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비밀번호찾기

 · 탑음반/TOPCD
 · 추천음반/정창관시리즈
 · 관련음반

   고객문의
   탑 이야기 방
   자료실
국악음반박물관
국립국악원
국악방송
한소리국악원
>

자 / 료 / 실
  놀보가 제비를 잡으러 간 곳은? = 배연형 2006-01-11 14:56:36  
  이름 : 예술기획탑  (61.♡.66.161)  조회 : 8867    
다음의 글은 휘원23호(2001) 에 실린 배연형 선생님의 글입니다.

놀보가 제비를 잡으러 간 곳은?

배연형

판소리 흥보가에는 ‘제비가[燕鳥歌]’라는 재미있는 노래가 나온다. 연전(年前)에 박동진 명창이 텔레비젼 광고에서 ‘제비 몰러 나간다…’ 하고 불러 더욱 유명해진 구절이다.
부자가 된 흥보를 찾아간 놀보는 제수씨에게 권주가(勸酒歌)를 시키는 등 갖은 야료(惹鬧)를 부리다가 제비 다리 사연을 듣게 된다. 눈이 뒤집힌 놀보는 그때부터 음식은 수제비만 먹고, 길짐승은 족제비만 찾고, 화가 나면 목제비질(목접이질)만 해대다 급기야 그물을 메고 제비를 후리러 나가게 된다. 이런 성질 급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놀보라는 위인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제비 후리는 대목 - 제비가’이다.

【아니리】 그 날부텀 놀보가 제비 딱지를 수천 개를 맨들라서 동편 처마 끝에다가 붙였더니 집이 동편으로 시르르 하제. 아무리 기달려도 죽을 제비가 들어올 리가 있는가. 할 수 없어 그물을 맺아 두러미고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데,
【중중몰이】 이때 춘절 생강[三光] 하사월 초파일 연자(燕子) 나부는 펄펄, 수양버들 앉은 꾀꼬리 제 이름을 제 불러. 그물을 맺아 두러미고 망당산으로 나간다. 이 편은 우두봉(右頭峰) 저 편은 좌두봉(左頭峰) 건넌봉 맞은봉 좌우로 칭칭 둘렀난데, “아아, 이리어.” 덤불을 툭쳐, “후여 허허허차 저 제비.” 망당산에 짓둘러 덤풀을 툭 쳐, “후여 허허허, 떴다 저 제비. 니가 어드로 행하나?” 박록주(朴綠珠) 창 흥보가 중에서

‘제비가’는 중중머리 장단으로 짜여져 있다. 중중머리는 경쾌하고 속도감이 있으므로 덩실덩실 춤추는 대목이나 놀보 같은 경박한 위인이 날뛰는 대목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장단과 노랫말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므로 제비가는 중중머리로 짜여져 있다.
그런데 놀보가 제비를 잡으러 나가는 곳이 어디인가. 이 대목은 명창·학자에 따라 망당산(김창룡·김추월·박록주·김연수), 망등산(이동백), 방장산(方丈山 - 이화중선·정병욱), 지리산(智異山 - 박헌봉) 등으로 각각 달리 부르고 해석함으로써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그곳이 과연 어디냐?
첫째 아무 산이나 마음대로 붙인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이는 예술이 아니다. 둘째, 방장산일 가능성이 있다. 방장산은 원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영주(瀛洲 - 한라산)·봉래(蓬萊 - 금강산)·방장(方丈 - 지리산)을 일컫는데, 진시황(秦始皇)이 불사약을 구해 오라고 동남동녀(童男童女) 오백 명을 보냈던 곳이다. 지리산 역시 방장산과 같은 뜻이 된다. 그런데 방장산은 신비로운 곳이긴 해도 제비와 관련된 고사(古事)를 찾기가 어려우므로 설득력이 약하다.
놀보가 제비를 잡으러 간 곳은 이도 저도 아니고 망탕산(芒?山)이 정확한 이름이다. 이제 그 까닭을 밝혀 보겠다.
망탕산은 망산(芒山)과 탕산(?山)을 합쳐서 부르는 말인데, 중국 안휘성 탕산현(?山縣)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그러면 중국의 저 시골구석에 있는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조그마한 산 이름이 왜 하필 흥보가에 등장하는가. 그 까닭은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조에게 패한 유·관·장 삼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三國演義 第二十四回) 이 때 장비(張飛)는 잠시 망탕산 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후에 관운장과 상봉하게 된다.

