냈것다
<창조> 그때여 심봉사는 적적한 빈 방안에 딸 오기만 기다릴 제
<진양조>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치워 한기들 제 먼데 절 쇠북 소리 날 저문 줄을 짐작허고 딸 오기만 기다린다 청아 오느냐 어찌 이리 못 오느냐 부인이 잡고 만류든가 질(길)에 오다가 욕을 보느냐 백설은 펄펄 휘날린디 후후 불고 앉었느냐 새만 푸르르르르 날아 들어도 청이 오느냐 낙엽만 버썩 떨어져도 내 딸 청이 니 오느냐 아무리 부르고 불러도 적막 공산의 인적이 끊쳤으니 내가 분명 속았네 그리어 이년의 노릇을 어찌를 헐끄나 홀로 앉어 울음을 운다
<자진모리> 이래서는 못쓰것다 닫은 방문 활짝 열고 지팽이 흩어짚고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나가면서 심청을 부르난디 청아 오느냐 어찌 이리 못오느냐 그때여 심봉사는 딸의 덕에 몇 해를 가만히 먹어노니 도랑 출입이 서툴구나 이리 더듬 저리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더듬 나가다가 질(길) 넘은 개천물에 한발 자칫 미끄러져 꺼꾸러 물에가 풍 빠져노니 그때여 심봉사 기가 막혀 아이고 도화동 심학규 죽네 나오랴면 미끄러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끌어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끌어져 풍 빠져 들어가고 나오랴면 미끌어져 풍 빠져 들어가고 그저 점점 들어가니 아이고 정신도 말끔허고 숨도 잘 쉬고 아픈데 없이 이 놈 용케 잘 죽는다 
<아니리> 그때여 심봉사를 살리려고 중이 하나 올라 오는디
<엇모리>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다른 중은 내려와도 이 중은 올라 가는디 저 중이 어디 중인고 몽운사 화주승이라 절을 중창 보랴허고 시주집 내려왔다 날이 우연히 저물어져 흔들 흔들 흐들거리고 올라갈 제 저 중의 호사보소 굴갓 쓰고 장삼 입고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소상반죽 열두마디 용두 새긴 육환장 채고리 질게 달아 처절철철철 흔들거리고 올라갈 제 백저포 장삼은 바람결에 펄렁 펄렁 염불허고 올라간다 아 아 아 아 어허 흐아 상래소수불공덕 회양삼천실원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원앙생 원앙생 시불중천제갈령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울음소리 귀에 얼른 들리거날 저 중이 깜짝 놀려 이 울음이 웬 울음 이 울음이 웬 울음 마구여천 무수다든 하소대로 울고 가는 양태진의 울음이냐 여우가 변화허여 나를 호릴라는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 울음 죽장을 들어 매고 이리 찌웃 저리 찌웃 찌웃 거리고 올라갈 제 한곳을 당도허니 어떠한 사람이 개천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가 되얏구나
<자진 엇모리> 저 중이 급한 마음 저 중이 급한 마음 굴갓 장삼 훨훨 벗어 되는대로 내던지고 보선 행전 댓님 끄르고 고두 누비 바짓 가래 따달 딸 딸 걷어 자개밑 떡 부치고 물우로 툼벙 들어가 징검 징검 징검거리고 들어가 심봉사 뀌뚜루 상투 앳뚜루미 쳐
<엇모리> 건져 놓고 보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9. 심봉사 자탄하는 대목
  허허 내가 미쳤구나 (중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자진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중모리)
(곡 설명) 몽운사 화주승의 도움으로 물에서 빠져 나온 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겠노라고 권선문에 적게 한다. 중이 떠난 후에 심봉사는 제 정신이 돌아와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자책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심청이는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한다. 