각설, 장비는 망탕산 속에서 달포를 머물다가 현덕의 소식이나 들어볼까 하여 바같에 나갔다가 우연히 고성을 지났는데, 그곳 현에 들어가 군량을 빌리려 했다. 그러나 고을 관리들이 불응하자 장비가 격노하여 현의 관리를 쫓아내고 관인(官印)을 빼앗은 후 성을 점령하여 권력을 잡고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說張飛在芒?山中, 住了月餘, 因出外探聽玄德消息, 偶過古城, 入縣借糧; 縣官不肯, 飛怒, 因就逐去縣官, 奪了縣印, 占住城池, 權且安身. <三國演義> 第二十八回

그런데 장비의 자는 익덕(益德)이요, 호(號)가 연인(燕人:제비처럼 날쌘 사람)인지라 놀보가 망탕산으로 제비를 잡으러 간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놀보는 필경 ‘망탕산 제비[燕人]’ 장익덕의 노여움을 샀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놀보 같은 졸장부가(배가 좀 불뚝 하것다) 그물을 둘러멘 채, 팔척장신 고리눈 다박수염을 거사린 거한(巨漢) 장비를 잡으러 가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더구나 장비의 본래 직업이 돼지를 잡던 사람이다!
단단히 장비의 미움을 산 놀보는 종당에 가서는 복수를 당하게 된다. 놀보 박타령 맨 마지막 통 속에서 마침내 장비가 나타나는 것을 보라. 놀보는 장비의 고함 한 마디에 그만 기절을 하고 만다. 도원결의 형제애를 중시하는 장비이기에 형제애를 저버린 놀보를 징치(懲治)하는 것이다. 제비와 망탕산과 장비는 이렇듯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복선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르는 이도 듣는 이도 이를 모르니 안타까운 일이다.
판소리는 약 300년쯤 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200년쯤 전인 정조(正祖) 무렵 전라도 익산(益山) 지방에서 한 양반의 아들이 판소리에 그만 매료되어 공부고 무엇이고 집어치우고 소리를 배우러 가출한 사건이 있었다. 본래 판소리는 천인 광대들이 불렀으므로 조선조 신분사회에서 양반이 이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양반가문에 먹칠한 그는 여러 차례 집안 사람들에 의해 잡혀왔으나 번번이 가출을 되풀이하였다. 그의 이름은 권삼득(權三得)이었다.
권삼득의 부친 권래언(權來彦, 1739-1816)은 안동권씨 28세 손이었다. 그는 둘째 아들 삼득이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어 마침내 호까지 이우당(二憂堂 - 걱정이 둘 있는 집)이라고 지었다. 그의 두 근심인 즉 하나는 조상의 산소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요, 또 하나가 바로 둘째 아들 삼득이 천한 광대가 되어 나돌아다니니 조상 뵐 면목이 없어 근심이라는 뜻이었다.

“내 둘째 삼득(이란 놈이 내 가르침을 저버리고 노래와 술에 빠진 지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방탕한 녀석들을 쫓아 집을 나가 밖으로 돌면서 밤낮을 잊고, 욕을 끼치기가 끝이 없으나 막아낼 도리가 없고, 끝내 낯짝도 볼 수 없으니, 이것이 두 번째 걱정입니다. 내 이 때문에 통증이 간과 명치끝에까지 들어 흉중의 울적함이 겉에까지 드러나기에 아예 ‘두 골치[二憂]’로써 내 호를 삼은 것입니다.” 강필성의 <삼가 이우당서 뒤에 쓰다> 중에서
吾仲子三? 我提? ?吟歌酒者 幾何歲 泛遊蕩客 離家在外 渾忘晝夜 貽辱罔極 莫可禁防 而終不見面 此其憂之二也. 吾以是痛入肝膈 鬱於中而發於外 以二憂名吾號. 姜必成 <謹題二憂堂序後>

자식 기르기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요, 엇나가는 자식 앞에서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나 보다. 마침내 문중(門中)에서는 회의를 열어 권삼득을 잡아다가 멍석말이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멍석으로 말아놓고 매로 쳐 죽이려는 것이었다.
너른 마당에서 온 문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밥처럼 멍석에 말린 삼득은 죽음을 면치 못할 줄 알고 마지막 소원으로 노래나 한마다 하고 죽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다. 거적 밑에서 울려나오는 처절·비장한 그의 소리는 필경 온 집안을 울리고야 말았다. 일이 그 지경이 되고 보니 모두 ‘할수없는 자식’이라 하여 족보에서 제명하는 선에서 낙착을 보았다. 그의 판소리는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것이다.
예술적 감각이 빼어났던 권삼득은 놀보와 같은 인물을을 묘사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견마종(牽馬從)이나 가마꾼들이 가마 말(馬)을 몰거나 가마를 메고 갈 때 부르는 권마성(勸馬聲)을 응용했다.