<아니리> 중이 심봉사를 건져 업고 집으로 들어가 심봉사 “아니, 누가 날 살렸소?” “소승이 지내다가 봉사님을 구원했습니다.” “거, 참! 은혜 백골난망이로구먼.” “봉사님, 좋은 수가 있소마는!” “좋은 수라니, 무슨 수요?” “우리 절 부처님이 영검이 대단허시어 빌어서 아니 되는 일이 없고 구하여 아니 되어지는 일이 없는디, 공양미 삼백석만 우리 절에 시주허면 삼년내내 눈을 뜰것이요마는 어디 그럴 수가 있소?” 심봉사 눈 뜬단 말을 듣고 “아니, 자네 절 부처님이 그렇게 영험이 대단허시어? 여러 말 말고 쌀 삼백석 적소! 적어!” 저 중이 어이 없어라고 웃으며 대답허되 “가산을 둘러보니 쌀 삼백석은 고사허고 서홉 곡식이 어려운디 어디 그럴수가 있소?” 심봉사 화를 내며 “어허! 자네가 남의 살림 속을 어찌 알아? 적으라면 적어!” “예, 적것습니다! 자, 적었으니 보십시오.” “어허, 어쨌든 시래비 아들놈이구만.  이 사람아, 아 내가 그것을 보게 되며는 내가 뭣 허러고 자네 절에다 쌀 삼백석이나 시주허것는가?” “소승이 미처 생각들 못했사옵니다. 소승이 읽을 터이니 들어 보십시오. ‘황주 도화동 사는 심학규 눈 뜨기 바랜 차 공양미 삼백석을 몽운사로 시주함’ 이렇게 썼습니다.”  “거, 잘 되았네! 잘 됐어! 아 그러면 언제쯤 바치면 되는가?” “내월 십오일 날까지는 바치셔야 합니다.” “어이, 알았네. 어서 올라가.” “봉사님, 한가지 명심헐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부처님께 빈말을 허며는 앉은뱅이가 된답니다. 그것만은 명심허시죠.” “어이 알았네. 어서 올라 가소. 어 꼭 가서 염불이나 착실히 허소.” 중은 올라가고
<창조> 심봉사 홀로 앉어 곰곰이 생각허니
<아니리> 이런 시래비 아들놈이 없제
<중모리> 허허 내가 미쳤구나 정녕 내가 다 죽었네 짚(깊)은 개천 물에 빠져 혼미정신 넋을 잃고 엉겹절에 이랬는가 무남독녀 딸을 보내어 밥을 빌어 먹는 놈이 쌀 삼백석을 어이 허며 살림을 팔자 헌들 단돈 열냥 뉘가 주며 내 몸을 팔자 헌들 앞 못 보는 병신 놈을 닷돈 서푼 뉘가 주리 부처님을 속이며는 앉은뱅이가 된다는디 앞 못 보는 봉사 놈이 앉은뱅이가 되고보면 꼼짝 없이 내가 죽것구나 수궁고혼이 될지라도 내가 차라리 죽을 것을 공연한 중을 만나 도리어 내가 후회로다 저기 가는 대사 나 쌀 없네 공양미 삼백석 권선에 이고 가소 대사 대사 저저 음흉헌 놈 쪼까 보소 내 부르는 소리 죄죄다 들었으련마는 못들은 치라 허고 뒷바랑에다 손 쑥 넣고 거덜거리고 가네 그리어 저런 죽일 놈 있는가 대사 대사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효성 있는 내 딸 청이 만일 이 말을 듣고 보면 복통자진 헐 것이니 이를 장차 어쩔끄나 죽도 살도 기가 맥혀 홀로 앉어 탄식을 헌다
<자진모리> 심청이 들어온다 심청이 들어서서 저그 부친 모냥 보고 깜짝 놀래 발구르며 아이고 아버지 살 없는 두 귀 밑에 눈물 흔적 웬일이며 날 찾아 나오시다 개천에가 넘어져서 이 지경이 되어셨소 이웃집 가시다가 이런 욕을 당하셨소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잡고 만유허여 어언간 느지었소 치맛자락 끌어다가 눈물 흔적 씻쳐주며 아이고 아버지 말을 허오 말을 허오 답답허여 못 살것소
<아니리> 심봉사가 공연한 일을 저질러 놓고 도리어 화내것다 “워라, 워라! 오늘부터 니 애비도 아니여. 그러고, 너 알아 쓸데 없어.” 심청이 여짜오되 “아버지, 소녀는 부친을 믿사옵고 부친은 소녀를 믿사와 대소사를 의논터니 오늘따라 저 알아 쓸데없다 하시니 소녀 한없이 슬프옵니다.” “아가, 청아. 내가 너를 뭣을 속이것느냐? 오늘 니가 승상댁에 가서 미처 안오기에 너를 찾어 나가다가 이 앞에 개천에가 빠져서 꼭 죽게 되았지야. 그러는디 몽운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업고 허는 말이 즈그 절 부처님 영검이 대단허시다 허며 공양미 삼백석만 즈그 절에 시주허면 삼년 내내 눈을 뜬다고 허기에 가산은 생각지 않고 눈 뜬단 말만 반기 듣고 권선에 쌀 삼백석을 적어 줬으니 이를 어쩌드란 말이냐? 그러나 염려 마라! 내가 내일이라도 올라가서 권선에 이고 오면 될 것 아니냐!”
<중모리> 아버지 듣조시오 왕상은 고빙허여 얼음 궁의 잉어 얻고 맹종은 읍죽하야 눈 속에 죽순 얻어 부모 봉양 하옵삽고 곽거라는 옛 사람도 부모 반찬 허여 놓으면 지 자식이 먹는다고 산 자식을 묻으려고 땅을 파다 금을 얻어 부모 봉양 허였으니 사친지 효도가 옛 사람만 못하여도 지성이면 감천이라 너무 근심치 마옵소서
<김화선의 국악세계>를 기획·제작하면서.....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회장  정  창  관
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 서초국악포럼 좌장
2009전통예술 · 공예분야경연대회 평가위원회 위원장
이 땅의 잃어버릴 소리, 날아가버릴 소리를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 기획자가 제작하고 있는 ‘정창관 국악녹음집’ 제12집 <김화선의 국악세계>가 출반되었다. 1998년에 제1집 <강순영의 국악세계>, 1999년에 제2집 <조순애의 국악세계>, 2000년에 제3집 <인간문화재 김영택의 국악세계>, 2001년에 제4집 <박보아 박옥진 자매의 국악세계>, 2002년에 제5집 <신용춘의 국악세계>, 2003년 제6집 <김경성의 국악세계>, 2004년 제7집 <박홍남의 국악세계>, 2005년 제8집 <박대성의 국악세계>, 2006년 제9집 <조영숙의 국악세계>, 2007년에는 제10집 특별반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음반을 출반하고, 2008년 제11집 <박덕화의 국악세계>에 이어, 올해에는 2007년에 출반한 10집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의 소리꾼을 알게 되어 재출반하고, 바로 제12집 <김화선의 국악세계>을 출반하게 되었다. 이번 음반 출반은, 국악아카이브연구회 이름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국악아카이브연구회 이름으로 출반하게 되었으나, 시리즈 이름은 ‘정창관 국악녹음집’으로 계속하게 되었으니, 계획대로 매년 한 장이 출반되는 셈이다.
작년의 제11집은 1,000매를 제작하여 200매는 연주자에게 배부하고 700매는 무료로 배부하고 100매는 판매 및 보관용으로 가지고 있다. 올해 7월에는 10집으로 출반한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은 1,000매를 재출반하여 모두 무료로 배부하였다.   
이번에는 국악음반박물관 노재명 관장의 소개로, 전남 함평에서 활동하시는 소리꾼 김화선(김여막) 할머니의 판소리를 녹음하였다. 김화선 명창의 소리는 귀한 최막동제 판소리이다. 그의 소리가 잊혀지고 있었는데, 이 녹음으로 남게 되어 기쁘다. 김화선 명창은 더 많은 대목을 부를 수 있었으나 시간제한(음반 한 장 분량) 때문에 최막동제 춘향가와 심청가 일부를 담았다. 녹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 시간이 넘는 소리이지만, 사전에 녹음 팀에게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가사 하나 보는 것도 없이 거침없이 나아갔다. 과연 명창이다.