“마부야! 네 말이 낫다 말고, 내 말이 좋다 말고,
성마[牽馬]손 잡아 들어서 채질 척척 굽 일어
일시 마음을 놓지 말고 든든히 저러거라!”
정정렬 창 <빅타판 춘향전 전집> 중에서

그는 이 견마종이 외치는 가마소리를 응용하여 ‘제비가’를 지었다. 견마종이란 말 모는 종이니 요즈음 운전수와 같은 것이다. ‘말 타면 경마[牽馬] 잡히고 싶다.’는 속담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니, 차 사면 운전수 두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이 권마성 가락은 높이 지르다가 툭 떨어트리는 울끈불끈한 선율로 짜여져 있으므로 퍽 경쾌하지만 방정맞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놀보 묘사에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 ‘제비가’가 바로 판소리 역사에서 지은이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더늠이다. 이 더늠을 일러 ‘권삼득제(制)’ 혹은 ‘설렁제’, ‘권마성제’, ‘호걸제’라 하는 것이다. 판소리에서 누구제 더늠이란 말은 권삼득에서 처음 이름이 붙었으니, 근대적 의미의 작곡가(作曲家) 개념이 그로부터 비롯된 셈이다. 오늘날도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부르다가 이 대목에 이르면, “옛날 양반 광대 권삼득씨, 권생원제로 제비를 몰러 나가것다” 하는 말을 넣어 그의 예술혼을 기리고 있다.

【아니리】옛날 양반광대 권삼득씨 권생원이 제비를 몰러 나가겠다.
【중중머리 설렁제】이때 춘절 삼강 하사월 초팔일 연자 나무는 펄펄. 제비 좇아 나간다. 제비 몰로 나간다. 복흐씨 맺인 그물 에후려 드러메고 방장산으로 나간다…
Okeh 1950(K444) 南道雜歌 八道名唱 李花中仙

권삼득은 양반 출신이었기 때문에 확실한 문헌 기록이 남아있고, 이것은 판소리사 연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준 연대(年代)가 되고 있다. 이 권삼득의 설렁제는 춘향가의 ‘군로사령이 춘향을 잡으러 나가는 대목’이나 심청가의 ‘남경 선인들이 몸 팔 처녀 사자고 외치는 대목’ 등에서 두루두루 응용되고 있다. 일제시대 대명창 이동백은 이 설렁제를 기막히게 구사으며, 김창룡·이화중선 등 여러 명창의 유성기음반을 통해 지금도 그들의 씩씩한 ‘제비가’를 들을 수 있다.
조선조 판소리 예술의 발달은 우리음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삼현육각(三絃六角)이나 가곡(歌曲)이 의례적·집단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음악이라면, 판소리는 개인의 음악적 역량이나 정서를 기초로 하여 불리던 음악이다. 그래서 판소리는 개인적인 연주 기량과 정서를 표현하는 ‘산조’라는 근대적인 양식의 기악곡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개인보다는 가문을 중시하고, 개성보다는 명분을 중시하며, 독창적 사상을 이단시하고 성리학적 세계관만을 인정하던 중세적 사고로부터 개인과 개성을 존중하는 근대적 사고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판소리는 탄생했다. 가문의 명예보다 자신의 개성적 예술을 추구했던 권삼득, 그가 노래한 ‘제비가’는 바로 근대를 향한 외침이자 행진곡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현대음악(가령 산조)도 바로 이런 근대음악의 메아리이자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음을 이 ‘제비가’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우리가 ‘제비가’의 판소리사적 위치와 권삼득의 음악사적 무게를 안다면, 권삼득이야말로 무려 200년을 앞질러 살았던 위대한 예술가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한 마리 제비로 봄을 알린 것이다.

**글중에 한자들중 ?로 표기된계 있습니다. 인테넷용 에서는 지원이 되지 않는군요.
망탕산의 탕(石+易)자와 득(삼수변+得에서 중인변이 없는자)자와 그외 다른 글자도 몇 자 있지만 해독에는 큰무리가 없을 듯 해서 그냥 ?로 표기합니다.
 2002-12-04 15:50:29




-------------- TOPCD 탑예술기획 --------------

목록
게시물 9건
No Title Name Date Hits
2   가곡 가사 정가 시조의 가사 모음 예술기획탑 06-01-11 11863
6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예술기획탑 06-01-11 8748
  놀보가 제비를 잡으러 간 곳은? = 배연형 예술기획탑 06-01-11 8868
8   대바람소리 예술기획탑 06-01-11 9186
7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예술기획탑 06-01-11 9726
  탑시디 배너 퍼가기 예술기획탑 08-07-19 7975
9   한주환류 대금산조 예술기획탑 06-01-11 10145
  해안(海眼) 예술기획탑 06-01-11 8955
1   故 한갑득 선생의 음악세계.....이보형 예술기획탑 06-01-11 7738
 

 
회사소개 |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 보호정책
10118 경기도 김포시 승가로 89, 102-301(풍무동, 장릉마을삼성쉐르빌)
전화: 031-984-5825. 010-3758-5845 / 팩스:
사업자등록번호: 114-04-50660 대표 양환정 / 통신판매업신고: 제2006-234호
운영자: 탑예술기획 (topcd@dreamwiz.com) 개인정보관리책임자: 양정환(환정)

Copyright © 2005 탑예술기획. All Rights Reserved.