 녹음 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고수는 현재 함평에서 김화선 할머니와 같이 활동하고 있는 황금덕 선생과 녹음을 하기로 하였는데, 녹음실에 왔는데, 북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우리는 당연히 북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알았고, 황금덕 선생은 함평에서는 어디가나 북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녹음실에 북이 있을 것으로 알고 북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녹음을 맡은 양정환 선생이 부랴부랴 북을 수배하다보니 김수미 선생이 북을 녹음실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북을 가지고 온 김수미 선생과 김화선 할머니기 북을 한번 맞춰보더니 마음에 쏙 들었는지 녹음을 하자고 하였다. 그래서 이 음반의 고수는 김수미 선생이 맡게 되었다. 전혀 계획에 없는 고수가 북을 치게 된 것이고, 김수미 선생은 얼떨결에 고수로 데뷔하게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녹음이 잘 되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단가는 함평에서 올라 온 황금덕 선생이 맡았다.      
예술기획탑의 양정환 대표는 녹음에서, 마스터링, 제작 등, 전 과정에서 자기 일같이 도와주었다. 항상 시작하는 글을 보내주시는 한국고음반연구회 이보형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방일영 국악대상 수상으로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옥고를 보내주셨다. 소리꾼을 소개해주었고, 인터뷰를 위해 함평을 방문해주고, 해설서도 써준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 고맙고, 인쇄와 디자인을 맡아 준 무송 허갑균 사장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이 음반은 일련번호를 부여한 1,000매 한정반으로 김화선 명창에게 200매 정도 보내고, 북을 친 김수미 선생에게도 50매 정도를 보내 줄 예정이며 대부분 무료로 배부한다. 국악FM방송 청취자. KBS FM 청취자(국악프로), 객석 구독자에게는 무료(?)로 음반을 가질 기회가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무료로 드릴 수 없기 때문에 국악원 자료판매실(02-580-3160)과 예술기획탑의 쇼핑몰인 www.gugakcd.com 등에서는 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 출반을 국악아카이브연구회의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과 정창관 국악녹음집 시리즈로 계속할 수 있도록 결정해 준 회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해주는 마눌님 고마우며,  지원해주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감사함을 전한다.
2009년 10월 31일 월계1동 현대아파트에서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회장 정 창 관
* 정창관 국악후원회
   구좌:제일은행 광화문지점 130-20-389890 정창관
   전화:02-943-4390 /  손전화:010-2023-4390
   홈페이지:www.gugakcd.kr / www.gugakebook.com 
   이메일:ckjungck@hanafos.com
* 국악아카이브연구회
   홈페이지 : www.gugakarchive.kr (현재 구축 중)
Jaesu-gut's procedures are as follows:
'Chobujeong' is performed to purify bujeong (a bad luck) in order to invite spirits to gutcheong (the space where the gut takes place) before the gut starts. The female shamans pick up the spirits of the twelve geori and welcome them. Gangsinmu of the Gyeonggi province sit down in a usual dress and later take away and finish bujeong with caustic soda water. When it is done with a hot red pepper powder, this method is not traditional, as the material was introduced Korea after Imjinwaeran, a series warfares with Japan in the 16th century. There is a way of taking away misfortune that 'soji (sacrificial paper)' are used by setting fire in some regions.
The term 'gamang' of 'Gamangcheongbae’ derived originally from the term 'gameung (lit. means 'response' or 'sympathy')' of Chinese Taoism. In fact, 'mugyeok 巫覡’, referring to both shamans of male and female, are not able to tell us about this spirit's rank, and this needs to be explored.
Bonhyangsan 본향산 is performed by raising famous mountains in every province no matter where the gut takes place. It is called 'sangeori'‘ or 'sancheongeori’ in the Hwanghae provinces (situated in North Korea). The gesture of the 'setting up' the mountains symbolises "dispersing mountains" and is to invite spirits.
'Bulsageori‘ 불사거리 is a gut that picks out a baby and wishes longevity. This ritual had been changed to make spirits entertain and please them. It is said that its old practice was that the shamans hold the bara (idiophone that is used in Buddhism and shamanistic rituals) with both hands, and a female shaman who has a good voice sings "Jung-taryeong ('jung' = monks)" by spreading out them. Some performers still practise this method, but it has largely been changed.
'Hoguagassi-gut 호구아가씨굿’ is followed by this, and it is for preventing from contracting smallpox, or for curing its illness. Traditionally smallpox (also called 'mama') was an epidemic disease that is almost impossible to be cured, so people got frightened by it more than anything else.
'Sangsanmanura-geori 상산마누라거리‘ is a ritual that commemorate Choi Yeong (1316-1388) who was a national General but was killed falsely in Gaeseong, a historic city in North Korea during the end of Goryeo dynasty. 'Sangsan' denotes the Deokmul mountains situated in that city. It is also called 'daenjudeurinda6)’, which is not familiar term today, but largely used by senior female shamans in Seoul areas.
'Byeolsang 별상‘, also called 'Byeolseongmama', is known as a gut for 'Dyjudaewang Sadoseja' whose father was the King Jeongjo (1752-1800). But this theory can be spurious and needs further investigations. 'Byeolsang noretgarak’ is sung as soon as setting up the chains and offering 'myeongjan bokjan', denoting liquor glasses for longevity and good luck.
The term ‘sinjang 신장’ is a generic term that is combined Buddhism with shamanism. Because of its long connection with Sinjungdan of Buddhism, people can easily be misunderstood its character as being Buddhism. But this theory can also be suspicious. Nevertheless, its nature had been changed into the following activities: performers pick up the five colour banner and sing Sinjang-taryeong and then rotate the banner. Sinjanggeori is an entertaining geori, and it was generated in the late 1930s. Before this date jeonnae  (or jeonnaegoji)7) was often performed.
'Daegam 대감’ originally refers to the spirit's rank which guide a house site ('teo, 址') in the areas of Seoul and Gyeonggi province. Today it is performed by exchanging the first part into the second one. This Daegamnori is a geori that was formed in the late 1930s, and it became one of the representative repertories that changed into the entertaining geroi.8) Its procedure follows that the house that has teojugari becomes a space for performing mansubaji 만수받이 (reciting to a fellow shaman) and the teojugari is changed to a new one. For a teot-daegam, the shaman carries rice cake in a pot on the head wearing in namkwaeja (male military uniform) and scatter rice beer throughout the house for teot-daegam.
'Noneungeori 노는거리‘, as just mentioned, used to be performed in Bulsageori, not in Daegamgeori. But it was replaced to Daegamgeori from Bulsageori. Andangjeseok 안당제석 is performed after making jinseol (preparing food for spirits) as bulsasang (altar table) is set in a main room of the house. Its procedure is similar to Bulsageori.
'Josanggeori 조상거리‘ is literally to invite ancestors of the household in order to pay off resentment or words that had not been finished in thier lives. 'Malmyeongjosang 말명조상’ differs from Jiban-gut or Daedong-gut in terms of its spirits' ranks and its subjects. Malmyeonggeori9) used to perform independently from other geori. So the current Malmyeongjosang that performs part of the gut is not a traditional practice.
'Gunung-gut 군웅굿‘ is to perform for the gunung spirit, and it is treated as normal in the areas of Seoul and Gyeonggi province where it briefly is raised at the end of Seongju-gut. Compared these guts, other areas such as the northern Gyeongsang, Gangwon province, Hwanghae provinces or Pyeongan provinces treat Gungung-gut as one individual geori. In particular, in the Hwanghae provinces and Pyeongan provinces, both provinces are in North Korea, landscapes are mountainous. There are some interpretations about this gut, and two references can be considered of these:
(i) The spirit's rank refers to the General10), but it renders saseol (text) by combining the gunung spirit with the hunting ritual. (ii) According to the facsimile edition called 'Mudang naeryeok, lit. means 'the story of shamans''11) by anonymous, the Gunung-gut in the Seoul area was used to perform to commemorate Chinese delegates either who had an accident when they crossed the hills or mounds, or killed by a tiger or a hohwan (the house where a person was brought by a tiger, or such haunted spirit). From my long researches, the first reference (the Gunung spirit) would be convinced than the second one, as the manuscript does not provide any specific reference to the names of the Chinese delegates. The gunungjangsu version is clearly evident in the performances of the saseol or rituals of other regions.
Seonang-gut 성주굿 refers to seonghwangdang (shrine for a tutelary deity), and it is for the seonang deity that is the Mongolian oboo counterpart. Some regions, the term 'seonang' changed into seonhwang, which is performed on the boat (also pronouncing 'seonang'). This gut is also called Seonwang-gut 선왕굿 which is performed by the sea or the shore, and its saseol refers to the names of fish or boats. Seonwang-gut is totally different from Seonang-gut 서낭굿, which is performed on the shore.
The Changbu spirit is for the spirit who plays an instrument and sings. Changbu is depicted by wearing a bamboo hat and playing the piri (Korean bamboo oboe) in Musindo (picture of the Shamanistic Ritual Gut) of Gugsadang. By the same token, in Changbugeori of Seoul gut, the shaman puts the bamboo hat on and wears kkaeja (traditional military clothe). Its saseol gives a daemok (scene) that gwangdae (professional actors) of rural areas go up to Seoul and recite such noaekpuri as "one-year ... twelve months, etc" at the end part.
‘Jemyeongeori 제면거리’ is for a jemyeon wife, and its spirit's rank is slightly different from regions. Today Jemyeon-gut is performed in the areas of Seoul, Gyeongsang provinces, Gyeonggi province, the Jeju island.  In Seoul and Gyeonggi province, it is done by selling jemyeon cake and singing Ddeok-taryeong that renders by calling all the names of rice cake. In the Jeju island when the jemyeon wife scatters rice made of millet, from their degrees or directions that one collecting/ gathering, they wish seeds of sea fish or rich harvest of all kinds fish. This character is the same as the seaside of Gyeongsang provinces. Dyitjeong 뒷전 is to release and feed to all the sundry evil spirits which did not come into boncheong.
Sometimes people hold 'Maengin-gut 맹인굿‘ (ritual for the blind) in Jiban-gut, and this is performed only for their ancestor who was the blind. In a case of Daedong-gut, in an old society, there were many blind people, so they used to perform this gut in order to treat them properly when they had died.
'Seongju-gut 성주굿‘ is a main ritual. Seongju is the spirit which guides the house of a family. Its song is called Seongjupuri, and it is called 'Hwangjepuri' in Seoul where its term is exclusively used. Hwangjepuri was played originally by gidae, not shamans. Gidae were gut performers who were generally not received by spirits except for some, neither female shamans.
They had good saseol that contain good stories. Their text repertories included Chobujeong, Gamang, Damgeumaegi-taryeong, the Princess Bari, Seongju-gut (Gajeun-seongju), Hwangjepuri and Doryeong (Batdoryeong and Andoryeong). They performed accompanied by musicians. As the gidae class passed away, their performance context changed: female shamans learned the janggo (hour-glass drum) or their saseol repertories and performed this gut.12) These gut performers used to live within and without the Four Gates of Seoul, and they transmitted their manuscripts which are quite different from each other. Some of these remained in some areas of Gyeonggi province. Seseummu, shamans who are inherited by their own family, practising in the southern Gyeonggi province tend to learn the Seongju-gut from these manuscripts when they learn first.
Seongju-gut is largely performed by divining when a client asks for a gut, the shaman picks up the zodiac signs of the year for the male master of the house and ohaeng (五行 Five Elements: metal, wood, water, fire and earth), and makes a decision wether or not the year suits for the Seongju-gut for the house.
In addition, Hwangjepuri is performed at several occasions: (i) after building a house; (ii) currently building up after demolishing the old house; (iii) on construction the house.
In general, when Jaesu-gut takes place, Seongju-gut can be replaced by 'Heullimseongju 흘림성주' when the year does not suit for receiving fortune of Seongju-gut. Jinseolsang 진설상 can be similar to Hwangjepuri or Heullimseongju. When it is performed, a picked pine tree was certainly used: it is customary that the upper part branch was picked up and brought from the direction towards the east. Regarding its material, today shamans use an oak tree, but this was not traditional method in the gut in the past: for the reason that "when the oak tree rustles, seongju (the shaman) is distracted, thus daeju (the master of the house) also distracts.“
Seongju-gut is certainly performed by dangju (main shaman) who is charge of the gut, but Hwangjepuri is sung by gidae. It is customary that the dangju takes all the offering goods by himself/herself: when an affluent household holds the gut, they offer expensive goods such as a roll of silk material, or a pack of sangmi rice (special quality of rice). Traditionally, dangju gives gongsu or well-wishes remarks suit to the different generation of the household. Nowadays its tradition has been almost disappeared, as the gut performs within a limited time. When they choose the generation of the household, this is done by daejabi (expert), who invited to pick up the different generation: s/he points out where s/he wants to go to the person.
In Seongju-gut in Seoul, later a shaman rolls and raises a seongju pole and apply it to the new one by taking out of the old seongju pole, and shouts: "cheonsoekinya, or manseokinya? (A thousand packs or ten thousands packs?)". Then s/he scatters the rice on the spot of the applied seongju pole.
The way of applying seongju pole in Seoul gut proceeds: papers are soaked into a warm rice wine and wrapped by putting three coins into the papers, or without wrapping. the shaman applies this to the spot of the seongju pole. Seongju-gut in the Gyeonggi province is similar13) to that of Seoul. In the middle areas of Chungcheong provinces, shaman applies the seongju pole to the main room. In Hwanghae provinces its procedure is rather complicate: the shaman puts five kinds of grain into a bowl and sets the altar table. The shaman prepares separately foods for seongju and then puts 33 inches of hemp cloth into the bowl and then winds it into a pot. Later this is placed into the seongju pot by reciting to a fellow shaman, that is for making an individual advance.
New Seongju-gut proceeds after preparing food for seongju, and one shaman recites to a fellow shaman. Then a shaman who is on the ground tosses sugar cane pallets rice cake to the top of a roof by saying "Sae ollimnida 새 올린다“, and another shaman on the roof receives the cake and piles up them.14) In Gangwon province and the south and northern Gyeongsang, seongju-gut is performed at Byeolsin-gut. In a case of Seongju-gut which had taken place in 19? Hupo 5ri, Uljingun, north Gyeongsang province, the shamans set the altar table offering at the old folk house of a village and invite the spirits of the ancestors of the house, and offer the myeongjan bokjan. Then they raise chains on the seongju rice with a wooden fulling roller. These shamans, who are not gangsinmu, do the seongju application shortly after putting it up and putting down. The seongju application is completed by cutting a paper with a shape of a person and then put it at the corner of the house. This is done until its application has finished. When it is done, gathered spectators turn into ecstasy saying that "the spirit has just received it well." This area sometimes does not perform this gut, and Seongju-gut is performed according to the individual house. The gut practised in the areas of Jeolla is similar to others: song repertory is Panpaegae that ends with a fast Jungmori by starting Neujeunmori and Jungmori.
The middle areas of Chungcheong provinces are similar to this, but the seongju application differs: it is applied to the main room. In the Jeju island, it is done after preparing the altar table for seongju, and at the end of the gut shamans hold an axe and sing it for 'gangtaegong'. Then they walk around the house and make a gesture of chopping woods after they built up a tiny tile-roofed house in front of gutcheong. They toss and "paereul garigo“ in order to whether the gagtaegong soengju spirit received it well with knives instead of the shaman sword. In the Jeju Island, the seongju spirit is replaced by gangtaegong, and this is the same in all the areas. After the first day of spring by the lunar calendar when Yeongdeung-gut 영등굿 has finished, this gut is performed in every house. But today it has been nearly stopped performing since about 1999.
The content of Hwangjepuri
The content of Hwangjepuri in this CD consists of a lengthy saseol that includes the procedures of building a house such as wall cabinets, inside and outside walls, roofs, all kinds of doors, main doors, and so on throughout the kitchen decoration, cupboards, kitchen shelves, other rooms and main room. This process is done by bringing all the timbres after having prepared the house site and made offerings to spirits. Hwangjepuri is to present such procedures of building the house realistically with a saseol.
Hwangjepuri has the same character with Seongjubonga 성주본가 (the so-called 'Seongjubaji') in the spirit who guides the house, and it is the saseol for daeju of the house which will receive seongju. However, its context is different a lot. Hwangjepuri is performed in most of Seongju-gut. But it is a current situation that most female shamans would not know such saseol and omit it completely when they perform at the house that is subject to receive seongju. Nonetheless the current Seongju-gut includes Hwangjepuri and this issue remains to be considered.
Along with Hwangjepuri, stories of 'Mr Hwangwuyang and Mrs Mangmak'16) performed in the Geyonggi province and other areas had been transmitted in part orally, and it is known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that its myth also was transmitted to Seoul areas. Today shamans recite only the saseol of building a new house in the Seongju-gut, and they are no longer abel to add its story and 'Sojinnang' as well. This means that there would be rare for the house to receive seongju. It would derive from the fact that gidae who were only able to recite such long and magnificent saseol had passed away, and only Hwangjepuri has been transmitted to the present time.
There must be another reason that such two stories had not been transmitted to the shamans: the saseol of Mr Hwangwuyang and Mrs Mangmak would not be attractive to the female shamans, so it did not draw attention to them, except for Hwangjepuri. This would be the same context that pansori (narrative song accompanied with a drum) had been survived by the Five Repertories from many stories. As these Five embody tension and expression that make a good balance between its story and singing, their arts attracted enough to both pansori singers and their listeners.
The genealogy of Hwangjepuri transmission
Hwangjepuri saseol has been transmitted to Gang Ok-rim tracing back to Yi Sang-soon --> Choi Soon-ja (1919-1980) and her previous generations. This lineage is not much different from that of female shamans in Seoul, as these practitioners tend to learn by ear, not from the manuscripts as seseummu would do. This feature made a number of different versions exist. Thus according to the relationship between students and their teachers, its saseol can be added or omitted, even borrowed or lent.
There is an anecdote about a fine female shaman relating to rendition to Hwangjepuri saseol. Choi Soon-ja, a female shaman, died in Heukseok Bondong, Dongjakgu, Seoul, but it was not unknown her birth place. She performed Seoul gut during her life, and from her career, she probably was born in Seoul. According to her followers and disciples, she was famous for her thoroughness for reciting saseol that were picked up every detailed words. When her students perform the saseol with omitting or missing certain phrasing, they were heavily reprimanded by her. Because Choi Soon-ja was born with a natural talent, the contents of her saseol possessed a 'solid frame' with magnificence. In particular, in such scenes as 'roof decoration’, ‘decoration of rooms', 'ceiling', walls, windows and doors fittings, doors (main door, sliding doors to shut the main floor of the yard), and so on, terminologies were depicted and expressed in great detail featuring in ancient architecture as in other scenes or phrasings, compared with any other manuscri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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